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가장 무서워하는 이것은 무엇? ... 양정철
검찰이 가장 무서워하는 이것은 무엇?
버릇없는 동물을 길들이는 과정은 인내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김인회 교수의 법과 인권이야기 - ‘검찰개혁, 미완의 과제’ 3.] 검찰개혁을 위해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의 신설입니다. 검찰이 중수부 폐지 반대와 함께 가장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최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제안한 특별수사청 신설안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수사청 신설안은 판사와 검사 및 검찰수사관의 직무관련 범죄와 그 관련 사건, 국회의결로 의뢰한 사건 등을 담당하는 조직으로서 대검찰청 소속으로 인사와 예산 및 수사의 독립을 보장하는 조직입니다.
그러나 원래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는 단순히 판사와 검사만을 수사대상으로 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핵심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조직입니다.
그래서 그 범위는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법관 및 검사, 장관급 군인, 경무관급 이상의 경찰공무원, 대통령실의 비서관과 대통령실 경호처의 처장급 이상 공무원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를 좌우할 수 있는 지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패나 권한남용의 위험이 항상 있습니다. 이것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바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입니다.
부정부패 추방이 원래의 목적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는 고위공무원들의 뇌물이나 직권남용을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우선적인 목표는 바로 부정부패의 추방입니다.
한국의 부정부패는 정경유착의 역사와 동일합니다. 국가기관과 기업이 서로 뒤를 봐주면서 기득권을 누려온 것이지요. 한국이 민주화된 이후에도 정경유착이나 정치권과 관련한 비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없었던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에 정경유착은 계속됐습니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기득권 유지와 확대에 국민들은 엄청난 피해를 봤습니다.
민주화된 이후에도 부정부패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부정부패 문제는 한 두 번의 수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공약사항으로 부정부패 추방을 확고히 내걸고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를 신설하여 권력형 비리, 정경유착을 추방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습니다.
검찰권한의 분산과 견제
그런데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는 부정부패 추방만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수사대상으로 삼는 고위공직자에 검사들도 포함되므로 검찰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유력한 방안이기도 합니다. 즉 검찰의 권한남용에 대한 주요한 견제수단이 됩니다. 최근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등의 사례와 같이 검사들이 직접 부정부패에 개입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검사들의 윤리의식이 마비된 것이지요. 견제와 감시가 없는 시스템의 산물입니다.
부정부패의 다른 면은 권한남용입니다. 검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검찰이 권한을 남용하게 되면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투표를 통해 교체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검찰에 대한 직접적인 견제와 감시가 필요합니다. 검찰만큼 강력한 기관의 견제와 감시가 필요합니다.
나아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는 단일한 검찰권한을 사람에 따라, 범죄에 따라 분리하게 되면서 검찰권한 분산책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방별로 검찰권이 분산돼 있지 않지만 미국 독일과 같은 연방국가의 경우에는 당연히 지방으로 분산돼 있습니다.
이렇게 검찰권력이 분산돼 있으면 검찰권력 남용의 폐해는 적어집니다. 그리고 검찰권력 통제는 더욱 쉽게 됩니다. 결국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는 검찰권한의 분산과 견제라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정치적 중립과 경제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독립해 처리하는 기능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부정부패는 대부분 권력형 비리입니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서로 결탁, 유착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국가의 재산, 국민의 재산을 마음대로 가져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내부의 적입니다. 이런 사건을 감시하고, 예방하고, 수사하고, 처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수사기관이 정치권력, 경제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됩니다.
수사기관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수사기관이 국가기관인 이상 완전한 독립은 있을 수 없지만 정치적으로 중립은 지켜야 합니다.
나아가 수사기관은 경제권력으로부터 독립돼야 합니다. 여기선 중립이 아니라 진짜 독립입니다. 거대자본과 재벌은 사실상 한국의 통제받지 않는 권력입니다. 선거나 시험과 같은 최소한의 공적인 통제조차 없는 조직이 경제권력입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기 위해선 거대자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조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검찰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미 충분히 정치화돼 있는 검찰은 정치적 중립도 지키지 못하고 있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함에 따라 경제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거대 권력이고 정경유착의 주범인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견제할 새로운 기구가 필요한 겁니다.
이런 면에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는 검찰개혁의 가장 핵심적 방안입니다. 즉 부정부패 추방, 검찰권력 분산과 견제, 정치적 중립과 경제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등…. 이런 개혁은 결국 검찰권의 약화, 검찰 기득권의 약화를 초래합니다.
검찰이 정치권력, 경제권력과 함께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권한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혁을 두려워하고 기득권의 상실을 두려워하는 검찰이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참여정부가 마련한 공직부패수사처 법안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에 관한 논의는 이미 무르익을 대로 익었습니다. 제대로 된 실행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미 참여정부에서는 ‘공직부패수사처의 설치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주요내용은 이렇습니다. 고위공직자 직무관련 범죄에 대해 국가청렴위원회 소속하에 공직부패수사처를 신설합니다. 처장은 정무직, 차장은 특정직 공무원으로 임명합니다.
특히 정치적 독립을 위해 처장은 국가청렴위원회 의결을 거쳐 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임기는 3년으로 하되 중임이 불가능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처장에 대해선 검사와 동일한 정도의 엄격한 신분보장 장치를 뒀습니다. 특별수사관은 변호사 자격자 중에서 임명해 수사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직원은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수사권은 인정하지만, 기소권은 인정하지 않아 수사실시 후 검찰에 송치하도록 했고, 만일 검사가 공소제기 하지 않으면 청렴위원회 의결을 거쳐 재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같은 참여정부 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18대 국회에 들어서서 민주당의 양승조 의원이나 민주노동당의 이정희 의원이 거의 유사한 법안을 제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규모가 축소됐으나 국회의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특별수사청을 제안하는 것도 이를 보여줍니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 고위공직자 범위, 소속 기관, 수사권 이외에 기소권 부여 여부 등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과는 다른 독립된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점에 비하면 부차적인 내용들입니다.
결국 참여정부가 마련했던 법률안을 중심으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당에서 국회의원을 포함해 고위공직자 범위를 확대하자는 주장을 하는 건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줍니다.
야당과 국회의원의 반대
이처럼 생명력이 있는 공직부패수사청 법안이 참여정부 때엔 입법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국회 자체의 반대 혹은 미온적인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국회의원 자신들이 공직부패수사처 수사대상이 되자 법안 처리에 반대했던 것입니다.
문재인 전 비서실상 표현에 의하면 국회에 전반적 적대감이 형성된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공수처 수사 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시킨 것이 문제였다면 국회의원을 빼고서라도 제도개혁을 했어야 옳았다”라고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의 반대는 단순히 공직부패수사처에 대한 반대라기보다 참여정부 자체에 대한 반대였습니다. 따라서 국회의원을 제외했더라도 통과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여기에 더해 검찰 출신 국회의원들이 검찰의 이해관계를 적극 대변한 것도 더욱 문제를 악화시켰습니다.
검사출신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보수적이거나 개혁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특히 검찰과 관련해선 항상 검찰 편을 드는 것이 관습화 돼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공직부패수사처 반대에 그치지 않고 참여정부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에 대해서까지 반대했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은 좌절됐습니다.
정치적 중립의 보장 및 검찰권한의 분산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이라는 과제는 한번 좌절됐다고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한국 검찰이 세계에서 유래 없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이상 이를 개혁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참여정부의 공직부패수사처 신설안을 바탕으로 많은 법안이 제출되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가 신설되면 대검 중수부는 당연히 해체됩니다. 기존의 정치지향적이고 경제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검찰 입장에선 도저히 할 수 없는 수사를 하게 되는 겁니다. 기존 대검 중수부는 정치권력 요구대로 정치적 사건이나 정경유착 사건 등을 수사해 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 수사를 한 곳이 대검 중수부임을 잊어선 안 됩니다.
대검 중수부는 정치권력 요구를 검찰에 전달하는 핵심적인 통로였습니다. 그리고 검찰로서도 정치검찰화 하는데 핵심적 통로입니다. 대검 중수부 출신 검사들이 한결 같이 출세한 것은 그 증거입니다.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은 부정부패 추방의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검찰 권한을 분산하고 견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나아가 정치권력 및 경제권력과 거리를 두고 정경유착이라는 거대한 부정부패를 해결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수사기관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는 단순히 기관만의 분리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구성돼 엄정한 수사를 하되 인권친화적 수사를 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 돼야 합니다. 아무리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조직이 되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