내멋대로

약사와 약장수

똘돌이 2009. 1. 14. 02:18

장면1>

칠십에서 팔십이 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밤 늦게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대략 십여분이면 문닫고 피곤한 하루를 마감할 시간인데...

일반적으로 연세드신 분들은 간단히 물건만 사가지고 가시는 경우가 흔한 것이 아님을 경험적으로 느끼며

최대한 웃음지으려 애쓰며 말을 건네본다.

"어르신... 늦은 시간에 어디가 아프셔서 오셨어요?" 

"음~ 눈이 침침한데 먹는 약좀 줘 봐~..."

허걱!

참으로 난감한 주문이다.

속으로 "그런약 있음 제가 먼저 먹겠어요!" 라는 말이 목구멍을 밀고 나오려 하지만 꾹 참고 웃는 얼굴로...

"어르신~...티비나 책을 많이 보셔요?" 라고 질문 하니 "뭐 그렇기도 하고...'하시면서

"기독병원엘 갔더니 망막에 이상이 있는데 수술하래"...하신다.

아니 의사가 검사 다 해보고 수술하라는 눈을

그저 한마디 말로 약사에게 당신 눈 침침이를 고쳐달라고 약을 달라시나?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최대한 친절하게 말해본다.

"어르신... 평생 써와서 이제 고장난 것을 무슨 수로 되돌려요..."

"그래도 눈영양제라고 하는것 있다던데 함 보여줘봐..."

에구 제시간에 집에 가긴 다 글렀다. ㅠ.ㅠ

약을 일단 보여드리고...

"어르신... 이 약은 눈을 많이 써서 피곤한데만 효과가 있어요!"

"눈이 노화되어 망막에 생기는 황반증은 치료가 안되요!"

"일단 병원서 의사 말대로 하세요!"

그 외에 이런저런 이야길 해드리면서 기분 나쁘지 않게 되돌아 가시게끔 한다.

에휴~ 수입도 안생기면서 입만 마르고 벌써 열시 반이네...

 

 

장면2>

이건 오래전 인천에서 살 때의 경험이다.

당시에 약가 문란으로 약사들이 직접 가격점검을 다녔던 일이 있었다.

나 역시 약사회의 일을 맡아서 맡은 구역을 점검하러 다녔는데...

문란을 일으키는 자와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자와의 다툼이 종종 생기곤 한다.

한 약국을 점검하러 들어가다 며칠전 한 할머님의 일이 떠올랐다.

아~ 그 할머님이 약을 사신 곳이 여기구나...

당시 소변을 잘 보게하고 그래서  부기가 빠지는 작용을 지닌 '네프리스'라는 약이 한창이었는데

국내 제약회사에서 나오는 그 제품은 소비자가가 일만원정도...

그 할머님이 사신 수입약은 네프리스와 똑같은 성분에 함량도 똑같은 제품인데

판매가가 십만원이다.

그러고는  사람들에게 도매약국이라는 말을 써가며 반값인 오만원에 판매한단다.

아~!  이런 도둑놈들...

결국 멱살 드잡이 까지 하고서 고발장에 도장도 못받고 나와 버렸다.

 

 

아픈사람에게 정작 필요한 약을 제 값에 제공하는 일은

두번 말하면 잔소리가 되는 것 처럼 당연한 이야기지...

죽어야 산다는 장의사처럼

남이 아파야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더라도

나름 윤리의식을 가지고

나름 배운지식을 활용해 환자의 일차적인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름 동네의 사랑방이 되기도 하고 약의 바른 사용에 대한 강의실도 되어주는

나름 자부심으로 살아야 하는데...

 

주위에서 성공한 인생인지를 구별하는 가장 큰 잣대는

"그사람 한달 수입이 얼마더라..."

 

요즘은 약국경영이란 단어가

불경기임을 반영하듯 여기저기서 사용된다.

의약분업 이후로 기업같은 약국이 생기기도 하고 

또 그런 약국은 경영이 접목 되어야만이 현재를 유지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겠지만

소규모 약국이 경영 목적 중의 한가지인 이윤추구에만 집착하다보면

약사가 약장수로 입장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