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②]
더 이상 ‘비노(非盧)’는 없다
강기석(홈페이지 편집위원장)
5월은 노무현 추모의 달이다. 벌써 3주기다. 많은 사람들이 새삼 옷깃을 여민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추모전시회에는 남녀노소가 이룬 긴 줄이 연일 끊이지 않고 있다. 봉하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부쩍 늘었다.
노 대통령의 밀짚모자를 형상화한 강풀의 티셔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를 조금 더 내 몸과 마음에 가깝게 두고 싶은 마음들이 지금도 그렇게 강렬하게 남아 있는 거다. 밀짚모자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노란 어린 새싹이 말한다.
“잘 지내시나요. 모르겠어요. 왜 비가 오면 당신 생각이 나는지.”
이른바 ‘친노’의 심정이 그렇다. 3년 전 5월23일, 노 대통령이 절벽에서 몸을 던진 후에는 무턱대고 슬픔과 분노만이 그들의 가슴을 채웠었다. 3년 후, 총선을 치루고 대선을 앞둔 지금은 슬픔과 분노 외에도 어떤 정치적 결기가 함께 하고 있는 듯 하다. 정권교체는 오래 전부터 이들에게 이루지 않으면 안 될 숙명이 됐다. 이제 그 숙명은 총선 패배로 인해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그러기에 ‘친노’는 분열의 언어, 과거 지향적인 언어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부활의 언어, 연대의 언어이어야만 한다. 정권교체를 통한 민주주의의 회복은 ‘친노’의 힘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시민들을 깨이게 하고 조직해야 하는 임무가 ‘친노’에게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친노'는 부활과 연대의 언어
바로 그 이유일 터다. 노 대통령을 부엉이바위 위로 끌어 간 저들은 끊임없이 ‘친노’를 분열의 언어로 바꾸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묻는다.
“너는 친노냐, 비노냐.”
그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너는 친노, 너는 비노”의 딱지를 붙인다. 그것은 저들이 ‘반(反)노’이기 때문이다. 반노가 친노와 비노를 나누어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친노’가 무엇을 추구하는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무엇’에 대한 저들의 공포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노는 동시에 ‘공(恐)노’이기도 하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진보언론이나 야권에서조차 수구세력의 이런 ‘친노-비노 프레임’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는 실상이다. 정치적 고비마다 같은 편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4일 민주통합당은 박지원 당선자를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박 후보는 2차 결선 투표에서 당선자 127명 전원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67-60, 7표 차로 간신히 유인태 후보를 눌렀다. 그는 선거과정에서 친노직계를 이끄는 이해찬 당선자와 담합했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박 후보는 1차 투표에서 고작 49표를 얻었다. 나머지 세 후보가 얻은 표는 77표다. 전병헌 후보, 이낙연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과 특별히 친밀한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후보마저 선거과정에서 “나는 ‘친노’가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때문에 1차투표 결과만 놓고 보면 민주통합당 내 친노직계와 호남계는 모두 합해 49명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지난 4월 총선 때 모든 언론은 통합민주당 내 공천과정에서의 경쟁을 ‘친노-비노간 싸움’으로 프레임 짓고 두 계파간 갈등을 연일 대서특필했었다. 민주당 내에서도 그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 “친노가 공천과정에서 호남을 다 죽였다”면서 선거 패배의 책임까지도 이른바 ‘친노세력’에게 물을 태세였다.
머릿수가 아니라 정신으로 존재하는 친노세력
그렇다면 그때 호남계를 다 죽였다던 친노계는 어디로 갔나. 다 죽었다던 호남계는 또 어디로 갔는가. 지난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당선자들의 출신지역을 다 파악해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호남 출신 인사가 절반은 넘을 것이다. 호남 지역구에서만 27명의 당선자를 냈고 비례대표 당선자 중 호남출신자가 4명이다. 또 수도권 당선자 중 상당수가 호남 출신일 것이다. 호남계는 의연히 살아 남아 그들 중 상당수가 1차투표서부터 박 후보를 지지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해찬 당선자가 이끌고 있다는 이른바 친노직계의 행방이다. 참여정부와 관계가 있거나 친노성향을 갖고 있음에도 이해찬-박지원 간 ‘담합’을 부당하다고 여긴 나머지 1차투표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아주 단순한 논리로 따진다면 이른바 ‘친노직계’는 박지원 후보자에 대한 1차투표 지지자 49명 가운데에 호남계와 옹색하게 섞여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세력으로 총선을 좌지우지했고, 당내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판판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지나가던 소가 웃을 지경이다.
진실은 아주 단순하다. 애초부터 머릿수로 셀 수 있는 ‘친노세력’이란 없는 것이다. ‘친노’란 노무현 대통령의 운명에 대한 공감과 그의 정치철학에 대한 동의와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의지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노’는 계파를 넘어, 민주통합당을 넘어, 야권을 넘어, 일반 시민들에게로 뻗어 나아가게 된다. 바로 그런 무한확장성에 대한 수구세력의 공포가 ‘친노프레임’을 만들어 낸 동인인 것이다.
수구세력의 공포가 만들어 낸 ‘친노-비노 프레임’
‘친노프레임’에 갇혀 정신이 아니라 사람만 보게 되면 여러 오해가 생기게 마련이다. 특히 정치권에서 그렇다. 우선 참여정부에서 장차관을 했거나 청와대에서 일했던 인물이라면 가리지 않고 모조리 ‘친노’라고 여기는 오해가 있다. 내가 보기에 그들 중 상당수는 일찌감치 노무현을 잊고 자기 일에 바쁘다. 아무 인연이 없으면서도 묵묵히 노무현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속셈은 따로 있으면서 열심히 노무현의 이름을 팔고 다니면서 ‘친노’행세를 하는 이들도 종종 눈에 띤다.
‘친노’는 무조건 문재인이나 김두관 등 이른바 ‘노무현 사람’들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는 오해도 있다. 그런 선입견으로 본다면 우선 문재인 이사장 자신이 ‘친노’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의 목표는 초지일관, 정권교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다는 것이지 결코 스스로가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친노가 아닌 것은 이해찬 당선자나 한명숙 당선자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둘러 싼 혼란스런 셈법을 멈춰야 한다. 그동안 있지도 않은 ‘친노’ 공격에 앞장 서 왔던 ‘비노’ 박지원 원내대표 당선자의 앞으로의 역할이 주목되는 이유다. DJ와 노무현의 정신을 함께 받들어 민주통합당의 내상을 다스리고 약속대로 정권교체에 혼신의 힘을 다 할 것을 기대한다. 그리 된다면 그 또한 나무랄 데 없는 ‘친노’의 한 사람이다. 그렇게 ‘친노’와 ‘반노’ 혹은 ‘공노’만 있을 뿐 더 이상 ‘비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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