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철수
안철수 | |
본명 | 安哲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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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2년 2월 26일(1962-02-26) (48세)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
거주지 |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
국적 | ![]() |
별칭 | Ahn Cheol-Soo, Charles Ahn, 찰스 안 |
유명 | 컴퓨터 안티바이러스 개발 |
학력 | 경영학 석사 (MBA), 의학 박사 (MD) |
출신 대학 |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 펜실베니아 대학교 대학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
직업 | 기업가, 컴퓨터 프로그래머, 의사, 대학 교수 |
활동 기간 | 1988년 ~ 현재 |
칭호 | 의장 |
칭호 기간 | 2005 ~ 현재 |
위원 | 안철수 연구소 이사회 |
종교 | 무교 |
배우자 | 김미경 (1989년 ~ 현재) |
자녀 | 딸 1명 |
웹사이트 http://www.ahnlab.com | |
안철수(安哲秀, 1962년 2월 26일 ~ , 부산 출생)는 대한민국의 벤처 사업가이자 대학 교수이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인 ‘V3’ 제품군의 개발자로 유명하며, 그 활동의 연장선에서 설립된 안철수 연구소의 대표이사로 2005년 초까지 활동했다. 2010년 현재, 안철수연구소 의장 및 카이스트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편집] 생애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부산동성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기초 의학을 전공하면서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생리학 교실에서 1988년 《동방 결절 내에서의 흥분 전도에 미치는 Adrenaline, Acetylcholine, Ca++ 및 K+의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1991년 《토끼 ROOT402단일 심방근 세포에서 Bay K 8644와 Acetylcholine에 의한 Ca2+ 전류의 조절기전》이라는 논문으로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대학원 석사 과정 시절 우연히 플로피 디스켓을 통해 자신의 컴퓨터에 감염된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인 (c)Brain을 분석하였고, "백신(Vaccine)"이란 이름의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백신을 PC 통신망에 올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문 잡지인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에 기고하였으며, 이후 당시 악명을 떨친 LBC, 예루살렘 바이러스 등을 치료하는 기능이 추가된 ‘V2’, ‘V2Plus’ 등을 차례로 발표하다가 ‘V3’로 이름을 바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하였다.
이후 그는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전임 강사와 의예과 학장까지 지냈으나, 결국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드는 "컴퓨터 전문 주치의"의 길로 들어섰다. 1995년, 백신 소프트웨어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벤처 기업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벤처 열풍, 벤처 몰락에 휩쓸리지 않는 내실 있는 경영을 함으로써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 기업가로 손꼽혀 오고 있다.
2005년, 안철수 연구소의 대표이사를 사임하였고, 대신 이사회 의장 자리를 맡았다. 이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Wharton School of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MBA 2년 과정을 마쳤다. 2008년 4월 30일 귀국하였으며,[3] 현재 KAIST (한국과학기술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5년에는 포스코의 사외이사가 되기도 하였으며, 2010년에 포스코 이사회 의장에 선임되었다. 2010년 안철수연구소의 사내벤처로 출발한 소셜네트워크게임 선두주자 노리타운스튜디오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편집] 저서
- 《행복 바이러스 안철수 : 안철수 박사가 쓴 안철수 이야기 》(2009년, 리젬 刊)
-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 그 순간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다 》(2007년, IMAGE Box 刊)
- 《나의 선택》 (2005년, 공저, 정음 刊)
-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2005년, 김영사 刊)
-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2001년, 김영사 刊)
- 《안철수의 인터넷 지름길》(2000년, 북마크 刊)
- 《안철수의 한글 윈도우98 지름길》(2000년, 북마크 刊)
- 《안철수와 한글 윈도우98》(1998년, 정보시대 刊)
- 《(안철수의) 바이러스 예방과 치료》(1997년, 정보시대 刊)
- 《컴퓨터, 참 쉽네요!》(1995년, 영진 출판사 刊)
- 《바이러스 분석과 백신 제작》(1995년, 정보시대 刊)
-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1995년, 비전 刊)
2. 고승덕
고승덕 | |
출생 | 1957년 11월 12일(1957-11-12) (53세) 광주광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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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 |
학력 | 컬럼비아 로스쿨 법무 석사 학위 (JD) |
직업 | 법조인, 정치인 |
종교 | 개신교 |
배우자 | 이무경 |
부모 | 고익태,윤순엽 |
웹사이트 http://www.gozzang.org/ |
고승덕(高承德, 1957년 11월 12일 ~ )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방송인, 정치인이다.
[편집] 인물과 경력
전라남도 광주 출신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광주에서 마쳤고,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 법과대학을 수석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 중에 사법시험 최연소, 외무고등고시 차석, 행정고등고시 수석 합격한 것으로 유명하다.[1]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에서 JD과정을 졸업했다. 미국 4개 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 세계 최대의 로펌인 베이커 & 맥켄지에서 2년간 변호사로 활동했다.
귀국 후 수원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이후 변호사로 재직했고, 2003년에는 펀드매니저 자격증을 취득해 증권업계에까지도 활동 반경을 넓혔다. 서울방송의 법률 교양 프로그램인 《솔로몬의 선택》에 변호사로 출연하였고, 증권투자 관련 베스트셀러와 에세이집을 썼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BBK 주가 조작 사건 의혹에 대한 변호인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제18대 국회의원 서울특별시 서초 을에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편집] 가족
1984년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재직 당시 그는 박태준 자유민주연합 총재이자 포스코 전 회장의 둘째 딸인 박유아와 결혼했다.[3] 그의 전 부인인 박유아는 이화여자대학교 동양학과를 졸업하고 고승덕과 미국으로 유학할 때 미술사와 드로잉을 공부하기도 했으며, 지난 1998년에 남매를 두면서 부인은 아이들과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4] 그러나 고승덕은 부인과는 그리 불편한 관계는 아니었으나 박유아와 합의 이혼하였다. 이후 고승덕은 2004년에 KBS의 전 아나운서 왕종근의 중매[5]로 재혼하였다.[6] 상대는 10살 연하의 이무경(李戊瓊) 기자로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1991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편집부와 문화부, 《매거진X》부 등을 거쳤다.[7] 지난 2005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8]
[편집] 학력사항
[편집] 경력사항
- 1978년 제20회 사법시험 최연소합격
- 1979년 제13회 외무고등고시 차석합격
- 1979년 제23회 행정고등고시 수석합격
- 1982년 사법연수원 제12기 12등 수료
- 1984년 수원지방법원 판사
- 2005년 이화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겸임교수
[편집] 수상내역
- 2008년 국정감사 우수국회의원상
[편집] 주요 저서
- 고승덕, 천재 고변호사의 증권고시패스(CD 5장+요약집), 한경와우, 2002. ISBN 89-951356-2-X
- 고승덕, 고변호사의 강의 3 (선물옵션), 개미들출판사, 2002. ISBN 89-952815-2-9
- 고승덕, 주식실전포인트, 개미들출판사, 2005. ISBN 89-956447-0-2
- 고승덕, 고변호사의 주식강의 2 (실전기법), 개미들출판사, 2002. ISBN 89-952815-1-0
- 고승덕,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개미들출판사, 2003. ISBN 89-952815-4-5
- 고승덕, 고변호사의 주식강의 1 (분석원리), 개미들출판사, 2002. ISBN 89-952815-0-2
- 데이비드 페이버 저/ 고승덕 역, 애널리스트 절대 믿지 마라(The)faber report, 한국경제신문, 2005. ISBN 89-475-2453-0
다음의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두사람의 약력이다.
두 사람 다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본인의 노력을 더하여
소위 세상적인 성공을 한 사람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회에서의 행보는 구별이 되어 보인다.
안철수씨는 자신의 성공을 자신의 것으로만 만들지 않고 사회에 기여하는 형태를 취한다.
대표적인 예가 안철수 연구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외국자본의 인수 시도에 개인의 부를 축적하기엔 좋은 조건임에도 국내기업 보존이라는 차원에서 거부를 하고
그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벤쳐사업에서 성공신화를 이끌었다.
기업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경영을 공부하여 지금은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양성을 하고 있다.
그의 인터뷰들을 보면 그는 진보적인 사고를 하고 있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한다고 보인다.
고승덕씨는 한마디로 시험벌레라 생각된다.
마음 먹은 시험에서 그는 타인들 보다 월등한 노력을 강조하고 그 결과로 성공 신화를 써내려 갔지만
그에게서 안타까운 일은 왜 공부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이 사회를 위한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이명박이의 헛발질이 국민으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는데 그는 겨우 그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내년 대선에서 다시 진보의 정부가 들어선다면 그는 얼마나 처량한 신세가 될까...
그저 자신의 입에 넣을 富에나 관심가질 자라 여겨지는 것은 나의 왜곡된 시선 때문일까?
난사람, 든사람, 된사람으로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있다.
공부를 하는 것, 이왕 하는 공부니 더 잘하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사람으로써 살아가는데 중요한 가치,
세상을 더 좋게 하기 위한, 더불어 살아가는데 일조하려는 생각을 마음에 담고 공부한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요즘 아이들의 미친 교육을 보며 문득 비교하게 된 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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