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노무현이 꿈꾼 한국경제 ... 이정우
[특별칼럼]③노무현이 꿈꾼 한국경제
이정우(경북대 교수,경제학)
노무현 대통령이 꿈꾼 한국경제는 어떤 것이었을까?
노무현의 경제철학을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종래의 성장지상주의 대신 성장과 분배의 조화, 둘째, 시장만능주의 대신 시장과 국가의 균형, 셋째, 종래의 서울 집중을 지양하고 지방과 수도권의 균형발전 추구, 넷째, 시간적 차원에서는 단기주의 대신 장기주의를 지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은 성장 일변도에 빠지지 않고, 분배, 복지를 함께 생각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개혁과 개방, 성장을 지향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약자, 패배자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는 다시 개혁, 개방, 성장을 촉진하게 될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광범위한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메우려 노력한 점, ‘희망사회 투자계획’으로 명명된 빈곤아동․청소년 종합대책, 그리고 참여정부가 도입한 근로장려세제(EITC) 등은 새로운 발상이었다.
부동산대책이나 사교육비 축소 정책도 성장과 분배, 효율과 공평을 동시에 도모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낮은 복지 수준에서는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든지 있으며 이를 통해 한국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자는 노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둘째, 시장만능주의 대신 시장과 국가의 적절한 균형을 추구했다. 한국경제는 1960년대 이후 줄곧 ‘박정희 모델’이라 불리는 관치경제를 근간으로 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미국, IMF로부터 관치경제를 청산하고 시장경제를 해야 한다는 강력한 압력을 받게 된다.
국민의 정부는 이를 충실히 따랐다. 그 결과 광범위한 규제완화, 민영화,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 노동시장에서는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급증했다. 그리하여 불과 10여년만에 한국경제는 상당 부분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모델을 채택하게 됐다.
시장은 물론 중요하지만 시장만능주의는 옳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도 결국 미국식 시장만능주의가 빚은 대형사고가 아닌가. 참여정부는 당시 보수 언론에 의해 세계표준인양 찬양을 받던 미국식 모델을 채택하기를 거부하고 독자적 노선을 걸었다. 민영화를 재검토해서 일절 추진하지 않았다. 민영화는 한때 복음인양 널리 전파됐으나 그 후유증이 심각하므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사실이 서서히 알려지고 있다.
셋째, 참여정부의 정책을 공간적으로 특징짓는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 정책은 수도권 집중 현상을 타개하면서 각 지역의 특성과 장점을 극대화하여 국가경쟁력을 극대화하자는 전략이었다.
지방분권특별법(2003), 균형발전특별법(2003),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2005)이라는 균형발전 3대 입법이 그 근간이다.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금융․물류허브는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구체적 모습들이다. 지방과 서울이 서로 발목을 잡는 형국을 타개하고 상생, 발전으로 나아가려는 거대한 지방화 역사(役事)를 시작한 것이 참여정부의 큰 업적이다.
넷째로 장기주의는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시간적 차원의 특징을 보여준다. 과거 단기 성과에 치중했던 정책은 반짝 경기만 호전시킬 뿐 경제체질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장기적으로 부작용을 초래한 사례가 대단히 많다. 2000년 이후 카드 및 부동산 대란이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눈앞의 성과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정책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은 말하기는 쉬워도 결코 실행하기 쉽지 않다. 지난 40여년간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빨리빨리병’에 걸린 국민들에게 참을성과 원칙주의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참여정부는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손쉬운 경기부양책 대신 장기적 관점에서 구조개혁 및 경제의 체질 개선에 주력했다. 10.29, 8.31 등 부동산 대책은 그 대표적 사례다. 이들 대책은 보유세 강화,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인상, 서민들을 위한 임대주택 확대를 기조로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를 최초로 옳은 방향으로 접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거품이 꺼지는 과정의 고통을 덜고자 건설경기라도 부양하자는 달콤한 유혹에 굴복하는 대신 부동산투기라는 망국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장기적 시야를 가진 정책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노무현대통령은 네 원칙을 통해 경제위기 이후 대응과정에서 심화된 경기침체, 양극화 문제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경제, 사회 곳곳에 누적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불투명과 불공정, 불로소득, 부정부패를 걷어내고 만인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혁신주도형 경제를 건설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수십 년 내려오던 경제운용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런 태도를 지닌 대통령이 일찍이 없었고, 그런 점에서 가장 훌륭한 경제대통령이었다. 혹자는 당시 경기 나쁜 것을 들어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란 고약한 별명을 붙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얼마나 식견 없는 자의 소행인가.
당시 경기가 나쁜 것은 그 이전 경제관료들이 일으킨 3대 거품(벤처 거품, 카드 거품, 부동산 거품) 붕괴과정에서 오는 불가피한 현상이었지 결코 노대통령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래도 변명 한 마디 없이 묵묵히 원칙을 지켰던 그런 경제대통령을 우리가 다시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