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은 이런 분이셨다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09-07-06)
박 군.
참여정부 출범 후인 2003년 6월 5일, 청와대 부속실 비서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네. 노무현 대통령께서 내게 공개편지를 쓰셨다는 것이네.
전화를 하시면 될텐데 무슨 공개편지냐면서 그냥 전화로 하시라고 했더니 벌써 발표했다는군. 왠지 마음이 무거웠네. 내용이 알고 싶어서 보내 달라고 했네.
당시는 내가 죄도 없이 검찰에 소환되어 고초를 겪은 때였지. 편지의 내용은 나에 대한 위로와 언론에 대한 대통령으로의 소신이었네. 대통령은 공개편지로라도 내게 위로를 해 주고 싶으셨나 보네.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왜 개인에게 대통령이 공개편지를 보내느냐고 기를 썼지.
6년 전 편지지만 전문을 공개하네. 편지 제목이 ‘이기명 선생님에게 올리는 글’이네. 언론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여기 다 있네.
이기명 선생님에게 올리는 글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요즘 선생님을 생각하면 죄스러운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 하시겠지요. “이제 대통령이 되셨으니 나의 고생 같은 작은 일은 무시하고 더 큰 일에 신경을 쓰시라. 나에게도 죄가 있지 않으냐. 인간 노무현을 좋아한 죄.” 하지만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런 마음이셨기 때문에 저희와 첫 인연이었던 88년 KBS 노조 강연에서 기억나십니까. 선생님? 당시 민주당 출입기자들에게 조차 ‘저로부터 돈 한 푼 받은 적도 없고 저에게 돈 한 푼도 모아 준 적이 없는 이상한 후원회장’으로 기억되고 있는 그런 선생님께서 제가 대통령이 된 후 갑자기 이권 개입 및 부동산 투기 의혹 의심자로 매도되고 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선생님? 그때 우리는 선생님의 용인 땅은 돈하고는 거리가 먼 땅이라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그 땅을 담보로 한 은행 빚으로 근근이 가계를 꾸리고 계신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용인 땅이 최근에 용인지역 개발의 여파로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매력적인 땅이 되고 그래서 맺게 된 계약서 몇 장 때문에 선생님이 갑자기 언론에 ‘대통령을 등에 업은 이권 개입 의혹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나라당 출신의 용인시장과 경기도 지사가 허가권을 쥐고 있는 곳에서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던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이고 ‘진실이 진실로 전달되는 나라입니까? 선생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겠지요. 선생님! 이렇게 한 편의 의한 굴복 아니면 밀월이라는 관계는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 어느 것도 적절한 관계가 아닙니다. 언론과의 관계측면에서 저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이러한 건강한 긴장관계를 위해 저는 노력할 것입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정당한 권한과 독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반론권과 오보 대응권을 가지고 언론문화 발전에 일조하겠습니다. 원칙이 필요할 때는 원칙으로 하겠습니다. 참고 기다려야 할 때는 인내로서 하겠습니다. 가장 힘든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관계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바로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 제기로 대통령의 주변을 공격하는 방법입니다. 과거 정권에도 있었고 최근 저와 관련해서 있습니다. 그 다음은 선생님입니다. 왜냐면 부당한 권력에 제가 굴복하는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없을 것이기 대문입니다. 선생님. 그런데도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악랄한 범행을 저지르고 검찰에 체포된 사람도 피의자 신분일 때는 언론에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권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의혹이 거짓으로 판명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이미 명예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습니다. 선생님. 신문을 펼치면 대통령으로부터 일반 국민까지 ‘내가 이것만 고치면 2만 불 시대가 곧 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아침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뉴스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이 땅에는 오직 투철한 사명감으로 현실적인 어려움과 싸우고 있는 많은 양심적인 기자들이 있습니다. 선생님!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언론 문화를 위해 꼭 필요한 건강한 긴장 관계를 끝까지 유지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저로 인해 생긴 선생님의 피해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대한민국 새 대통령 노 무 현 |
아아! 노무현
-끊지도 못하는 이 모진 목숨-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09-06-22)
박 군.
이른 새벽, 부엉이 바위 위에 서 있던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네. 어릴 때부터 오르던 부엉이 바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코흘리개 시절부터 뛰어놀던 정든 봉하 마을을 내려다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박 군.
눈앞이 흐려져 글이 쓰여 지지 않네. 말라 버린 눈물인 줄 알았는데 또 나오네. 죽는 날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할까. 눈물을 흘리면 뭘 하나. 모두가 부질없는 일인 것을.
머리와 가슴은 없고 몸둥이만 살아있네. 너무 억울하고 원통해서 못 살겠네. 세상에 이렇게 무도한 자들이 있단 말인가.
박 군.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오지.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자비를 바라는 것은 이리에게 왜 어린 양을 잡아먹고 양의 어미를 울리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다.’라고.
왜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이가 갈리도록 미웠고 저주스러웠을까. 상고 출신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 천형의 죄인이란 말인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노무현이 그처럼 죽이고 싶도록 미웠을까.
비록 가난하더라도 소외당하지 않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을 염원하며 온몸으로 살았던 것이 죄란 말인가. 설사 아무리 밉다 하더라도 이 지경으로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이런 개만도 못한 세상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박 군.
적지 않은 나이. 이렇게 나이를 먹도록 왜 미워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없겠나. 세상엔 좋은 인간 나쁜 인간 다 섞여 살게 마련이고 나쁜 인간 미워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이 나이가 되도록 요즘처럼 인간을 미워한 적이 없었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런 인간들을 좋아한 인간들도 있겠지만 나는 아니었네. 지금은 이들은 양반이란 생각이네. 아아 어쩜 내 마음이 이 지경이 됐단 말인가.
죽을 날도 멀지 않은 내가 이렇게 사람을 미워해도 되는지 딱하지만 내가 죽어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이 미움은 가시지 않을 것이라고 믿네.
가슴이 바삭바삭 말라서 이제는 어디 스치기만 해도 부서져 버릴 것만 같네. 하루에 열두 번씩 떠오르는 부엉이 바위와 그 위에 섰던 대통령, 그리고 이 더러운 세상을 생각할 때 마다 살아갈 이유는 자꾸 사라지는데 치사하고 더럽고 모진 게 인간의 목숨인지 이렇게 살아있다네. 누가 대신 죽여주지 않나.
자네나 나나 평생 글을 쓰면서 먹고 살았는데 솔직히 이젠 글도 안 쓰여 지네. 눈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써 놓고 나면 내가 읽기에도 무섭고 쓰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고 어디 깊은 산속에라도 들어가 움막이라도 파고 살다가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네.
새벽에 잠이 깨면 노무현이라는 사람과의 20여 년 인연이 선하게 떠오르네. 정치적인 잘잘못이야 다 있게 마련이고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할 정치야 하느님인들 하실 수가 있겠나.
20여 년 동안 후원회장으로 겪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은 날 울리네. 항상 사람의 냄새가 물씬했던 노무현,
낙선의원 시절, 여수 인근의 조그만 농협에 강연을 갔을 때 지독한 독감에 걸려 우유 한 잔도 못 넘기면서 고열로 신음을 하기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강연 취소하고 돌아가자고 했더니 자기를 몇 달 동안 기다린 사람들이라며 기어코 강연을 마치고 거의 실신한 체 귀경하던 모습이 떠오르네.
운전하던 최 군이 예비군 훈련으로 내가 대신 운전을 해 조그만 노동조합 강연을 갈 때 나이 먹은 나를 배려해서 자기가 운전을 하겠다며 자기도 운전 잘하니 걱정 말라고 웃던 그의 모습과 가끔 장거리 운전을 할 때면 미안해하며 뒷좌석에서 좀 자겠다고 바로 곯아떨어지던 그의 지친 얼굴, 담배를 안 피우는 나 때문에 내 차에서는 절대로 담배를 안 피우던 노무현, 왜 이런 기억들이 날 슬프게 하는지 미치겠네.
새벽 두 시가 되어 돌아오는 귀경 길에 <펜 벨트>가 끊어져 오도 가도 못하고 두 시 간 가까이 길에 서 있을 때 똥차로 모신 내가 미안해하면 오히려 자기가 더 미안해하던 모습은 지금 다시 눈물이 되어 흐르네.
부산 동구에서 허삼수하고 두 번째 붙었을 때 시장에 가면 시장상인들이 노무현 후보에게 ‘지역구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고 비난을 하네.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하면 끝날 일을 꼭 상인을 붙들고 국회의원과 시의원이 할 일은 따로 있다면서 이해를 시키네. 시장복판에서 유권자와 입후보자가 토론을 벌리는 모습을 보고 운동원들이 얼마나 가슴이 답답했겠나.
지리산에서 있은 전국 당원 연수회에서 강연을 마치고 유인태 노무현을 태우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내가 과속으로 전주 인근에서 걸렸네. 교통순경이 경례를 하며 “과속입니다” 하다가 노무현을 알아보고는 씩 웃으며 “가십시오.” 할 때 그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며 미안해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
어쩌다가 일요일 날 청와대에서 점심을 함께 할 때 입이 험한 내가 나쁜 X이라고 이름을 거명하며 욕을 하면 너무 비난하지 말라고 나를 말렸네.
“그 사람들도 본심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정치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언론문제가 심각할 때도 대통령은 적어도 자신이 당선된 후 언론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안 변하더라 며 씁쓸해 했네. 내가 그랬지. 개꼬리 3년 묻어놔도 황모 안 된다고. 집권 초기에 언론에 대해 왜 원칙대로 하지 않았나 하고 지금도 한으로 남네.
자신들은 온갖 못된 짓을 다 하면서 마치 제왕처럼 행세하는 언론들, 이들이 건재 하는 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쓰레기통에서 썩네.
후원회장이라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일도 없이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 법률상담이나 해 달라던 내 한심한 모습, 표에는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 강연에 끌고 가 시간을 빼앗을 내가 지금 생각하면 한심한 후원회장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난 참으로 행복한 20년 세월을 지냈네. 그와 함께라면 그냥 좋았고 사람이 어떻게 저토록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판단할 줄 아는지 경탄을 했고 그는 관행이라고 해서 슬쩍 넘어가던 온갖 부조리에서 날 구해 주었네.
늘 내 아이들한테 말했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이 잘 안 될 때 노무현 같으면 어떻게 판단할까 생각하고 그가 결정했을 것이라고 믿는 대로 결정하면 옳은 결정이 될 것이다.”
아내가 내게 한 말이 떠오르네.
“당신이 노무현을 사랑하는 마음의 십분의 일만 나를 사랑하면 당신을 업고 다닐 거에요.”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고 그를 사랑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네. 사람들은 노무현을 위하며 이렇게 기도하네.
“대통령님. 이제 고통을 잊고 편안히 쉬십시오.”
난 다르네.
“대통령님. 눈 크게 뜨시고 이 나라 정치를 지켜보십시오. 어느 X이 이 나라를 망치는지 보시고 꿈에라도 나타나 정신을 차리게 회초리를 드십시오.”
아아 노무현!
부엉이 바위 위에서 마지막 발을 내딛으며 그가 국민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자넨 알겠지. 나도 안다네. 국민들도 알 것이라고 믿네.
비록 육신은 이 세상에 없어도 그의 영혼은 하늘 위에서 목숨 바쳐 사랑하던 조국과 국민을 지켜 줄 것이네.
2009.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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