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4대강 공사 ‘속도전’
경향신문 원문 기사전송 2010-05-08 00:11
ㆍ낙동강 공사현장서 덤프트럭 기사 뇌출혈로 쓰러져
ㆍ하루 13시간 혹사… “靑 방침이라며 속전속결 채근”
“‘청와대 방침’이라며 장마 전(6월 전)까지 공사의 50% 이상 끝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군대식이었습니다. 싫으면 나가라는 식이었습니다.
중장비 기사들은 이곳을 ‘낙동강 공산당’이라 했습니다.
포로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지난 4일 밤, 낙동강 상주보 공사장. 덤프트럭 기사로 일하던 지경하씨(56)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50여년간 살아오면서 좀처럼 병원에 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지씨였으나 뇌출혈을 일으킨 것이다.
7일 경향신문 취재진이 지씨가 입원해 있는 대구가톨릭병원을 찾아갔을 때
형 우하씨(61)는 병상에 누운 동생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경하씨는 지난 5일 수술을 받았으나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동생이 그만두고 싶다고 했는데도 (일을 계속하는 것을) 말리지 못한 게 가슴이 아픕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게 너무나 원망스럽네요.”
2남1녀 중 가운데인 경하씨는 혼기를 놓쳐 독신으로 지내면서도 평소 형과 여동생(49)을 극진히 보살펴왔다.
우하씨는 4대강 공사 책임자와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면서 일을 했다고 하네요. 4대강 공사가 사람 잡게 됐네요.”
경하씨와 함께 상주보 공사장에서 일해온 김모씨는 “며칠 전부터 지씨가 고통을 호소해 왔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공사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러다 죽겠다며 일주일을 못 버티고 나가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공사 현장은 생지옥입니다.
낙동강 33공구에서는 굴착기와 덤프트럭 등 중장비 70대와 노동자 70여명이 준설작업을 합니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5시에 아침식사를 한 뒤 오전 6시부터 작업을 시작합니다.
준설작업은 보통 저녁 8시에 끝나지만, 밤 12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저녁밥은 중장비 안에서 빵 한 조각과 우유로 때우기 일쑤예요. 휴식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뿐입니다.
작업이 끝나면 건설현장 인근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잠을 잡니다.”
다른 동료 김모씨는 “얼마 전 시공업체 관리직원이 ‘청와대 방침이니 장마철인 6월 전에 공사를 50% 이상 끝내야 한다’면서
‘자신 없는 사람은 나가라’고 했다”며 “공사가 본격화한 지난 3월 이후 딱 사흘 쉬었다”고 말했다.
준설작업을 벌이다 잠깐 소변을 볼라치면 시행사측이 득달같이 다가와 “무슨 문제냐”고 물어본다는 것이다.
불과 10초 정도 중장비가 움직이지 않아도 전화를 해댄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기를 맞추기 위한 무리한 속도전은 각종 안전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은 전국 4대강 공사현장에서 변속기의 축이 빠지는 차량사고나 모래 위 전복사고,
피로 누적에 따른 중장비 오작동 사고 등이 빈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정부가 속전속결을 강조하고, 턴키(설계·시공 일괄방식) 낙찰을 받은 시공업체도 공사비를 줄이려다 보니,
무리한 공사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 박태우·상주 | 최슬기 기자 tae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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