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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의 ‘마녀’들, ‘마녀사냥’을 하다 ... 강기석

똘돌이 2011. 7. 5. 20:27


중세시대 마녀사냥,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모시는 글 - 강기석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진시황이 죽고, 라이벌 이사(李斯)까지 모함해 죽이고 진나라 최고 권력자로 등장한 환관 조고는 2세 황제 호해에게 사슴 한 마리를 바치면서 말(馬)이라고 했다죠. 호해가 웃으면서 좌우에 있는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이거 사슴 맞지?”
그런데 신하들이 한결같이 “사슴이 아니라 말이 틀림없습니다.”라고 입을 맞추죠.(물론 일부 강직하거나 물색모르는 신하들은 사슴을 사슴이라 고집하다가 나중에 조고에게 일망타진당합니다) 조고의 위세에 밀린 호해는 결국 말이 사슴으로 보이는 자신의 정신이 이상해 진 게 틀림없다고 믿게 됩니다. 이후 계속 사사건건 헷갈려하다가 결국 조고의 종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지요.

갈릴레오에 대한 종교재판까지 들먹일 필요 없이, 명백한 진실마저도 때때로 권력 앞에서 이처럼 무력해질 수 있다는 게 동서고금 역사에 숱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마저 같은 야만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백주의 국회에서 벌어진 야만적 양심심문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에서 임명동의가 연기됐습니다. 한나라당 이은재의원과 자유선진당 박선영의원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 후보자의 인식을 물고 늘어진 겁니다. 먼저 이은재의원입니다. 학자출신입니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천안함으로 넘어갑니다.

“천안함.연평도를, 이게 분명히 북한에서 한 것 맞지요, 북한의 소행이지요?”
“정부에서 그렇게 발표를 했고 저도 그럴 거 같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제가……”
“그러니까 이게 정확한 확신은 아니네요? 대강 그럴 것이다, 그러면 몇 % 확신을 하고 계시는 건가요? 정부에서 발표했기 때문에 대강 그런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다면 예를 들어서 만약에 헌재에 이와 같은 것이 문제가 돼서 판결이 나온다, 예를 들면 우리 집시법 같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헌재에서 위헌 판결이 나오게 됐는데 우리 후보자께서 헌재에 들어가셔서 재판관이 되시면 결국 이런 것에 대한 재판은 정확한 신뢰성을 가지고 재판을 못 하시겠네요?”
“신뢰성보다는 오히려 법률가로서 제가 신뢰성을 가지고 어떤 판단을 하려면 결국은 근거와 자료를 토대로……”

다음은 박선영의원입니다. MBC 아나운서 및 기자경력이 있으며 역시 학자출신입니다.

“좋습니다. 천안함 폭침은 누가 한 겁니까?”
“아까도 여러 번 말씀을 드렸고요…”
“본인의 확신을 말씀해 주세요. 정부가 뭐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확신이라고 하는 것은 제가 법률가이기 때문에 제가 직접 보고 경험을 하면 확신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제가 직접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얘기는 그 사람의 어떤 신뢰성을 봐서 제가 그 말을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의 문제겠지요. 그런 점에서 저는 제가 아는 어떤 북한의 문제, 또 우리 정부에 대한 어떤 신뢰성, 그것을 통해서 제가 정부의 발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확신이라고는, 제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래도 확신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두 눈으로 폭침 장면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없겠지요.”
“없지요. 그러면 지금 후보자의 답변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북한의 소행이 분명하다고 믿고 있는 대한민국 대다수의 국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두 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다는 말씀이시잖아요, 답변의 요지는. 정부가 믿으니까 그런가 보다…”
“확신할 수 없다기보다는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요지는 후보자께서 두 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고 정부가 그렇다고 발표를 하니까 그냥 신뢰를 해 줄 뿐이다, 이런 말씀 아니세요”
“예, 신뢰를 합니다.”
“그러신 거지요? 확신하지는 않는다, 다만 정부가 그렇다니까 그냥 믿어준다…”
“그게 정부를 불신해서가 아니라 확신을 할 수 있는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점에서요?”
“제가 직접 경험을 하고 제가 확인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확신이라는 것은 하기가 어려운 것이겠지요.”
“후보자는 60년생이신가요, 59년생이신가요?”
“59년생입니다.”
“59년생이면 6.25전쟁 이후에 태어나셨네요? 그러면 6.25가 남침이라는 것도 확신을 못 하시고 그냥 정부가 남침이라고 그러니까 남침이라고 하시는 것 아
닌가요?”
“정부가 남침이라고 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역사적인 자료들이 있고 제가 그동안 역사책이나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남침이 틀림 없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6.25는 내 눈으로 보지 않아도 확신을 하지만 천안함은 내 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6.25는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서도 확신을 하신다고 그러셨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저는 동의하기가 매우 어렵고 후보자께서 두 가지 사건에 대해서 적용하는
기준과 잣대가 매우 틀리다라는 점에서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어떤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 저희들이 믿는다, 안 믿는다라고 하는 문제는 굉장히 가변적일 수 있는 문제겠지요. 그것이 지금 6.25라든지 천안함이라든지 어떤 이념적으로 어떤 사람을 굉장히 공격할 수 있는 이런 문제를 떠나 가지고 생각을 해 보면 그 표현을 확신이라고 하든 믿는다고 하든 사실은 자기가 경험하지 않고 알 수 없는 것을 여러 가지 환경을 통해 가지고 내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결국 그 이상을 얘기할 수 없는 것인데 사람에 따라서 표현을 확신이냐, 믿느냐, 뭐 이런 정도로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6.25 남침은… 확신을 하지만 천안함 폭침은 내가 확신할 수는 없다, 이런 것 아닙니까, 계속해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녀들의 집요한 질문에서 어떤 광기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논리의 비약을 서슴지 않으며 예단과 억측으로 이성을 질식시키려고 합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도 6.25가 남침이라는 걸 안다면 당연히 천안함도 폭침이라고 확신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어떤 논리적 연결성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이들이 생떼를 부리고 있는 느낌까지 갖게 됩니다.

“정부발표, 믿지만 말고 스스로 확신하라”니…

정부발표가 내포하고 있는 여러 과학적 허점에 대해 세세하게 따져 물을 능력은 안 되더라도, 시뻘겋게 녹슨 어뢰내부에 조개까지 살았던 흔적이 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 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첨단군함들이 쫙 깔려 있는 해역에 북한 잠수함이 살금살금 들어와 어뢰를 쏘아놓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설명에 화가 난다기 보다는 기가 막혔던 것이 저를 포함한 많은 국민들의 심정인 겁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회만 되면 “폭침이란 말에 동의하느냐, 안 하느냐”고 강박하면서 사상검증 잔치를 즐기고 있는 겁니다. 그 때마다 “어떻게 침몰했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가 더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당한 답변이 왜 나오지 않는지 답답한 심정입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못 그러더니 조용환 후보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기에 질린 갈릴레오 심정이 아마 그럴 거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마녀사냥의 선풍은 중세의 암흑시대가 아니라 합리주의와 휴머니즘을 표방한 르네상스의 최전성기에 휘몰아쳤다고 합니다. 절대 권력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한 교황, 국왕, 귀족, 당대의 일류 대학자, 재판관, 문화지식인들이 교회와 국가, 공적 권위와 권력들을 총동원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겁니다. 마녀라고 하는 소문이 난 여자들을 체포했고 마녀의 자식도 마녀로 간주되었으며 소추 받은 자가 심문과정에 자신이 아는 마녀를 지명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마녀로 한 번 의심을 받게 되면 마녀로 만들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고문이 합법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사건에서 피고인들은 자신이 마녀라는 사실을 부인했겠죠. 그럴 경우 마녀의 징표들을 들이밀며 마녀라는 사실을 시인할 것을 강요하는데 그 강요의 수단이 바로 고문이었다는 겁니다.

마녀사냥의 주역들이던 교황을 대형교회 목사들로, 국왕을 대통령으로, 귀족을 재벌과 국회의원으로, 일류 대(大)학자들을 족벌사학모리배들과 어용학자들, 재판관을 검찰, 문화지식인을 조중동 등 수구언론으로 대치해 보면 유럽 중세시대 마녀사냥이 마치 21세기 한국에서 좌파사냥으로 부활한 듯 보이기까지 합니다. “폭침이냐, 아니냐!”는 질문지를 마구 흔들어 대면서, 저들은 사실 좌파사냥이 아니라 양심과 상식을 압살하려하고 있는 겁니다. 그나마 고문이 없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요.

볼테르 말이 떠오릅니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
저는 여전히, “이게 분명히 북한에서 한 것 맞지요, 북한의 소행이지요?”라는 다그침에 “정부에서 그렇게 발표를 했고 저도 그럴 거 같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조 후보자의 답변이 성에 차지는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조 후보자의 양심의 자유를 위해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공격에 앞장서고 있군요.

강기석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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