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지 해수욕장의 용천수 노천탕
만약 당신이 제주를 웬만큼 둘러봤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살짝 이 섬의 신비감이 떨어졌다 싶으면 아직 사람들의 손때를 덜 탄 몇몇 비경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 사실 걱정도 앞선다. 아는 사람들만 알던, 제주의 숨은 볼거리로 남겨졌던 이곳들이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이는 흔한 여행지가 될까봐.
웅장한 신비감에 압도되다_아부오름

마치 요새처럼 삼나무 장벽이 둘러쳐진 아부 오름의 웅장한 전경
영화 촬영지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너도나도 제주 곳곳의 영화 촬영지를 둘러보는 여행을 떠나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제주 영화 촬영지 여행을 나섰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영화 <이재수의 난> 촬영지였던 ‘아부오름’을 찾으려다 헛걸음하고 돌아왔다고 하소연한다. 정확하게 지도에 표시되지도 않았고, 근처에 가서도 눈을 씻고 둘러봐도 ‘그런 곳’이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제법 잘 알려져 있는데도 두 눈으로 본 사람은 드문, 본의 아니게 비경으로 남은 곳이 아부오름이다.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산보다는 낮고 언덕보다는 조금 높은 지형을 오름이라 하는데, 이 곳을 찾아가다 삼나무가 하늘을 가릴 만큼 빼곡히 들어차 있어 분위기가 신비스럽기까지 한 길을 지나 목장 앞에 다다르면 잠시 당황하게 된다. 사진의 그 오름은 어디에 있을까. 주변에는 철조망에 둘러쳐진 목장과 경주의 왕릉을 닮은 듬직한 둔덕만 있는데……. 바로 이 둔덕이 아부오름이다. 물론 목장과 한가로이 노니는 말들로 가로막혀 있는데 철조망 틈 사이를 ‘몰래’ 지나 둔덕(오름)을 타고 올라야 한다. 목장 일을 하는 분들을 만나도 당황하지 말 것. 방역을 위해 출입을 막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서는 말만 잘 하면 별 문제 없이 드나들 수 있다.
그렇지만 아부오름의 정상에 오르면 누구라도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에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언덕으로만 보이는데 백록담처럼 상당히 크고 깊은 분화구 지형이다. 분화구 둘레(오름 정상)만 1.4km에 깊이가 80여 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 거기다 분화구 중심에는 삼나무가 큰 원을 그리며 마치 요새처럼 심어져 있다. 바로 여기가 <이재수의 난>을 촬영한 곳이다. 깎아지른 경사로 아래로 세찬 바람이라도 불면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이 아찔하면서도 눈앞에 펼쳐지는 웅장한 풍경은 누구라도 넋을 잃고 만다. 한참 뒤 정신을 차린 다음 오름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제주의 독특한 지형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한라산과 초록이 잔잔한 물결처럼 사방에 펼쳐진 풍경과 마주하는 순간, 아무리 냉정한 사람일지라도 제주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민물이 굽이쳐 바다로 흐르는 못_쇠소깍

쇠소깍은 점점 넓어져 바다와 곧장 만난다
수심이 얕아지고 파도가 넘어오지 못해 해수욕에 그만
화산 지형인 제주는 별다른 완충지대 없이 내륙이 곧장 바다로 이어지는 독특한 지형들이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쇠소깍(또는 쇠소)’도 이 가운데 하나이다.
쇠소깎은 소의 뿔을 닮았다고 지어진 이름의 못이다. 내륙에서 조금씩 솟아오른 지하수들이 모이고 모여 쇠소깍에 이르는데, 수심이 깊고 물이 맑아 인근 주민들의 여름 피서지로 또 낚시터로 인기가 있었다. 폭 25m 정도의 상류천에는 급류에 휘둘렸던 오랜 시간을 말해주 듯 기괴하게 깎인 현무암 지대가 한참을 이어지고, 이 틈으로 졸졸 소리를 내며 하천수가 흐른다. 이 물을 따라가면 갑자기 뚝 떨어지는 작은 폭포와 만나는데 여기서부터 쇠소깍의 진면목이 펼쳐진다.
폭포 아래로 꽤 널찍하고 깊은 못이 강처럼 이어지고 그 좌우에는 가파른 기암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다. 울창한 숲이 좌우를 감싸고 있어 바로 옆 도로에서는 아무리 목을 빼 놓고 봐도 쇠소깍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이곳은 워낙 시원해 무더운 여름에도 좁은 관망로를 따라 내려가 있으면 올라오기가 싫어진다. 언뜻 봐도 수심이 꽤 깊다 싶은데, 그 어느 계곡물보다 깨끗해 물 밑바닥까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이 물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쇠소깍의 마지막 비경으로 바다와의 랑데부를 생생히 목격할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바로 앞까지 민물 못이던 그 곳에 세찬 파도가 들이닥치고 있다. 파도가 힘차게 밀려오지는 않지만 쇠소깍 하류를 바라보면 바다로 가려는 민물과 들어오려는 바닷물이 서로 기싸움을 벌이느라 소용돌이치는 희한한 풍경도 만나게 된다.
동행한 이도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울창한 계곡인데, 오른쪽을 바라보면 바다”라며 마냥 신기해 한다. 쇠소깍이 그런 곳이다. 어디 내 놔도 손색없을 깊고 아름다운 계곡과 제주의 현무암 해변, 힘찬 파도를 동시에 보는 곳. 그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요즘은 쇠소깍 끝자락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더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서둘러 가봐야 할 제주 비경 1순위.
제주 사람들이 바다를 보며 물을 맞는 곳_소정방

정방폭포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거센 파도를
향해 시원한 물줄기를 떨어뜨리는 소정방 폭포
‘소정방’이라고 하니 말 그대로 ‘작은 정방폭포’가 아닐까 라고 추측했다면 정답. 소정방은 정방폭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작은 정방폭포이다. 폭포수가 곧장 바다로 떨어지는 것이 정방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소정방 역시 찾았다는 이들보다 허탕을 치고 돌아선 이들이 더 많은 곳이다. 그만큼 정방폭포의 위세에 가려져, 그리고 길 찾기가 까다로워 숨겨지고 또 숨겨져 있음을 의미한다.
소정방을 찾아가려면 일단 정방폭포까지는 가야한다. 여기서 두 갈래 길이 있는데, 하나는 파라다이스 호텔로, 나머지는 음식점 ‘소라의 성’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중 조금 더 안전하면서도 소정방의 폭포수 원류를 발견하는 것은 물론, 길을 덜 헤매는 방법이 파라다이스 호텔을 통과하는 길이다. 파라다이스 호텔 정문을 지나면 ‘소정방 산책길’이라고 써진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면 길이 끝나는 지점이 나오는데, 무슨 사연인지 건물과 숲으로 길이 막혀 있다. 그렇지만 그 옆으로 풀숲을 헤쳐 가면 금방 돌계단이 나오고 호젓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산책로 아래로 하천 하나가 지나는가 싶더니 길 끝을 돌아서자마자 자신이 깎아지른 해안 절벽 위에 서 있음을 발견하고는 놀라게 된다. 마침 소정방을 찾았던 때는 습한 바람과 비가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때였는데, 저 멀리 기암절벽을 사정없이 두드려대는 파도 때문에 희뿌연 물보라와 물안개가 피어올라 몽환적인 분위기에 감싸였다.
산책로 아래로 흐르던 하천수가 해안 절벽 아래로 곧장 떨어지면서 생긴 것이 소정방이다. 낙폭이 그다지 큰 편은 아니지만 제법 폭포다운 웅장함을 뽐낸다. 폭포와 바다의 절경이 이루는 조화도 더 없이 빼어나지만, 사실 소정방은 근처 주민들이 시원하게 물맞이하는 곳으로 사랑받아 왔다. 수건 하나를 뒤집어쓰고 폭포 아래 서면 떨어지는 물줄기가 등이며 어깨를 시원하게 두드려 준다. 그 틈으로 멀찍이 보이는 코발트빛 파도라니. 실속과 멋을 한꺼번에 챙겨왔던 제주 사람들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기암괴석이 거센 바다와 맞서고 있는 모습은 경외감마저 든다.
제주 용천수의 상쾌함을 만나다_곽지해수욕장

현무암과 백사장이 조화를 이루고 유난히 맑은 곽지 해수욕장
제주가 독특한 지형의 보고라는 사실은 익히 들어왔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전에는 쉬 실감하기 힘들만큼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신비를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현무암 지층에서 흐르다 압력에 밀려 솟아오르는 ‘용천수’ 역시 이 가운데 하나이다. 보통 용천수는 해안 가까운 곳에서 많이 솟아 흐르는데, 맑기도 맑지만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용천수에 몸을 담근 후 피부병을 고쳤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전해진다.
제주를 서쪽으로 감아 도는 해안도로를 따라간 곳에 자리한 곽지 해수욕장. 여느 유명 해수욕장에 비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잔잔하고 맑은 바다는 여행자들을 불러들이기에 손색이 없다. 특히 현무암 지대가 해변 한쪽을 얕은 벽처럼 둘려있으니 저절로 넓은 해수풀이 생긴 곳이다. 아이들이나 수영에 자신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바다를 즐길 수 있다. 길게 이어진 해안선과 백사장은 아직 잘 알려진 해수욕장이 아님을 말해주듯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북적이지 않는 해변에서 호젓하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그만이다.
바다를 바라보다 제주 현무암으로 마치 요새처럼 지은 건물 한 동을 발견했다. 아치형 입구를 지나니 남탕, 여탕이라고 표지판이 붙어 있다. 이를 따라가면 높다란 돌담이 둘러쳐진 노천탕을 만날 것이다. 여기가 예의 용천수 노천탕. 잔잔하고 맑은 물이 고인 탕은 온 몸이 짜릿할 만큼 시원해 더위에 지친 몸을 식히기에 좋다. 이 용천수는 당연히 민물.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민물이, 한쪽은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가 펼쳐지는 제주만의 독특한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용천수는 화순 해수욕장, 도두동 오래물 등 제주의 여러 곳에서 샘솟고 있다. 물이 맑고 시원할 뿐만 아니라 아토피에도 효과를 봤다는 사례도 있어 점점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그렇지만 간혹 수심이 깊은 곳도 있으니 주의할 것.
가도 가도 다 모르는 신비한 섬 |
'먹을거리 와 여행가고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원주택 지을 돈은 없고...그럼 농막이나 들여놓을까 (0) | 2011.04.19 |
---|---|
걷기를 좋아한다면 이곳을~! (0) | 2010.05.08 |
내소사->송포바닷가->새만금->내장산 호숫가 (0) | 2009.03.28 |
[스크랩] 대합찜 (0) | 2009.03.20 |
전국 94개 휴양림 소개 및 이용방법 (0) | 2009.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