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 1965년 부산 생.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로스쿨 졸업(법학박사). 울산대 및 동국대 교수,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역임.
- 현재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및 국가인권위원.
- 국문학술서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형사법의 성편향』,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등을 저술했고,
- 영문학술서로 『Litigation in Korea』를 책임 편집했으며, 역서로 『인권의 좌표』를,
- 시론집으로 『성찰하는 진보』,『보노보 찬가』를 발간했다.

<마우스콘신> 보셨나요?
1994년 발표된 미국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 중 <Mouseconsin>(쥐마을)이라는 7분짜리 짧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캐나다 의료보험의 아버지로 불리는 위대한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토미 더글라스(Tommy Douglas)의 연설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한국에는 2005년 제9회 서울 국제노동영화제에 소개된 바 있다.
필자의 글을 읽기 이전에, 이하의 동영상을 한번 보길 권한다.(참조로 이 동영상은 Facebook의 벗들이 찾아준 것임을 밝힌다)
쥐 마을 주민인 쥐들은 4년마다 한 번씩 대표자를 뽑는데 매번 고양이를 뽑는다.
흰 고양이 뽑았다가 검은 고양이 뽑았다가.
뽑힌 고양이가 통과시킨 법률은 고양이의 손이 쉽게 통과할 수 있게 쥐구멍 크기를 제한하는 법률,
고양이가 쥐를 쉽게 잡을 수 있도록 쥐의 주행속도를 제한하는 법률,
쥐구멍 입구의 모양을 조금 바꾸는 법률 따위이다.
그런데 언론은 고양이가 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선전하고,
쥐들도 아무 생각 없이 그 다음 선거에서 새로운 고양이, 즉 얼룩고양이를 뽑는다.
토미 더글라스와 이 영화는 쥐가 쥐를 대표로 뽑지 않고 고양이를 대표로 뽑는 정치현실을 통렬히 비판한 것이다.
쥐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고양이의 말에 현혹되어 고양이를 계속 자신의 대표로 뽑는 쥐는 얼마나 우매한가!
토미의 연설과 이 영화에서
우리는 쥐가 고양이에게 혹하여 표를 던지는 ‘계급배반투표’가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서민풍 우파’ 정치인의 등장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근래 들어 여권내 ‘서민풍’(庶民風) 대권주자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김태호 국무총리를 보자.
김문수는 노동운동가 출신답게 철저히 서민풍을 유지한다.
골프도 전혀 치지 않고 2008년부터 주말마다 직접 택시를 운전하며 도민들의 의견을 청취한다.
18차례에 걸쳐 26개 시·군에서 약 3000㎞를 운전했다. 그는 진지하고 솔직하며 몸을 던진다.
김태호 내각에서 실제 누가 총리역할을 할지는 짐작이 되지만, 김태호도 ‘농고 출신’, ‘소장수의 아들’임을 내세우며 승부를 걸고 있다.
그는 관용차 뒷좌석에 ‘겸손’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고,
경남지역에서 “형님이 800명, 아버님이 1000명”이라는 얘기가 돌 정도로 소탈한 모습을 유지한다.
사실 과거 이명박 대통령도 대통령 후보시절 풀빵장사를 하면서 중·고교를 마치고,
대학 진학해서는 이태원 시장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하면서 고학을 했음을 강조했다.
정권 2인자 이재오 특임장관이 은평재보궐선거에서 얼마나 낮은 자세를 유지했는지도 상기해보라.
절대빈곤에 대한 집단경험의 기억이 남아 있고,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대중은
진보건 보수건 이러한 서민 체취를 풍기는 정치인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노무현이 이회창을 누른 이유 중의 하나도 이회창의 엘리트주의, 귀족주의에 비교되는
질박(質朴)하고 소탈한 노무현의 매력 때문이었다.
실제 대중은 ‘반서민 정책’의 신봉자이지만 ‘친서민 풍모’를 갖춘 정치인에게 혹하기도 한다.
절대 다수의 대중은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노동운동을 억압하는 ‘친자본’ 정치인이 과거 노동운동의 경험을 절절히 말하면 같이 눈물 짓으며 그를 택하기도 한다.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중소기업은 항상 ‘을’이고 양자간의 계약은 ‘을사(乙死)조약’이지만,
중소기업인은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밀고 나가는 정치인이 ‘실물경제’를 안다는 이유로 그에게 표를 던진다.
게다가 이러한 서민풍 우파정치인이 바닥부터 올라온 성공·출세신화를 가지고 있다면,
대중은 자신의 욕망을 그에게 투영하고 자신과 그를 일체화하며 그를 더 지지한다.
대중에게 이러한 경향이 있다고 하여 대중이 ‘서민풍’이라는 단일기준으로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대중은 ’강남 좌파’ 또는 ‘좌파 부르주아’라고 하더라도
진보적 비전과 정책에 대한 신념과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실력이 있다고 판단하면 그를 좋아하고 밀어준다.
특히 그가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자신이 속한 계급에 반하는 말과 행동을 일관되게 보여준다면.
미국에서 하바드 로스쿨 출신 엘리트이자 흑인 액센트가 거의 없는 오바마에게 대중이 왜 열광했는지 생각해보라.
이렇게 대중은 복합적이고 모순적이며 역동적이다.
필자는 이들 ’서민풍’ 보수정치인의 (대)기업우선 정책, 4대강 지지 정책, 대북강경노선 등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민풍’ 대권주자의 등장 앞에서 진보·개혁진영의 정치인, 활동가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단지 “제네들은 가짜 서민이래요”, “제네들 하는 짓은 다 쇼래요”라고 손가락질하며 비난만 하면 족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중에게 “허위의식에서 깨어나라”라고 호통만 치면 족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중에게 사이비 친서민정책을 조목조목 강의하고 진정한 친서민정책이 담긴 팸플릿을 나눠주기만 하면 족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재오, 김문수, 김태호가 왜 선거에게 승리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진보 인사의 ‘진화’가 필요하다
먼저 진보·개혁진영의 사람들은 자신 속에 똬리 틀고 있는 도덕적 우월감을 버려야 한다.
대중을 가르치려고 들지 말고, 대중의 말을 듣고 또 들어야 한다.
대중의 교화나 훈육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이 진보의 기본철학이 아니던가.
그렇다. 진보·개혁진영의 사람들은 ‘이성의 전파자’만이 아니라 ‘감성의 공유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주장하는 비전과 정책이 그 자체만이 아니라 주장자의 인간적 매력, 진정성과 결합되어
대중에게 전달되고, 느껴지고, 그리하여 번져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활동, 사회활동이 단지 자신이 새로운 권력자가 되어 우쭐거리며 살기 위함이 아님을 대중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단체장이나 의원이 된 진보 인사들은 지방행정과 의회 활동에서 자신이 ‘유능한 진보’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의전’ 따지고 ‘무게’ 따지고 ‘급’ 따지는 행태를 보이다간 다음 선거에서의 낙선이 예약되어 있음을 알아아 한다.
이상과 같은 진보 인사의 진화가 있을 때 대중은 서민풍 보수파 인사의 품을 벗어날 것이다.
6.2 지방선거 이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서는 너도 나도 ‘복지국가’를 얘기하고 ‘친서민’을 운운한다.
이 속에서 ‘서촌’(鼠村)의 고양이들이 ‘친서민(親鼠民) 정책’을 남발하며 자신이 마치 쥐인 것처럼 행세한다.
쥐 가면 뒤에 가려진 고양이의 모습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를 간파하는 쥐들도 자신이 ‘친서민’적인 정책을 선제적(先制的)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뒷북 치며 평론하는 것이 진보의 역할은 아니다.
어떤 고양이는 자신이 과거 쥐였음을 강조하며 자신이야말로 쥐의 고통과 꿈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선전한다.
이들은 이미 유전자 이식·변형을 통해 고양이가 된지 오래이다.
그러나 이를 직시하는 쥐들도 자신이 진정성, 공감력, 신뢰감, 실천력을 갖춘 쥐인지 돌아봐야 한다.
까칠한 진보를 넘어 믿음직한, 그래서 절로 안기고 싶은 진보로 발전해야 한다.
전국의 쥐여, 성찰하고 진화하라! 그러면서 단결하고 연대하라!
그러다보면 쥐가 쥐 지도자를 찍는 것은 물론, 고양이가 쥐 지도자에게 반해 표를 던지는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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