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민주주의

펌) 노공이산의 전략과 유시민 모델

똘돌이 2010. 5. 31. 10:09

1. 노공이산의 꿈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의 최종 결과가 다가오고 있다.

많은 후보들이 선거에 출마했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야당 단일후보들을 지지하고 있는데, 선거 승리는 물론 낙관할 수 없다. 박빙이다. 천안함 문제로 북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북풍 때문에 이 국가를 위해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어젠더들이 제대로 토론조차 되지 못하고 휘발되고 있음을 나는 못내 아쉽다.

포지티브 선거로 갔으면, 미디어와 학자들이 다루고 이슈잉 할 어젠더는 ‘지방연합정권’의 출현였다. 이 중요한 주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이번 선거가 지나가고 있어서 정말 안타깝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승패와 무관하게 진보의 미래를 꿈꾸는 우리가 고민할 문제여서 선거 막바지에 일부러 정리해본다.

야당들은 지방연합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공약으로 단일후보로 이번 선거에 임하고 있다. 나는 지방에서부터 우리정치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 노공(노무현 대통령, 노공이산은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주의 2.0에서 사용했던 ID였다. 이하 이 글에서 노공은 노무현 대통령을 뜻한다.)의 마지막 꿈이며 진보의 미래가 시작되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 국가의 가장 큰 문제는 근본이 허약한 데 있다. 지방이다. 지방이 죽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체제는 지방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서울이 빨아들이는 구조다. 이조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한 이후, 조선이 망하고 일제가 망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이 징그럽고도 무서운 구조는 계속 유지되었다.

이 국가의 기득권은 600년 동안 서울에 있었다. 심지어 천하의 선비 다산 정약용 조차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는 도성과 시골의 문화(文華) 수준 차이가 심해 도성에서 몇십 리만 벗어나도 태고의 원시 사회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멀고 먼 외딴 곳으로 숨어드는 것은 결국 자손을 노루나 토끼처럼 만들어 버리는 길이다.  벼슬길이 끊어져도 서울 언저리에 의탁해 살면서 문화의 안목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한다”(다산 정약용(1762∼1836), ‘가계(家誡)’에서 두 아들에게 당부했던 말)

교육. 그렇다. 언제나 욕망의 마지막 찌꺼기는 자식교육에 대한 갈망이다.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망은 옳지만, 그것이 욕망들이 되었을 때는 세상이 이토록 왜곡된다. 보수적인 부모는 자식이 명문대생이 되기를 바라고 진보적인 부모는 자식이 진보적인 명문대생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 교육. 서울을 떠나서 교육을 생각할 수가 없다. 무수한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고, 서울를 향하는 욕망은 결국 재개발이 아닌 죄개발을 향해 무한 질주한다.

이 구조에서 돈을 버는 것은 어렵지만 단순하다. 피라미드 구조이니, 누구보다도 빨리 서울에 도착해서, 나보다 서울에 늦게 도착한 지방민을 착취하면 된다. 개인의 생존전략이 이럴진데, 이 기형적 구조로 이루어진 절묘한 착취의 정점에 선 지역주의 정당들이 오죽한가.

한국의 주요 정당들은 수십년 동안 잘 만들어진 구조를 적절하게 악용하면서, 적대감을 서로에게 공급하며 서로 버티고 있다. 지역의 토호들이 낳은 아이들은 태어나 고등학교 정도의 성장만 지방에서 했을 뿐 서울에서 대학교 학맥을 맺고, 일자리로 캐리어를 쌓았으며, 인생의 대부분은 서울에 사놓은 집에서 보내는 사실상의 서울 사람이다. 그러나 선거 때면 공천을 받아 옛 고향으로 내려가 잊어버린 사투리로 한표 찍어줄 것을 호소하고, 중앙정치의 무대에서 자신이 고향을 위해 어떻게 시혜적으로 예산이라는 전과물을 따올 수 있었는지를 과시함으로써, 정치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진정으로 지방이 발전하는 것을 지방 유착형 정당의 정치인들은 원하지 않는다.

지방의 한국인의 의식이 깨어나고 조직화 되어서, 지방이 서울로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을 봉납하는 구조를 혁신하겠다고 나서기라도 하면, 그들의 권력기반은 붕괴되고 말테니까.

정치의 중심은 결국 정당이기에, 이런 지역구도를 깨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진보정당들이 진성당원제를 채택하고, 당권을 당원에게 부여함으로써 지역주의 정당과 맞써려고 시도했다. 열린 우리당도 그런 시도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지방의 한국인들은 주술에라도 걸린듯이 지역주의 정당에 끊임없이 투표했고. 지금 한국의 주요 정당 들의 정치구조는 대단히 비민주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

정당구조를 바꿈으로써 정치구조를 바꾸고, 정치구조를 바꾸어서 이 국가의 미래를 바꾸려고 했던 세력들. 노공과 함께 꿈꾸고 중앙에서 한판 크게 승부를 벌린 세력은 패배했다. 그리고 그 순간 노공이 위대한 전략적 선택을 했다. 그는 사유했다.

내 꿈이 패배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중앙에서의 한번의 패배일뿐이다. 더 포기하지 않겠다. 정말 이 국가가 허약한 근본인 지방으로 가겠다고. 거기서 진정한 내 진면목으로 싸우겠다. 퇴임 무렵 노공에게 중앙이란 지방이었다. 지방이 중앙이었다. 둘은 다르지 않았다.

서울에서 변화를 이끌 수 없다면.

지방에서 변화를 시작한다.

오래된 생각이다.

지방에서 시작하는 것은 노공의 오래된 꿈이었다. 노공이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어서 지방의 문제에 천착하기 시작한 것이 1994년이었다. 이후 대통령이 되어서 행정수도복합도시라는 지방분권정책을 한나라당 (당시 박근혜 대표)와 토론과 타협으로 이 필생의 꿈을 이루어냈지만, 정권을 잡은 후 한나라당의 친이계는 세종시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다. 만약 노공이 살아있었다면, 세종시 원안 폐기도 사대강 강행도 저들이 순순히 획책할 수는 없었으리라. 2002년 거스 히딩크는 한국 월드컵 추국 감독으로 부임해 와서 한국 국가 대표 축구 선수들의 문제는 정신력이 아니라 체력이 문제라는 것을 간파하고, 체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문제의 본질은 기본기다. 한국 정치의 뿌리는 지방이며, 지방의 체력이 커져서 서울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수준으로 단단해지지 않으면, 이 국가의 문제는 켤코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노공은 대한한국의 급소가 지방이며, 이 국가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도 중앙이 아니라 지방, 즉 변방이어야 한다고. 진보의 미래는 중앙이 아니라 변방에서 시작되야 함을 알았다. 본능적으로 확신했다. 그래서 지방으로 내려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진정한 생의 마지막 업적을 쌓으려고 했다.

간략하게 말해서 노공의 전략은 이러했다.

1) 지방으로 내려간다. - 이동한다.

2) 거기서 공부한다. -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컨텐츠를 생산해낸다. 민주주의 2.0과 같은 시도와 학자들과 진보의 미래에 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것.

3) 실적을 보여준다. -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지방에서 살 길을 챙겨 보여준다. 남이 부정하거나 가릴수 없는 진정한 실적을 쌓는다. 그리고 때를 기다린다.

노공의 위대함은 3)이다. 그는 자신이 서울에 살면서 지방에 내려갑시다라고 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 지 알았다. 그래서 직접 쉬지않고 보여주려고 했다.

이것이 노공의 전략이었다. 노공이산의 꿈은 그래서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전략이다. 우공의 꿈이 당대로 그치는 거이 아니라, 우공의 자손들로 이어져서 마침내 산이 옮겨지는 것. 그러니 가야했다. 화려한 중앙정치 싸움이 아니라, 지방에서 견실한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그것을 이어간다. 노공의 말대로 폐족이 된 그와 그를 지지하던 세력들이 중앙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명하고 치사해지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화려하지 않지만 기회가 있는 변방에서 사람들 눈에 보여줄 명백한 실적을 쌓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방에서도 살만한 부자시민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노공은 공부했다. 가져갈 권리가 있는 합법적 통치자료를 그래서 가지고 간 것이다. 자신의 앎을 확장하려고 했다. 공부해서 남주려고 했다.

노공은 일했다. 사람들에게 지방에서도 살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화포천을 청소하고, 오리 농법으로 쌀을 지으며, 장군차를 심었다.

그래서 마침내 위험해졌다.

정적들에게, 서울 피라미드 구조에 충성하는 사다리에 올라타 인생을 투자한 모든 세력들에게 (심지어 진보정치세력과 진보 언론을 망라하여) 노공은 얼마나 위험한 인간인가! 너는 패배했다고 갖은 수모를 다 주어서 내쫓았는데도, 서울 카르텔에 복무하지 않고 지방에 내려가서 저 귀한 지식들을 마구 퍼주려고 하고, 서울 주의를 파괴하려고 하다니!

그래서 노공의 이 위대한 선택은 결국 그의 정적들에게 착시현상을 야기했다. 그는 지지자들과 떨어져 홀로 있는 것으로 보였다. 찾아오는 이들은 노공의 큰 뜻을 아직 몰랐다. 노공도 크게 선언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의 전략은 10년이고, 20년이고 살아가는 생의 나날로 세상에 자신의 진심을 보이는 것이였으므로, 그래서 그를 찾아오는 이들은 관광객들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미래의 화근이 될 그를 죽일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러므로 노공은 반드시 죽어야 했다. 노공을 죽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진실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니까. 서울이 뭐가 대수인데. 어 지방에서도 행복하게 살수 있잖아? 주술에서 깨어나 서울을 떠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들은 합심해서 노공의 약점을 찾아내어 그를 옥죄이고 스스로 자살하게 만들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노공은 스스로 공부를 해체하였다. 공부모임을 해체하고, 함께 공부하던 이들을 돌려보냈다. 평생 지적단련을 멈추지 않았던 노공이 앎을 포기하는 순간이 죽음을 결심한 결정적 증조였지만, 우리는 알지 못했다. 노공이 정적들과 달리 수치를 아는 사람이었기에, 자신 때문에 더 이상 주변사람이 피해를 받는 것을 결코 견디지 못할 것을 알고, 그를 부엉이 바위로 밀어내어 천길 낭떠러지로 밀쳐버린 것이다. 그랬다. 노공은 변방에 홀로 있었다. 만약, 노공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그 호소함에 응하는 이들 십만명, 아니 오만명, 아니 만명이라도 있는 서울 근처에서 살았다면, 노공은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노공은 사라지고, 노공이산의 전략은 남았다. 남은 우리는 이제 그의 꿈을, 그의 전략을 다시 생각한다.

진보의 미래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는 안다.

우리는 부엉이 바위 밑에서 서있다. 노공이 쓰러진 자리다. 산을 옮기려면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걸어가겠다. 여기서부터 공부하겠다. 여기서부터 실적을 쌓겠다. 그래서 서울까지 걸어가겠다. 그것으로 이 나라를 바꾸겠다.

우리는 지방에서 시작한다.

이것이 진보의 미래가 시작되는 길이다.

이제 생각한다. 노공을 살해한 이 잔인한 구도를 혁파하고 이 세상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드는 수고스러운 임무는 이제 우리의 것이다. 그와 함께 꿈을 꾸고, 그와 함께 걸어갔던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러므로 운명이다. 피차의 운명이다. 노공이 노공이산이라는 우공이산(愚公移山)에서 연유한 아이디를 쓴 것이 운명이며, 우리가 그가 멈춘 자리 (변방)에서 시작하기를 시작하는 것,

변방에서 우리가 시작하고

변방에서 우리가 공부하며

변방에서 우리가 실적을 내는 것.

이 시작의 시작은 운명이다.


2. 진보의 미래는 지방연합정권이다.

진보의 미래를 매우 협소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이 글에서는 순수진보주의자 또는 진보원리주의라고 하자. 그들의 전략은 대단히 간단하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순수함으로 승부하자는 것이다. 좀 더 이념적이고, 계급적으로 순수한 정당을 구성하고 유권자 대중을 설득하면 집권과 통치가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분석이 정당한 것일까?

예를 들겠다. 내 후배가 나에게 이런 상담을 해왔다.

“선배님, 제가 사랑하는 한 여자가 있어요. 그녀는 평소에 날 사랑한다고 말해요. 내 생각에 동감하는 태도나 말로 봐서 그녀는 날 분명히 사랑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조금 사소한 문제가 있는데, 그녀는 내가 가장 힘들때 함께 있고 있을 때, 다른 남자와 자요. 번번히 그런다. 계속 그런다. 왜 그러는거죠?”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그녀는 널 사랑하는 것 같지 않은데? 넌 어장관리 당하고 있는 것 같아.”

이 문장을 정치에 대입해보자.

만약 누군가 평소에 (여론조사 때) 날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결정적인 순간(투표)엔 다른 사람을 선택한다면-

그는 사실 날 사랑하지 않았던 거다.

평소에 뭐라고 다정하게 속삭였던지, 그(그녀)는 널 사랑하지 않은거다. 날 사랑한다고 실컷 이야기 해놓고 섹스(투표)는 항상 다른 사람하고만 한다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진보원리주의자들은 투표하면 진보정치 해주겠다고 유권자들에게 사기치고 데려가서 그걸 안해줬기 때문에 사기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배신당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의 시점 때문에 내 눈에만 안 보일뿐, 실제로는 그렇게 지지해서 얻은 혜택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녀(진보성향의 유권자)는 번번히 그 요구에 응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몇 번의 선거동안 계속 이럴 리가 없잖아?

배신당한 입장에서는 비극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자 할지 모르지만, 한번도 아니고 이런 일이 번번히 벌어진다면, 뭔가 잘못되었다. 분명히 잘못되었다. 그리고 그 잘못은 그녀나 그녀를 유혹한 나쁜 놈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아닌가?

그러니 <비판적 지지론>의 비판은 환상이다. 순수진보주의자들은 <비판적 지지론>라는 환상에 고통스러워한다. 분명히 말하는데. 그건 환상이다. 평소에 진보정당을 지지한다고 하던 유권자가 한평생을 함께하기로 맹세한 봉건시대의 신부도 아니고, 진보정당과 노예 계약을 맺은 연예인도 아니다. 진보적 성향이라고 말해왔던 유권자는 언제든지 배신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때 마침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방식으로 변명할 수 있는 "비판적 지지"라는 명분이 생기자, 이에 호응하고 나중에 화를 내는 진보정당에는 <비판적 지지>때문에 그런거야.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야. 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 말이다.

유권자의 속성은 배신자다.

지금은 스윙보우트(swing vote) 시대다. 스윙보우트는 1명의 유권자가 가지는 복잡한 다면성 때문에 형성된다.

우리는 여기 한 사람의 유권자 A씨를 상상해 보자. 그는 고향이 전라도다. 광주 사태는 어른들의 이야기로 충분히 체험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는 가장 친한 고향의 친구들과 이야기 할때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고향 사람들이 어쨌든 잘되기를 바란다. 그의 성장 배경상 정치적 성향은 민주당이다.

대학교 때 그는 서울로 진학했다. 서울의 삶은 그의 사투리를 점점 잊게 만들었다. 어떻게 운이 좋아 직장을 잡았고, 결혼도 했고 경기도 배드타운에 은행 빚을 얻어 집도 샀다. 그러나 주민등록주소지만 서울일 뿐 그의 주 생활은 서울에서 벌어진다. 출퇴근 하기 위해 하루에 50Km 이상 이동하기에, 자신이 경기도 사람이라는 지역 커뮤니티의 소속감은 매우 약하며, 지역 정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역신문은 구독하지 않아서 지역의 이슈가 뭔지도 잘 모른다. 거주적으로 보면 그는 무당파다.

그런데 직장에서 만나는 주요 고객 중에도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고, 직장 내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가 서야하는 파벌의 성향도 어쩌다 보니 보수적이여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점점 보수 성향의 말들이 다 틀린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은행빚을 끼고 아파트를 산 그는 집주인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큰일이다. 그의 생활의 정치적 성향은 한나라당이다.

그에게는 아토피가 심한 아이가 하나 있다. 집에서 신경을 쓴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낡은 학교건물이 문제인것 같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야 할까 고민한 적도 있다. 교육이 날이 갈수록 사교육 집중으로 가는 건 도저히 자신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가 없기에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교육에서는 평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아내는 결혼 적 시민사회단체의 일을 한적도 있어서 이런 걱정을 서로 이야기를 할때는 가끔 진보정당의 교육정책이 나올 때도 있다. 물론 그게 가능할까 하는 회의적인 판단은 현실주의자인 그에겐 항상 뒤따르지만 말이다. 그와 그의 가족들의 교육상 추구하는 정치적 성향은 진보정당이다.

인간적으로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도시 386 생활자로써 민주당 분당으로 노무현을 비판하기는 했지만, 직장에서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고 일이 만들어지는 지를 실제로 체험함 그로써는 그토록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일하려고 노력한 노무현에 대한 심정적 지지가 있었다. 죽기 직전에 담배 한대를 청한 그 비참한 기분을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그는 안다. 그는 인간적인 정치 성향은 노무현 (친노, 또는 국민참여당) 이다.

물론 이 유권자 A씨는 하나의 가상적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유권자가 얼마나 다층적인 레이어로 정치를 응시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그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어떻게 투표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기 복잡해서 투표를 포기하고 놀러가버리거나,

후보투표지와 정당투표지를 섞어서 찍음으로써 내면의 정치적 불균형에 균형을 맞출 것이다.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진보정당을, 집값은 한나라당을 고향의 발전을 위해서 민주당을, 노무현에 대한 심정적 동조심을 느낀다면 국민참여당을 찍을 수 있다면, 그는 기꺼히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복잡한 정치적 성향을 모두 반영하기에는 투표용지가 너무 적다.

그는 결코 계급을 위해 투표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든지 스윙보우트를 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진보원리주의자들에 대해 동정심을 품는다. 그들은 어리석다. 근세 이전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인간이나, 혹은 정당이 국가를 지배하는 구조가 형성되는 과잉된 시기의 사람들 그러니까 옛날 사람들에게나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은 굉장히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진보원리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똑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바보라고 확신한다. 인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와 다른 정치적 성향을 단일하게 가질 수 있으며, 어떻게 인간이 자기 계급에 충실한 정당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의아해한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 스윙 보우트는 현대를 살아가는 보통 인간의 본질이다. 이걸 이제 와 바꿀 수는 없다. 때로는 분노투표나, 폭주 투표같은 감정적인 투표가 이루어지지도 모른다. (2004년 총선 같은) 그러나 기본은 스윙 보우트다. 우리 모두는 다양한 삶의 층위를 살아가고 있으며, 삶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정치적 선택을 위한 중요한 기준들을 매일 조금씩 수정하고 쌓아간다. 잊지말자.현대 유권자의 본질은 배신자다.

그러자 진보원리주의자들은 어이없게도 정치과잉 - 계급투쟁을 강화한다. 여기서 진보원리주의자들의 비극이 시작된다.

초기 좌파는 교육으로 인간을 완전 개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교조적인 초기 공산주의가 소멸한 이후에도 '당원 교육을 집중 강화함으로써 당의 순수성을 확보하고 당세가 확장될 수 있다는' 환상은 좌파 정당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교육과 선전은 물론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역설적인 문제가 생긴다. 교육과 선전을 강화하면 할수록 진보정당은 스윙 보우트에 취약해진다.

솔직히 유권자 A씨가 당면한 삶의 문제는 정치로 해결되어야 할 것도 있지만, 그 해결을 위해서 유권자 A가 자기 인생을 그토록 과잉되게 투자하고 고민할 이유는 없다. 그건 낭비다. 그리고 이틈을 파고는 것이 한나라당의 전략이다.

한나라당은 말한다. 깊게 생각 하지마라. 저쪽은 복잡하다. 대신 우린 돈으로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이런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에 반대편에 선 정당들은 한나라당만큼의 합리적인 갈등해결 수단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기타 야당은 한나라당만큼 효율적이지가 못했다. 한나라당의 정치를 화폐경제 수준이라고 하면 진보원리주의자들의 정치는 물물교환 경제 수준이다. 100% 단호하게 감정을 서로 교환해야만 정치의 정의가 완성되니까 말이다.

한나라당의 솔류션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빠르게 해결할수 있다.

진보원리주의자의 솔류션은 (그들에 주장에 의하면) 완벽하다고 한다. 그러나 매우 복잡하고, 유권자 A가 진보원리주의자들의 6주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그동안 진보원리주의자들과 감정적으로 다투었던 자유주의 세력을 뼈속깊이 저주하는 의식까지 치르고 난 뒤, 자기 계급의 이익을 절처하게 수호하는 전사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현대의 유권자들에게 이런 해결책이 먹혀들 리 없다. 복잡한 것은 악이다. 게다가 정치과잉이라니. 국민 전원이 당원이면서도 국가의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나라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국가의 이름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다. 정치과잉은 유권자 A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스윙보우트 시대의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그러므로 정치세력의 순수함이 아니라, 정치적 의사결정의 합리성이다. 그의 내면에 민주당의 욕구와 무당파의 욕구와 한나라당의 욕구와 진보정당의 욕구가 소용돌이치고 있음은 분명한데,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판단하는데 너무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유권자 A씨는 원하지 않는다.

다만, 효율성을 뜨기를 바란다. 그는 자신의 복잡한 정치적 욕망에 대해서 적절히 그리고 합리적인 조정을 제시하면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특히 욕망실현에 있어서 기간 조정을 제시하더라도 검토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적인 욕구가 위주로 수용했으면, 다음 선거에서 다른 야당적인 욕구를 수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약속된 것이고, 그렇게 하기로 이미 내면에서 합의된 것이라면, 스윙보우트 시대의 유권자는 기꺼히 조정에 응할 것이고, 투표를 할것이다.

그러니 해답은 분명하다.

연합정치다. 이 연합정치는 중앙에서부터가 아니라 지방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중앙에서 노공이 시도한 세가지 형태의 연합정치 시도 (소연정, 대연정, 개헌)는 실패했다. 서울로 밀려드는 욕망의 무조건적인 압박에 그는 좌절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여전히 연합정치를 꿈꾸었음은 분명하다. 그는 현대 유권자의 본질을 이해한 정치가였다.


안희정 : 노무현식 정치 노선, 노무현 가문의 정치적 철학의 특징을 얘기하자면, 이 외형적으로는 세 바둑이에요. 집 바둑을 두지 않아요. 그러니까 내가 국회의원 되어야지, 내가 대통령 되어야지 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겨냥해서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역사와 가치라고 하는 이름의 싸움이에요.

그러니까 2002년도의 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지역주의 통합, 지역주의 정치를 극복하자. 그리고 우리 툭 까놓고 반칙 없는 사회를 만들자. 이게 목표였어요. 지역주의 정치를 그만하고 특권 없고 반칙 없는 사회를 만들자. 그리고 원칙과 상식대로 살아도 손해 보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 그래서 법치주의 사회를 만들자. 요것이 정치를 하는 이유였단 말에요.

그러니까 이것을 해야 되겠는데 필요하다면 대통령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은 승패하고도 상관이 없었어요. 지든 이기든, 이 가치를 가지고 그 무대에서 싸우면 그 가치를 가지고 기여하게 되는 거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지면은 아무것도 없다고 얘길 하지만, 그건 단기 순익 얘기이고. 단기 순익이 아니라 자산 가치를 생각한다면,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죠.

그런 점에서 노무현 가문의 정치 철학은 가치 중심이에요. 이런 가치를 가지고 싸워 나가는 것, 그게 대통령 선거가 되면 대통령 후보의 자격으로 그 싸움을 하는 거에요. 자신의 급이 국회의원이면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서 그 가치를 가지고 싸우는 거죠. 그러니까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가치를 실현할 기회가 있으면 그러면 출전을 하는 거예요. (중략)

96년도 총선에 떨어지고 나서 노무현대통령이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는 삼김 청산 하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 중구에서 출마했지만 잔류한 민주당 사람들이 다 떨어졌어요. 그때 이부영 정도 살아남았나? 죄다 떨어졌어요.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말씀이, 이것이 현실이다. 호남의 대통령을 만들고 싶어 하는 그 사람들의 절실한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 이것을 삼김정치이나 보스정치니 하면서 관념으로 이기려는 자체가 억지고 무리다. 그런 자세가 정당인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굉장한 유연함이고, 현실정치인으로서 현실적 판단능력인데. 지난 2008년도 7월 6일 전당대회 끝나고 민주당최고의원들 쭉 모시고 봉하마을에 인사를 갔더니 그때 김민석 최고가 지난 시절에 대해서 사과 비슷하게 유감의 발언을 하니까 노무현대통령이 앉아계시다가, 책상 탁하고 치시면서

“그 이야기는 그만해도 된다. 정당과 정치인이라는 것은, 나랑 이렇게 앉게 되는 것은, 당원들이 시킨 일이 아닌가. 당원들이 결정해서 자네가 최고위원이라는 지위를 얻고 나는 또 전임대통령으로서 자네를 만난 것이고. 정치는 그것으로써 충분히 화해가 되는 거야. 그런 옛날 문제를 가지고 개별적으로 사과하고 그럴 필요 없어. 이걸로 화해했다고 보세. ”

이렇게 하고 퉁치고 넘어 가시더라구요. 그러니까 개인적 차원에서의 정의와 옳고 그름의 잣대, 현실 정당 정치인으로서의 타협과 관용. 그러면서도 이인제의 원칙 없는 정치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다는 마음, 그럴 경우는 반드시 도전해서 싸워서 이겨내는 정신. 그런 복합적인 것에 정치인 노무현의 훌륭한 리더십이 있는 거죠. (딴지일보, 안희정 인터뷰 2010년 5월)


노공 가문의 정치적 가치는 이러했다. 그는 복합적이고 유연했으며, 자신의 지키고 싶은 가치를 위해 선거에 나섰고, 그 선거가 대통령 선거인지, 국회의원 선거인지 가리지 않았다. 오죽하면 노공의 귀향 이후에, 노공이 김해시장 선거에 출마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정도니까. 노공이 작은 시골의 시장이 된다니. 상상만으로도 서울 중심주의에서 지방 중심주의로 이전하는 엄청난 사건이었을 것이다. 노공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면, 그것을 위해 망설이지 않는 사리취의의 사람이었다. 필요했다면, 아마 출마하지 않았을까.

그러니 이제 노공이 추구한 가치를 다시 생각한다.

진보의 미래가 무엇인가. 진보가 유능하며, 말이 통하고, 유권자 내면의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자율조정력이 뛰어남을 보여줄수 있는 정치 공간은 노공이 통찰한대로 해답은 지방이다. 지방 연합정권이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선거결과와 무관하게, 진보의 미래는 지방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방 연합정치의 성공으로 지방단계부터 각 정당의 통합적 체제를 구축하여 현재 비민주적인 거대 보수 정당의 적대적 의존 구조를 일신하고, 정당의 진정한 변화로 국가의 혁신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진보의 미래다.


3, 지방연합정권은  어떻게 진정한 실적을 쌓을 것인가. - 유시민 모델

한 진보원리주의자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그의 옆자리에 이탈리아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이 물었다.“어디 가십니까?”
한국의 진보원리주의자가 말했다.
“스웨덴요. 스웨덴 경제 모델을 한국에 도입하려고요.”
이탈리아 사람이 소리쳤다.“미쳤구먼! 개들은 바이킹이라구요!”


기존의 진보가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상만 하기 때문이다. 노공처럼 현실에 착근해서 땀흘리려고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상당수의 진보원리주의자들이 유럽식 사회적 대타협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88만원 세대>의 문제가 선명해지고 난 뒤 한국 진보 담론 시장에서 유행하고 있는 판타지 패턴이 하나 있다. 즉 해외의 사회적 대타협 모델을 국내에 조속히 수용해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나는 이걸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판타지>로 규정한다. 웹 서핑을 하다보면 외국산(?) 아리따운 처자이나, 스포츠카 같은 부러운 물건 사진을 걸어놓고 그 밑에 한 줄로 적어두는 멘트가 바로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다. 물론 이건 부러운 게 사실이지만, 부러운 만큼 국내 도입은 안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사회적 대타협의 국내 도입의 모델로 거론되는 국가로는 북구 유럽 <스웨덴> <네덜란드> 등이다. 이중 <네덜란드 모델>은 참여정부 시절 당시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집중난타 당한 바 있는데, 작년에도 한겨레가 다시 한번 이 모델을 거론하고 나왔다.

 

실업자 100만명 시대’ 진입을 눈앞에 둔 한국이 고용난을 근본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네덜란드식 일자리나누기 모델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네덜란드모델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면서 기업과 경제 전체의 경쟁력도 높이는 ‘1석 3조’의 해법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임금삭감형 고용유지와, 공공근로·인턴 위주의 일자리 창출은 땜질식 처방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김영호 유한대 총장은 “지식정보사회에서는 근로시간 단축과 시간제 근무를 활용한 네덜란드모델이 가장 적합한 일자리나누기 방식”이라고 강조한다. 이명박 정부도 기획재정부와 노동부 합동으로 다음 달 중순 네덜란드로 조사팀을 보내기로 했다. (한겨레 창간 21돌 특집, 네덜란드 ‘일자리 나누기’ 현장을 가다 中, 2009,5)

 

하지만 이런 생각을 혹시 해본 적은 없는가?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유럽에 있는 국가들이다. 프랑스가 한국보다 스웨덴에 가깝다. 같은 대륙의 다른 국가가 사회적 대타협으로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어째서 그들은 우리처럼 스웨덴 따라 배우기, 네덜란드 따라 배우기 같은 시도를 하지 않는걸까? 그러니까 프랑스의 젊은 네티즌 '프랑소와'와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프랑스 네티즌 프랑소와) : 내가 생각해봤는데, 요새 우리 프랑스가 엄청 힘들잖아. 그런데 옆 나라 스웨덴이나 네덜란드는 사회적 대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잖아. 우린 왜 바로 옆에서 저나라가 어떻게 하는지 뻔히 보고 있는 데도 저 방식을 도입하려고 하지 않는거지? 우린 아마... 안될꺼야.

한국에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의 성공사례에서 배워오는 것은 나쁘지 않다. 공부는 좋은 것이고 적극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네덜란드 모델이건 스웨덴 모델이건 이 모델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 눈에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외국의 성공한 사회적 대타협 모델이 마치 단기간에 라이선스 주면 사올 수 있고, 사오기만하면 대한민국에 적용하면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일종의 만병통치약처럼 오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외국의 성공한 대타협 모델을 도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외국이 대타협 모델을 성공시킬 수 있던 환경은 도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회적 대타협이 성공한 요인 중에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주요 성공 요소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스웨덴과 네덜란드의 정치 체제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입헌군주제다. 사회적 대타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자 세력이 양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 공동체에서 부자들이 양보하지 않는다고 해서 심리적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존재가 없는 한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양보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입헌군주제 국가인 스웨덴과 네덜란드는 왕실이 모두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4월 30일 ‘여왕의 날’은 가장 떠들썩한 축제 중 하나다. 입헌군주제를 표방하는 유럽국가에서 왕정의 로열패밀리들은 월급 좀 거하게 받는 대신 국가 이미지 제고에 이바지하는 공인된 배우 같은 신세지만 왕이라는 형식적 구심점이 정치 안정에 기여하는 바는 무시할 수가 없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세력들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게 불러놓고 밥 한 끼 먹이면서 압력을 줄여줄 수 있는 중립적 존재가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효과는 이것이다.

왕실이 정치에 완전히 손을 놓더라도,

한 나라 부자들의 문화를 수렴하는 권위자로써 왕실의 영향력이 존재하게 되면,

부자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강요되는 문화가 형성된다.

부자들에게 양보하라는 법을 만들기 전에, 스스로 먼저 양보하는 부자들이 선한 부자로써 왕실에 접근하고 왕실의 아우라를 누리게 되면 부자 그룹 안의 미묘한 사회적 헌신에 대한 내부 경쟁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문화가 축적된 위에 ‘양보와 타협’이 이루어지게 된다.

세계 최조의 산업국가인 영국이 마르크스의 강력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공산화'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를 나는 입헌군주제로 권력을 내놓은 영국 왕실에 대한 영국 귀족 엘리트 들의 존경심 때문으로 본다. 영국인에게 왕실의 인정을 받는 엘리트 (작위를 받은 귀족으로 편입되거나 또는 부르조와가 되는 것)가 된다는 것은 매우 큰 동기유발 요소였다. 이에 반해 1차 대전의 와중에 공산화가 된 러시아의 경우 군부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귀족 엘리트 계층에서부터 권력을 독점하고 부패한 짜르체제에 대한 염증과 혐오가 극에 달해 있었다. 이 문화적 차이가 러시아는 공산화 되고 영국은 공산화 되지 않은 사실을 파악하는데도 중요한 배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불행히도 대한민국에는 그런 경쟁을 유도할 권위 있고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

이런 구심점이 없는 상태에서 네덜란드 모델이건 스웨덴 모델이건 도입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럼 바이킹 (buy king) 하면 되지 않느냐. ‘왕’을 수입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는데, 사실 ‘왕’을 왕창 수입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입헌군주제인 유럽 국가들이 사회적 대타협 모델을 기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노르딕 모델로 대표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들의 사회적 대타협 모델의 형성은 소비에트의 막대한 도움(?)을 무시할 수 없다. 2차 대전 이후 스웨덴의 부자들은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지리적 특성상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북대서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모스코바의 지시를 받는 친러 공산정권을 수립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너무나도 컸다. 스웨덴의 경우, 노르웨이를 침공한 2차 대전 나치독일은 스웨덴을 침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굴욕적인 포위를 경험한 바 있는데, 냉전이 시작되면서 여전히 발틱해 건너편의 위험 (러시아-폴란드-동독)은 계속되고 있었다. 당시 소련의 명백한 위협앞에 스웨덴의 부자들은 결단을 해야 했다. 이미 사민당 정권의 오랜 성공적인 집권경험이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양보하지 않아서 국민들의 마음이 친러 공산 정권수립으로 기울기라도 한다면,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될 것이 너무나도 자명했다.

100을 빼앗기느니, 50만 내놓고 노조에게도 뭔가 (유연한 고용제도) 를 얻어내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이다. 따라서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의 이른바 노르딕 모델의 사회적 대타협이 형성되는 데는 러시아 냉장군의 위협이라는 배경효과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추위의 무서움은 당연히 유럽의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옅어지게 된다.

그러니 생각해 보라. 지중해 모델의 경제체제로 혼돈상태인 이탈리아나 프랑스는 왜 이웃의 성공을 무시할까?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네덜란드는 사회적 대타협 모델을 이루어서 지금의 경제적 안정과 번영을 유지한 것이 아니다. 정답은 공동체 내부에 사회적 대타협을 이룰 수밖에 없는 환경이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 사회적 대타협 문서에 서명 (네덜란드 1982 바세나르 협약, 스웨덴 1938년 찰츠요바덴 협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 결과에 양자 (노-사) 모두 만족했기에 파괴당하지 않고 계속 추가 협약들로 보강하면서 현재까지 유지 된 것이다.

따라서 선후관계가 완벽히 잘못되었다.

북유럽 국가의 성공한 사회적 대타협은 ‘사회적 대타협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을 때 사회적 대타협이 된 이루어진 것이지. 사회적 대타협 문서에 서명했다고 해서 사회적 대타협이 된 게 아니다.

그리고 가장 큰 장애가 있다. 한 국가가 빠른 속도로 사회적 대타협이 이루기 위한 조건으로 내가 검토하는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그 공동체의 인구수다. CIA 통계로 2009년 네덜란드의 인구는 1671만 명, 스웨덴의 인구는 905만 명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한민국의 인구수는 4850만 명이다.

사회적 대타협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논의에 사회 구성원들 중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논의에 참여해야 사후에 결정된 사항에 불만이 없게 되고 불만이 없어야 논의를 파괴하기 보다는 책임지려는 태도를 취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노동자 뿐 아니라, 미래의 노동자 (취업 준비생, 88만원 세대까지) 이 논의에 참여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고 사회적 대타협이 미래에 유지될 리가 없다.

인구가 많은데 민주적 토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입장으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나치게 많은 참여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선명하게 정리해서 민주적 합의로 사회적 대타협을 단시간에 이루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와중에 민주적 토론에 의한 사회적 대타협을 도입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세스는 미국(인구수 - 3억 명)에 불가능 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에 반해 캐나다 (인구수 - 3348만 명)는 같은 북미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적인 문화적 특징의 도움을 받아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사정에도 아주 비관적이지는 않다. 한국의 인구가 네덜란드보다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적 대통합이 불가능 할 정도의 크리티컬 매스는 아닐거라 추정한다.

매우 직관적인 판단임을 인정하지만, 민주적 논의에 의한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한 국가는 그 구성원의 수가 최소 1억 이하일 때 가능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적 대타협을 채택하지 않고 똘레랑스나 교회나 가모장적인 사회안전망 등 기존의 정치적 문화 유산으로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유럽의 다른 나라의 인구수 (프랑스 6천 4백만명, 이탈리아 5천 815만명 2008년 기준 )를 감안하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사례를 보면 느끼는 것이다. 특히 종신고용이라는 사회적 대타협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전통적인 직업 분배 시스템을 분해하기 시작하면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본 (1억 2천만 명)의 사례 때문이다. 무거운 배가 빠른 급선회를 시도하다 침몰하듯 1억 정도의 인구수의 국가에서 사회경제 제도의 급격한 변화를 시도했을 때 심각한 부작용이 더 커지는 것이 아닐까? 이 가설대로라면 일본정도 규모의 국가가 다시 전통적인 종신고용의 모델로 돌아가려고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이런 의구심의 선상에서 인구 구성의 특징 (고령사회 등) 요소도 반영된 관찰로 사회적 대통합의 성공을 위한 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설은 앞으로도 계속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대한민국 전체의 사회적 타협은 아무래도 어렶다. 그럼 대한민국을 한번 쪼개어 보면 어떨까.

경기도 인구 - 1130 만명

충청남도 인구 - 201 만명

경상남도 인구 - 320 만명

(2009년 1월 통계)

4955만명이라는 대 단위로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하는 것은, 현재 정권의 속성이나 의지로 봐서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방 자치 단체의 주도로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빠른 선택일 수 있다.

즉 그동안 사회적 대타협을 추구하는 진보 일각의 전략 적용 방향은 중앙에서 결정 -> 지방 적용 이었다면, 꼭 그런 어프로치만 정석이라고 하지 말자는 것이다. 지방 연합정권이 수립되고 지방에서 시작해보자. 지방에서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대통합을 결의해보자.

지방 적용 (실험) -> 확대 -> 국가 전체의 방향을 추구하는 것이 진보의 전략일 수 있다.

아 혹자는 경기도에서 이런 사회적 대타협이 시도되지 않았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맞다. 김문수 지사가 당선된 이후, 노사정 대타협을 선언한 것은 맞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으로 참혹하다. 우선 김문수의 노사정 대타협 이후, 과연 경기도의 일자리 사정이 좋아졌는가? 김문수의 노사정 대타협이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는 모델이었고, 현재 그 모델을 수용한 다른 지방자치단체가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 경기도의 노사정 대타협에 미래의 노동자 (현재 취업 준비생이나, 88만원 세대)가 참여했는가? 유럽의 사회적 대타협이 추구하는 유연안전성(flexicurity) 개념이 과연 포괄되어 있어서, 노동자가 안심하고 일하며 나쁜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고 변화되어 가는 구조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김문수의 노사정 대타협은 친한나라당 노선을 선언한 한국 노총 일부의 노동계 일부가 자신들의 일자리 수호와 김문수의 정치적 입지를 가장하기 위해 만들어준 공허한 공상의 협약에 불과하다. 경기도의 노동계는 이용만 당했다. 경기도의 노사정 대타협은 한국노총에서 조차 불만을 터트릴 정도다.


노동부도 한국노총을 이용한 노사민정 대타협의 여세를 몰아 양보교섭과 임금동결 분위기를 이어갔다. 노동부는 지난해 내내 양보교섭의 성과를 지속적으로 홍보했다. 올 1월 13일 노동부가 2009년 노사 양보교섭·협력선언과 100인 이상 사업장의 임금교섭 타결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양보교섭·노사협력선언은 6,394건으로 2008년 2,689건에 비해 2.4배 증가했다. 노동부는 “산업현장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 양보교섭과 협력선언은 크게 증가하였고, 협약임금 인상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특히, 노사가 자발적으로 고용유지, 임금동결·반납, 무파업, 기업내부 유연성 증대 등을 약속한 양보교섭이 3,722건으로 전체 58.2%를 차지해 전년에 비해 32배 이상 급증했다.

이런 결과를 예상한 한국노총은 정부-재계-한국노총이 함께 개최한 2009년 6월 4일 노사민정 합의 100일 평가 토론회에서 지도부의 입을 통해 강하게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당시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토론회 축사에서 "솔직히 왜 대타협을 했는지 착잡하다"며 "정부가 노사민정 합의정신을 위반하고 공기업 초임을 삭감했다. 내년엔 전쟁이 온다"고 경고했다. (참세상, 기로에 선 한국노총식 합리적 노동운동, 2010년, 5월)


자 이제 상상해보자.

이제 지방 연합정권이 수립된다.

경기도의 지방 연합정권에는 민주-국민참여-창조한국-진보신-민주노동이 들어가 있다.

이 지방정권이 공동체의 전 이해당사자 (특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는 88만원 세대가 발언자로 반드시 참여하는)가 토론과 타협으로 지정한 의미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어낸다.

이를 가칭 유시민 모델이라고 하자. 진보는 유시민 모델을 가지고 계속 실험시켜 나가며 발전시켜 나간다. 네델란드의 사례처럼 한 국가의 사회적 대타협 모델은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계속 시대에 맞게 모델을 수정해나가고 그 수정에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고 투자했기에자신들의 사회적 모델을 수호하는 데 열정을 바친 것이 한 공동체가 사회적 대타협 모델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닌가.

상상해보자. 이 유시민 모델이 정책 연대로 실험될 수 있는 다른 지방 자치 단체로 (강원 지사 이광재, 충남 지사 안희정, 경남 지사 김두관)으로 서서히 확장되어 가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대한민국 전체의 사회적 대타협으로 완전히 자리잡는 것을.

그래서 일자리가 안정되고, 현재 나쁜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가 충분한 노동 재교육을 받아서,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꿀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이것이 진보가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이 아닌가.

이것이 진보가 진정으로 실력을 보여줄 위대한 시작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