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민주주의

6) 봉하로 간다 ... 명계남

똘돌이 2012. 6. 19. 15:09

명계남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 2012.05.18

[특별칼럼] 봉하로 간다

                                                                                             명계남



1.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부는 날에는
바람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더라

더러는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와
일기장 갈피마다
눈이 내리고
참담한 사랑마저 소식이 두절되더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침묵으로
세월의 깊은 강을 건너가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 이외수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200712월 가카께서 당선했을 때 절망했다.
한국인들에게 별 기대가 없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

자본주의 반공국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한 민주주의가 얼마나 보잘것 없냐하면 36년 일제 식민지배에서 독립이라는 걸 했는데, 그리고서 나라라는 걸 하나 세웠는데, 그 정부 첫 대통령이 독재자인 나라인 걸
?

바보 같이 풍차에 뛰어든 돈키호테처럼 지역감정과 몰상식 낡은 정치에 맞설 때 그를 응원한 것도 이리 하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거나 좋아질 것이라고 믿어서는 아니다. 그럼 왜 그리 날뛰었느냐고? 그냥 그 사람이 좋았다. 희망을 움켜쥐고 자기만의 신념을 다른 사람들의 이익에 일치시키며, 그렇게 해서 역사라는 게 진보하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 드물잖아. 여의도에서 드물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에서 봐도 희귀한 인간이지
.

그에 비해 나는 별 생각 없이 살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권력이 그름을 강요한들 뭐 어쩌라고? 그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 세상만사 다 그렇지 어디라고, 어떤 시대라고 달랐으랴
?

그런데 그는 달랐다. 스스로는 1급수가 아니라고 했지만, 3급수도 못되면서 1급수입네 하는 이들이 천지인 세상, 혹은 3급수도 못되는 걸 깨닫지도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인 세상에서 새 시대를 여는 사람이 아니라 구시대의 막내이기를 바란 사람. 그를 돕는 일이 창피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를 좋아하는 것과 세상을 보는 태도는 별개다. 그가 좋지만 세상에 대한 심드렁한 태도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 바뀌지 않았다
.

지난 참여정부 5년은 인간과 세상, 특히 한국 사회에 대해 품고 있는 편견이라고 해도 좋을 불신을 확인시켜 주는 시간이었다. 뭐 달라질 줄 알았냐? 안돼~~! 그의 정책과 주장이 옳아도 내 밥그릇에서 한술만 덜어내야 하는 것이라면 양보하지 않는다. 대화와 협상은 변절이거나 타협이다. 모 아니면 도! 내 편이 아니면 적! 보수라고 강변하나 꼴통인 자들이나, 진보라고 자처하나 꼴통인 자들 사이에서 노무현은 왕따였다. 그를 지지하는 모두가 왕따였다. 다행이지. 지지하는 사람이 적어서 왕따 당하는 사람이 소수여서
.

이런 전차로하여 가카시대가 도래한 것에 절망했지만, 그 절망은 낯선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걸린 불치병 같은 것. 다만 증상이 심해진 것이 다를 뿐. 절망의 농도가 짙어진 것이 다를 뿐
.

예상했다. 모두들. 한겨울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그러나 막상 우리에게 닥친 것은 겨울이 아니라 지옥이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무엇이든 상상을 초월했다. 상식? ? 원칙? 민주주의? 정의? 인권? 박애와 측은지심? 탐욕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걸 보았고, 몇 개월은 더 보게 될 것이다
.

우리보다 몇 백 년은 먼저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나라가 돌아가는 서양에서도 반공을 국시로 내 세운 나라는 없다. 참 기구하다. 남들은 겪지 않는 지랄이 몇 번이고 거듭 벌어지다니. 여기에 분단으로 같은 형제끼리 벌인 싸움이 세계전쟁으로 확대되는 일까지 당하고 나면
.

사막의 모래밭, 아무것도 살지 못할 것 같은 메마른 그 땅에서도 생명은 꿈틀댄다. 설사 대한민국이 독재자를 초대대통령으로 뽑아 올린 기가 막힌 불운을 타고난 나라라고 해도, 뿌려진 인간본성에 깃든-수억 년을 지나 인간이 진화하면서 DNA에 내장해온-자유의지는 이 땅에서도 민주주의는 싹을 틔웠고 자랐다. 온갖 수모와 풍파를 겪으면서.

초대 독재자 시절도 견디고, 만주군 육사 출신에서 공산주의자로, 다시 반공주의자로 신출귀몰한 변신의 천재를 총통으로 받들던 시대와 광주시민 200명을 공식(?)적으로 학살한 독재자 시대에도 민주주의는 조금씩 자랐고 마침내 사이비스럽지만 군바리가 아니라 문민을 자처한 시대를 지나 마침내 국민이 참여하는 민주정부 10년을 누렸다
.

그러나...이 얼마나 허약한가.... 국민에게 모든 것을 돌려주자, 제 손으로 사기전과자에게 면죄부를 발급해주는 민주주의란! 이후 다가온 반동의 세월
!

내 방에 걸린 시계는 거꾸로다. 뒤집혀 있다. 그래도 시간은 앞으로만 간다. 거꾸러 가는 것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만이 아니다. 가카의 기간도 거꾸로 간다. 벤자민 버튼은 그 홀로 늙어서 태어나 젊어졌다가 엄마 품으로 사라지지만 가카는 5천만 명을 줄 세워 발맞춰 뒤로 갔다. 채찍 휘두르면서. 남 다 뒤돌려 세우고 가카께서는 퇴임 후 안전과 안녕과 건강을 든든히 지켜줄 돈다발을 챙기시지
.

가카가 쇳소리로 선서를 하고, 안경너머에서 간교한 눈동자를 희번덕이며 또 누군가를 속여 넘기는 동안, 이외수 선생의 저 시를 읊조렸다. 분노와 절망으로 새삼스레 - 다 아는 병인데도- 마음이 흔들릴 때면, 침묵하며 세월을 견디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

2.
또 다시 5
월이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하루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 잊지 않기 위한 몸부림? 그러나, 흐릿해 질 것을 알기에 초조한
?

지금 당장 내 앞에 나타나 말을 건다고 해도 어쩌면 똑같이 아무 말 못하고 버벅거리다 말지도 모르겠다
.

얼마 전 고 김근태 의원
49재를 앞두고 그의 부인 인재근씨는 우리 가족에게 너무도 소중했던 사람이 없는데도 시간은 흐르는구나 싶었노라고 했다. 이 짧은 소회가 담고 있는 참 많은 것들. 그렇게 가는 시간이 야속하기도 하고, 그래도 살아가는 자신이 의아하기도 하고, 남겨진 것이 떠난 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가 누구였는지 모른다는 듯, 언제 그를 위해 울었냐는 듯 무심하게 스치는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도 한....일천십이일.

세상에 존재하였던 모든 것은 부식한다. , 구리, 나무, , , 종이, 고무, , 가죽, 플라스틱, 인간의 육신과, 육신에 깃든 무형의 추억마저도. 불가에서 삼오제와 사십구제를 지내고 삼년 만에 상을 면하는 것은 어쩌면 삼년이 산자가 죽은 이를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기억할 수 있는, 산자들의 기억 속에 죽은 자가 온전히 머물 수 있는 시간의 한계이기 때문은 아닐까
.

책을 쓰고 붓을 다시 잡는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시간에게 그를 내 주기 전에 오롯이 그를 간직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면서 세월에게 그를 내 주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떠나보낼 수밖에 없을 때 치르는 나만의 의식(儀式)이자 추억을 부식시키는 시간을 향한 내 나름의 저항(!)인 셈이다
.

그리고 난 이제 봉하로 간다
.
살아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