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봉하토론회 발제문]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가? |
2009.04.24 20:03 | e노마드 ![]() |
시민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 글은 내 자신 역시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자아비판이 담긴 반성문이기도 하며, 나와 함께 연대할 사람들, 함께 협동하고, 함께 일을 해나갈 수많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다짐이기도 하다. 여러분들께 제출하는 통렬한 나의 반성문이다. 시민의 개념 - 노예가 아닌 주인되기 (자유와 평등) 시민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볼 때 고대 아테네의 시민에서부터 로마공화정의 시민, 근대시민사회의 시민 개념이 있고, 시민과는 좀 다른 국민, 민중, 인민, 대중 등의 개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인 개념은 현 시점에서 큰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공부를 위해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하여 올리겠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시민이라는 개념이 가지는 의미는 짚어보고 갈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귀족과 천민> 혹은 <양반과 상놈>의 신분계급이 존재했다. 이것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시민>이라는 개념은 귀족도 아닌, 천민도 아닌, 즉 지배자도, 피지배자도 아닌 새로운 신분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이것은 곧 <자유로운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민>과 <개인>은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가? 역시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민>은 <공적인 영역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개인>은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나오기를 거부하거나 꺼려하는 사람> 정도가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개념에서 공통되는 것은 <자유로운 사람들>이라는 점이고, 차이는 <공적인 영역에 대한 관심>이 될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특히 한국에서의 <시민>이라는 신분은 <지배하지도 않고 지배당하지도 않을려는 사람으로서 공적인 영역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정의하면 무난할 것이다. 사람사는 세상을 클릭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단 시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적인 영역에 관심을 가진다고 하여 누구나 시민일까?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봐야 할 것은 헌법 제 1조 2항의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이다. 이것은 <주권>, <주권자>, <주인>, <주체>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인이란 무엇인가? 어떤 시민을 주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노무현 다시 보기 - <정치인 노무현>이 아닌 <시민 노무현> 이 지점에서 노무현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은 얼마전 “나를 버려라”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와 진보와 정의라는 가치의 상징으로서 노무현은, 그 가치를 잃어버렸으니 나를 버려라라고 말했다. 그를 버리고 말고는 각자의 선택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의미다. 그가 홈페이지 폐쇄를 언급하고, 자신을 버려달라고 선언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 그러면서 여전히 지지의사를 표시한다. 지지한다, 반대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흔히들 서포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서포터는 주인인가? 아닌가? 다시 결론부터 말한다. 서포터는 주체가 아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각종 선거에서의 투표권 행사에 국한된 개념이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주권자로서의 시민을 투표권을 행사하는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고, 어떤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노무현을 지지한다”는 표현 속에는 여전히 그를 <정치인 노무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들어있다. 주체가 아닌 객체의 시선에 머물러 있다. 시각을 바꾸어보자. <정치인 노무현>이 아닌 <시민 노무현>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자. 가난한 시골의 학생에서, 개천에서 용났다는 사법고시 합격자로서, 돈 잘버는 조세전문 변호사로서, 그리고 인권변호사로서, 국회의원으로서, 그리고 대통령으로...이 과정을 정치인 노무현으로만 시선을 두지 말고, 한 사람의 시민이 걸어온 길로 해석해보자. 우리와 동등한 시민으로서 말이다. 그렇다면 “노무현을 지지한다”는 개념은 이상하다. 주체와 객체가 따로 있다는 이야기다. 동등한 시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지지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만약 노무현이라는 시민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었다면, 과연 우리는 그러한 가치추구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것으로 다 된 것인가? 혹시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으로서 노무현을 앞에 세워놓고, 그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놓고 그저 뒤에서 박수나 치고 응원글이나 올린건 아닌가? 이러한 행위로 우리는 시민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노무현이라는 시민이 자신을 버려달라고 하는 말에는, 진짜 버려달라는 진심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동등한 시민으로서 노무현이 아닌 수많은 노무현이 나와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어야 한다. 그저 어떤 한 사람 앞에 세워놓고 그저 박수나 치고 그런 수준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노무현이 될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그게 참된 시민이라는 것이다. 예전부터 현 시점까지,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정당, 정치인을 통해서 우리의 가치를 추구했다. 이것을 대의민주주의라고 칭한다. 그러나 항상 배반을 당해왔다. 그래서 우리를 배반하지 않을 것 같았던 노무현이라는 대표선수를 대통령으로 밀어올린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인가? 밀어올리고, 뒤에서 응원해주는 것으로 시민의 역할을 다한 것일까? 노무현 되기 - 각 분야에서 공동의 관심사를 매개로 연대를 이끌어내는 리더 되기 노무현이 된다는 것, 이게 무슨 정치인이 된다는 수준으로 이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민 노무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존재하는 현실에 도전했던 한 사람의 생애를 바라보아야 한다. 노무현이라는 시민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존재하는 지배와 피지배의 질서를 깨뜨리기 위해 공부하고, 계획을 세우고, 행동했던 그 삶 전체를 바라보아야 한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아주 모범적인 시민,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노무현이 된다는 것은, 노무현처럼 살아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저 박수나 치고 응원이나 하는 수준을 뛰어넘어서 우리 스스로 선수가 될려고 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메시아나 구세주 반열에 올려놓고 기도만 하고 있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이럴 경우 또 다른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유시민을 우리 대표선수로 만들고 싶지만, 우리가 그냥 기다리고만 있으면 유시민이 대표선수가 될까? 안희정은? 이해찬은? 그들은 결코 메시아가 될 수도 없다. 그들 역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현실정치인도 되고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만 남는다. 우리 스스로가 대표선수가 될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 대표선수라는 것이 굳이 현실 정치인일 필요는 없다. 모든 시민이 대표선수가 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여기서는 역할분담의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작년에 시민주권운동을 말하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 모인 우리들 역시 이미 일종의 공동체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안에는 또 여러 공동체가 교차하고 있다. 시민 노무현이 살았던 생애를 이해하고, 그를 롤모델로 하여 우리 스스로 노무현이 된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 속에서 이런저런 공동체를 만들고, 사람들과 연대하고, 협동하면서, 함께 목표를 세우고 일을 추진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작은 일을 잘해야 한다고 한다. 각자 삶의 영역에서 주변 사람들과 협동하지 못하고, 연대하지 못하고, 함께 일을 도모하지 못하면 큰 지도자는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 스스로가 저런 작은 부분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밀어올리려는 대표선수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역할분담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과연 노무현이라는 대표선수를 대통령으로 밀어올려놓고, 각자 포지션에서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곧 내 자신을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바로 여러분들을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내가,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이런 저런 모임의 책임있고 성실한 리더가 되고, ‘좋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았을까? 내 자신을 모질게, 사정없이 회초리를 치고 싶다. 내 가진 것, 분노 밖에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게시판에서 분노만 표출하지 않았나? 오늘 이 자리는 우리 자신에게 가혹하게 매질을 하면서, 처절한 반성문을 제출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떠넘겨놓고, 공부하지 않고, 사색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협동하지 않고, 연대하지 않고,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질투하고, 사람을 키우기 보다는 끌어내리려 하지 않았는가? 오직 메시아 한명이면 족하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수많은 리더를 키우는 데 인색하지 않았나? 우리가 노무현과 같은 시민이 된다는 것은, 내 스스로, 우리 스스로 리더가 될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주변의 좋은 사람을 리더로 키우는 데 힘을 쏟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수많은 리더를 키워서, 그 중에서 대표선수를 뽑아서 국회도 보내고, 청와대도 보내고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노무현처럼 살아보자. 노무현이 되자. 나는 적어도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시민은 노무현이라고 생각한다. 미처 우리 능력이 부족해 완벽하게 노무현처럼 살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력해보자. 내 개인적인 고백을 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고민, 분노, 좌절이 교차했던 시간들을 보내면서,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소중하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오늘 이 자리는 그 깨달음을 스스로 실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여러분들과 함께 어깨걸고 천천히 보조를 맞추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싶다. 내가 그 발걸음을 더디게 할 수도 있고, 여러분들 중 어느 누군가가 우리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 격려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보자. 오늘날 시민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우리가 함께 어깨를 걸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보다 많은 자유, 보다 많은 평등을 향한 발걸음이다. 바로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이다. 진보를 향한 발걸음이다. 그 발걸음은 우리 내부의 문제로 지체될 수도 있고,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내부의 문제는 앞서 말한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극복하면 될 것이다. 이런 내부적인 장애와는 별개로 외부의 장애물이 있다.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우리의 평등을 짓누르고, 민주주의와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 바로 정치권력, 시장권력, 언론권력이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개의 권력이 과연 어떤 횡포를 부리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횡포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 공부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권력이 시민들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복무할 수 있도록, 즉 민주적인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하는 대안까지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본격적인 토론 주제다. (아래 부분은 내일 봉하에서 내 개인적인 의견을 따로 말씀드리겠다. 그리고 봉하에서 돌아오면 역시 따로 글을 올리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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