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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펌) "아람회" 재판부가 사죄한 이유

똘돌이 2009. 5. 27. 19:40

"사법부가 명백한 가해자란 생각 때문"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억울한 세월을 보낸 피고인들에게 이번 재판이 해원(解寃)의 기회가 되길 바랐습니다."

1980년대의 대표적 용공조작 사건 `아람회' 피해자들에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법 이성호 부장판사는 27일 이례적으로 판결문에서 상당 부분을 할애해 옛 사법부를 대신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위로의 말을 건넨 이유를 이같이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재심 사건을 하다 보면 피고인들이 당시 했던 행위가 어떤 것인지 판단해볼 여지가 있는 일도 있는데 이 사건은 아무리 보수적으로 봐도 평범한 시민이 너무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옛 사법부가 명백한 가해자라는 생각이 들어 판결문에도 고문한 경찰은 물론 사법부를 용서하라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없었다"며 "대신 고심 끝에 피해자들에게 평화와 행복을 기원한다는 표현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이 부장판사는 "이걸 두고 사회 일각에서 나를 진보 성향의 판사라는 식으로 비판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피해자들의 맺힌 한을 풀어주는 재심의 취지상 충분한 설명을 해 주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부장판사는 "재판에서 피고인들의 말을 최대한 들어주려고 노력했고 일례로 결심공판 때 최후진술은 밤 9시까지 계속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주문'만 짧게 읽고 끝내는 다른 사건 선고 때와 달리 아람회 사건 선고 날 법정에서 판결문 대부분을 수십 분에 걸쳐 읽었는데 문어체인 판결문을 구어체로 바꾸는 등 준비를 철저히 하려고 새벽 5시에 출근했다고 한다.

그는 "대법원장이 국민에게 과거 반성이라는 약속을 했고 비록 법원 외부의 여러 환경이 다소 바뀌었어도 이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취지에서 아람회 사건 판결을 준비했다"고 회상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는 지난 21일 아람회 선고 때 "평범한 시민에 불과한 피고인들이 국가에 의하여 저질러진 불법구금과 고문 끝에 반국가단체 구성원으로 둔갑했다고 절규했음에도 당시 법관들은 이를 외면한 채 진실을 지켜내지 못했다"며 사법부의 과오를 지적했다.

이어 "오욕의 역사가 남긴 뼈아픈 교훈을 본 재판부 법관들은 가슴 깊이 되새겨 법관으로서의 자세를 가다듬으며 선배들을 대신해 피고인들과 가족에게 심심한 사과와 위로의 뜻을 밝힌다. 피고인 故 이재권은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고 다른 피고인들은 이 땅에서 여생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