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④노무현이 꿈꾼 ‘균형발전사회’
성경륭 (전 청와대 정책실장, 한림대 교수)
1. ‘사람 사는 세상’의 비전노무현 대통령은 공적 활동을 하는 모든 기간 동안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고귀한 이상을 추구하였다. 이 이상은 ‘가난하고 빽 없고 힘 없는 사람이 사람 대접 받고 사는 세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던 1980년대 후반, 또는 그의 성장기 전체를 통틀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무시와 차별이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했기에 빈부의 격차,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꿈꾸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노 대통령이 꿈꾼 ‘사람 사는 세상’의 비전은 그의 민주주의론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자유와 평등이지만 평등한 사회라야 자유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며 평등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이런 인식의 바탕 위에서 시민주권과 사회적 연대를 중시하는 진보적 시민 민주주의론을 제창하였다.
사람 사는 세상의 비전과 진보적 시민 민주주의론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평등과 그에 기반한 자유였다. 이런 사상적 흐름 속에서, 노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국정운영의 핵심적 정책기조로 구체화된 것은 균형과 혁신이었다.
그의 균형 사상은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바로잡는 차별시정, 계층간 불평등을 줄이는 복지정책 (비전2030), 대중소기업이 상생 협력하는 동반성장, 중앙정부의 과도한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지방분권, 지역간 불균형을 시정하는 국가균형발전, 외교에서의 균형외교론 등 여러 정책분야에서 폭넓게 적용되었다.
국가 공동체의 존속과 공동번영을 위해, 강자와 부자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그들이 가진 자원의 일정 부분을 약자와 빈자에게 이전하여 이들의 자립과 자생을 돕는 균형의 토대 위에서 노 대통령은 사회 각 주체의 혁신을 촉발시키고 이에 기초하여 역동적 사회발전을 모색하였다.
이런 목표하에 그는 정부혁신을 선도하였고, 동시에 교육혁신, 과학기술혁신, 신산업혁신, 기업혁신, 지역혁신을 정열적으로 추구하였다. 그리하여 평등과 자유의 민주주의 사상에 뿌리를 둔 노무현 시대는 균형과 혁신의 거대한 경제사회적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 1만3천불에서 시작한 1인당 국민소득을 5년만에 2만1659불대로 끌어올리면서 역사상 최초로 대한민국을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2. 균형발전 사회의 정책설계와 성과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균형과 혁신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기조가 가장 잘 녹아있는 정책분야이다. 우선, 불균형 성장전략에 집착한 박정희 시대 이래 수십년 동안 누적되어온 과도한 지역간 불균형을 시정하여 한국사회를 균형발전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 건설, 낙후지역 육성과 같은 실로 혁명적인 균형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와 함께, 지역의 자립적 발전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대학과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 혁신체계와 산학연 클러스터를 조성하였으며, 이에 기초하여 지역별로 전략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혁신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특히 균형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공공기관 이전 정책을 지역의 산학연 클러스터와 유기적으로 연계함으로써 모든 지역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도 자립·자생할 수 있는 강력한 산업적 토대를 구축할 수 있게 하였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장차 서울과 수도권이 정치, 행정,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자원과 권력을 장악하는 단일 독점 구조에서 수도권은 경제수도로, 충청권은 행정수도로, 나머지 지역은 각각의 산업적 특성에 따라 다수의 산업수도로 거대한 전환을 이루게 되고, 그에 따라 모든 지역이 자립적 발전과 연계발전을 이루는 다극분산형 구조를 발전시키게 된다.
이런 변화속에서, 행정수도와 다수의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수도권 지역은 인구를 늘리는 양적 팽창을 중단하고 질적 발전으로 전환하여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이 시도되었다. 특히 환경, 주거, 복지, 교육, 문화 등 수도권 주민의 삶의 질을 크게 개선하고, 수도권에 집적된 우수한 지식정보기반을 활용하여 지식산업 클러스터를 육성하며, 세계도시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는 정책이 적극 추진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역의 연구개발 투자, 특허를 비롯한 연구성과, 기업 창업, 지역생산, 수출 등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진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2011년에 이르러 수도권의 인구비중은 사상 최대치인 49.3%까지 상승했지만, 2011년부터 해방 이후 최초로 수도권에서 타 지역으로의 인구 순유출(8,450명)이 발생하여 지방과 수도권이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는 중대한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 외에,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국가의 장래를 위해 보다 큰 거시적 차원에서 두 가지의 중요한 정책적 구상이 이루어졌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대부분의 지역정책과 균형발전 정책이 시도(市道)라는 광역행정체계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2007년 9월에 수도권, 중부권, 서남권, 대구경북권, 동남권(부산, 울산, 경남)의 5대 초광역경제권과 강원권과 제주권의 2대 지역경제권을 육성하는 5+2 초광역경제권 구상을 마련하였다.
이 구상은 자동차산업이나 조선산업의 예에서 보듯 산업의 확장이 특정 행정구역의 경계를 벗어나 진행되는 현상에 대응하여 초광역적 거버넌스를 구축함으로써 다수의 지역들이 공동의 산업발전을 이루고 나아가 지역의 국제경쟁력을 증진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둘째, 2007년 10월의 남북정상회담에 대비하여 한반도 균형발전 전략을 수립하였다. 이 전략은 균형발전의 관점을 한반도 전체에 적용함으로써 남한과 북한의 공동번영을 모색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한국경제와 보완성과 통합성을 가진 한반도경제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되었다.
그러나 정권교체로 인해 이 두 가지 정책구상은 아쉽게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말았다. 현 정권은 노무현 정부가 제창한 5+2 초광역경제권을 명칭만 약간 수정한 채 무단으로 채용하였으나 치밀한 정책설계의 부재와 실행역량의 결여로 아무런 정책성과도 달성하지 못하고 자신의 수명을 다하고 있다.
한반도균형발전 전략의 경우, 현 정권이 무모한 강경 봉쇄정책에 집착하여 10.4 공동선언을 무효화함으로써 남북한 사이의 공동번영 노력을 중단하고 말았는데, 이것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할 때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노력이 궁극적으로 한반도경제공동체를 구축하여 통일을 앞당기고 동북아와 세계경제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높이고자 한 계획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현 정권의 근시안적 접근으로 말미암아 이런 장기적 계획이 좌절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미래의 과제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여 균형발전 정책과 대북포용정책을 파탄낸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지만, 역설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중점적으로 실행한 이 정책들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올 연말에 정권교체를 이루게 되면,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이 정책들을 반드시 성공시켜 한편으로는 균형발전을 통해 다극분산형 국가발전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 전체의 균형발전과 경제공동체 건설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극심한 지역간 경제력 격차를 시정해야 한다는 절박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산업중심, 경제중심으로 추진된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을 앞으로 일정 부분 수정·보완하는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다음 시대에는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들의 삶을 다면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산업 외에 복지, 건강, 교육, 문화, 환경 등을 통합적으로 접목시키는 종합적 지역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젊은 세대의 지속적 이탈로 인해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는 지역의 현실을 감안할 때, 자녀들과 따로 사는 수많은 노장년층들을 위한 복지, 의료, 건강, 문화 등의 사회·문화정책과 자녀를 가진 가정의 교육정책까지를 포괄하는 통합적 지역정책을 마련하여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국민들이 전국 어느 곳에 살든지 간에 일자리와 소득은 물론 건강, 복지, 문화, 교육 등 여러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삶의 만족과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조건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에너지 고갈 등 최근에 이르러 심각성을 더해 가고 있는 환경과 에너지 문제에 대응하여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의 생태공동체를 형성하고 분산적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환경친화적 생활방식을 확산하는 노력도 활발하게 전개해야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농업, 제조업, 서비스산업 사이의 융복합화와 고차산업화(1+2+3차 산업의 결합)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농촌과 지방 중소도시의 산업적 부흥을 도모하여 소득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풍부한 기회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노무현 시대의 균형발전 정책은 박정희 시대의 불균형 성장 정책이 남긴 과오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기획되고 실행되었다. 이제 진보개혁 진영이 집권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미래의 균형발전 정책은 기존의 핵심 정책인 산업정책에 사회문화정책과 환경정책을 추가하여 국민들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새로운 실천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1960년대 이후의 급속한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끊임없이 떠나고 외면하는 곳이 되어버린 우리의 지역과 농촌을 많은 도시인들이 다시 찾게 되어 지역 르네상스, 농촌 르네상스 운동을 전국 곳곳에서 점화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5천만 국민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이 될 것이고, 특히 은퇴 이후 뚜렷하게 할 일이 없는 상태에서 무료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55세 이상의 1천만 노인들에게 자아실현과 삶의 완성을 위한 새로운 ㅢ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경제와 삶의 질, 일과 여가, 사람과 자연, 수단으로서의 삶과 자아실현으로서의 삶 사이에 절묘한 균형을 취하는 다음 단계의 균형발전 정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에 지역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에 시동을 걸었고, 퇴임 후에는 농촌의 경제와 환경을 살리고 주민들이 수준 높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모범을 직접 보여 주신 분이다. 그는 균형과 혁신이라는 원리에 천착하여 한국사회에 누적된 과거의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균형발전 사회의 새로운 미래모습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끊임없이 실험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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