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정리 ... 이백만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은 3대가 가난하고 친일했던 사람은 3대가 떵떵거린다,
우리는 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백만교장의 노무현이야기] 과거사 정리
‘과거를 묻지 마세요.’
흘러간 유행가 이야기가 아니다. ‘묻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질문하다(問)와 땅속에 묻는다(埋). 음악애호가들은 가수 나애심의 노래를 떠올리면서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물어보지 말라”로 받아들이겠지만,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깨어 있는 시민들은 “부끄러운 과거사를 망각의 땅에 파묻지 말라”로 해석할 것이다.
E.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말했다. 역사는 위대한 스승이다. 역사를 부정하면 미래가 없다. 과거를 덮어 두고, 역사를 알지 못한 채, 어떻게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겠는가. 은폐·축소·왜곡된 과거사의 진상이 밝혀져야 하고, 냉정한 성찰과 적절한 사후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적혀 있는 말이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다시 그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역사청산에 있어, 대한민국 현대사는 배반의 역사다. 민족의 혼을 팔아 개인의 영달을 구가했던 친일파 인사들이 해방과 함께 애국자로 변신했다. 그들은 민족을 배반했던 치욕의 과거사는 망각의 땅속에 묻어버렸다. 불행한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 역사를 반복한다. 과거사를 망각에서 기억으로 복원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과거사 정리 작업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8·15광복 경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더욱 부끄러운 일은, 역사의 바른 길을 걸어온 독립투사와 그 후손들은 광복 후에도 가난과 소외에 시달리고, 오히려 친일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사회지도층으로 행세하면서 애국지사와 후손들을 박해하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한때는 친일 인사가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심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은 3대가 가난하고 친일했던 사람은 3대가 떵떵거린다는 뒤집혀진 역사인식을 지금도 우리는 씻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진상이라도 명확히 밝혀서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진1. 2004년 제5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독립유공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는 일제 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에 관한 특별법,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등을 제정하여 망각의 땅에 파묻혀있던 과거사를 발굴해 친일행위를 규명했고 친일파들이 부역의 대가로 받은 재산을 몰수했다.
프랑스의 과거사 정리는 숙청 수준이었다. 드골 대통령은 2차 대전 때 히틀러에 협력한 부역자들을 깔끔하게 청소해버렸다.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드골은 학자, 교육자, 작가, 언론인, 영화인 등 부역 지식인(오피니언 리더)을 프랑스정신을 병들게 한 주범으로 규정, 예외 없이 처벌했다. 드골의 역사청산 전략이 주효했다. 법원, 검찰, 경찰 등 사법기관을 1차로 정리한 다음, ‘흠이 없는’ 경찰과 검사, 판사에게 칼자루 쥐어주고 부역자를 처리토록 한 것이다.
젊은 천재작가 로베르 브리지약의 총살형은 당시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약12만명의 나치 부역자가 재판에 회부됐고, 이 가운데 사형, 징역, 공민박탈 등의 실형을 받은 사람이 10만명에 달했다. ‘이방인’, ‘시지프스 신화’ 등의 작가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의 지성 알베르 까뮈는 그때 말했다. “과거의 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를 부추기는 것이다.” 까뮈는 나치 치하에서 저항운동을 했던 대표적인 레지스탕스 지식인이다.
▲사진1. 노 대통령은 이날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국가기관을 포함한 정부 차원의 포괄적인 과거사 정리를 공식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