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장교 100여명과 통화? 어디 그런 허풍을! ... 양정철
노대통령은 직접 고안한 온라인시스템을 통해 일선과 소통했지만, 언론은 이마저 조롱했습니다.
[시시비비 8년의 기록] 이명박 대통령이 핸드폰 문자를 이용한 홍보에 푹 빠진 모양입니다. 직접 하는지, 실무자가 알아서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다양한 형태로 직접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는 노력은 가상합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장교 합동임관식에 참석하고 청와대로 돌아온 뒤, 이날 임관한 신임장교 5,309명 전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대통령입니다. 다시 한 번 임관을 축하하고 건강하게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랍니다”
청와대에 따르면 메시지를 받은 많은 신임장교와 가족들은 답신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와 놀라움과 고마움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청와대가 크게 오버를 합니다.
이 대통령이 문자를 보낸 금요일 오후부터 다음날까지 온 확인 문자 메시지가 700여건, 걸려온 전화가 100여통이 넘었다고 청와대 측은 전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라디오연설 원고를 검토하던 중 전해오는 문자메시지에 답하거나, 걸려오는 전화를 상당수는 직접 받았고 행사 중에 온 전화는 수행비서들이 대신 받았다는 게 청와대 설명입니다.
한 신임장교는 “정말 대통령님 맞으시냐”고 회신했고, 대통령은 “맞습니다. 대통령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충성”이라는 짧은 구호로 감사를 표한 신임장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직접 전화를 걸어온 다른 신임장교에게는 “신임장교 여러분들을 보고 왔더니 늠름하고 밝은 모습이 보기 좋아 생각나서 보냈다”며 “아까 보낸 문자메시지 잘 받았느냐”고 물어보면서 “동기들에게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것 맞다고 이야기해 달라”며 친근감을 표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은 무리한 주장입니다. 성립되기 어려운 얘기입니다. 청와대 내의 대통령 통신시스템을 뻔히 아는 제가 보기에, 이런 홍보는 정직하지 못한 부풀리기입니다. 허풍입니다.
대통령은 전화를 직접 걸거나 받지 않습니다. 유선은 물론입니다. 경호실이 대통령과 영부인에게 각각 제공한 핸드폰도 수행비서들이 휴대합니다.
유무선 모두 발신통화는, 부속실 참모가 대통령이 통화를 원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미리 대기를 하게 한 뒤 대통령에게 연결합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누군가를 찾을 때, 아무 때나 이뤄질 수 있습니다.
걸려오는 전화는 대통령과 특수 관계인(가족, 친인척, 아주 가까운 지인)이거나, 당-정-청의 대단히 고위직이거나, 아주 중요한 보고일 경우에만 부속실 참모를 거쳐 대통령 의중을 물은 뒤 연결합니다. 그 번호는 일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청와대 하위직 참모들도 대부분 모릅니다.
그렇지 않고 청와대 대표번호를 통해 걸려오는 전화가 대통령에게 연결되는 일은 아주,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일반인이든, 청와대 직원들이든 대통령과 직접 연결되는 번호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혹여 그런 회선을 별도로 두거나 번호를 공개하면, 보안유지도 어려울 뿐 아니라 도저히 뒷감당을 할 수 없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막 임관한 장교들이 대규모로 청와대에 직접 전화를 걸어 대통령과 통화가 되다니요. 제1 야당 총재도 안 만나주는 대통령이, 대통령 문자를 보고 다짜고짜 전화 건 생면부지의 불특정 초급장교 100여명 전화 대부분을 받아 상냥하게 통화해서 격려를 했다니요.
대통령 문자를 보고 직접 전화를 걸 간 큰 군인이 있을까요. 연결되는 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전화 걸 방법도 모를 것이고, 설사 전화를 걸어도 100여 명이나 연결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철저한 홍보기획에 의해 선별된 누군가가 설정에 따라 통화를 할 수는 있겠지요.
그게 아니고 청와대 주장대로 100여 명의 장교들이 전화를 걸어 대부분 대통령과 직접 통화가 됐다면 청와대 통신시스템에 엄청난 구멍이 뚫린 겁니다. 또 대통령은 너무너무 한가한 겁니다.
그냥 대통령이 문자를 보낸 것과 장교들의 답장, 그리고 몇 사람과의 통화를 드라이하게 소개하면 될일이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대단히 많은 장교들이 감격하여 자연발생적으로 문자 왕래, 전화소통이 이뤄진 것처럼 홍보하는 담대함이 놀랍습니다. 너무 작위적입니다. 참 어색한 설정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노 대통령은 이런 작위적 이벤트나 홍보를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대신 실질적 정책 사안을 놓고 공무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인터넷에 워낙 능통했던 노 대통령은 당신이 직접 설계한 시스템에 접속해 공무원들과 진지하고 치열하게 정책 소통을 했습니다.
수구언론들은 그걸 두고도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이번 일을 보며 그 때가 떠오릅니다.
여러 정책 현안에 대해 공무원들과 실질적이고 진지하게 소통을 했던 대통령. 반면 덕담 차원의 문자를 보내고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걸 자랑하라’고 말했다는 대통령, 그것을 훨씬 부풀려 홍보하는 참모들. 소통과 홍보에도 저마다의 인식과 기량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 글은 참여정부 당시 제가 수구신문들의 공격을 반박해 쓴 글입니다. 지금과의 씁쓸한 간극이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디지털시대의 아날로그 논쟁
2006.4.13.(청와대브리핑, 청와대 홈페이지)
최근 <동아일보>가 보도한 이른바 ‘대통령 댓글’ 논란은 우리 사회 논쟁수준을 떨어뜨리는 수준 이하의 기사입니다. 보도의 전제부터 잘못됐습니다. 몇 가지 오류를 정확히 바로잡고자 합니다.
첫째, 대통령이 현재 <국정브리핑> 정책기사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은 행정부 수반의 의견이지 댓글이 아닙니다. 국가원수가 행정부처 업무를 통할하면서 여러 정책 현안에 대해 지시나 의견 표명, 코멘트, 업무 독려 차원에서 보내는 메일을 ‘댓글’로 폄하하는 근거와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대통령이 공적 영역에서 수행하고 있는 국정운영 업무를 사적 영역에서의 댓글 수준으로 낮추는 데에는 음험한 저의가 있어 보인다는 얘기입니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메타포의 영역을 언론계로 환치시켜 반문하면, <동아일보>는 자사 데스크가 기사를 손보며 고친 글도 댓글이라고 부르는지 묻고 싶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이뤄지는 의견표명을 모두 댓글이라고 착각해서 그랬다면 대통령을 네티즌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밖에 안 본다는 반증입니다.
둘째, 각 부처가 <국정브리핑>을 통해서 잘못된 보도를 놓고 의견을 밝히는 것도 부처의 공식적 입장표명이지 댓글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선 정부 안에서도 용어의 혼선이 있지만 시정토록 할 예정입니다.
셋째, 행정부 수반과 일선 공직자가 여러 국정 현안에 대해 소통하는 것은 권장하면 권장할 일이지 삐딱한 시각으로 볼 일이 아닙니다. IT강국 대한민국에서 국가 정상이 인터넷망을 통해 여러 직위의 공직자와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획기적 일입니다.
생각을 해 봅시다. 매일 아침 국정 현안과 관련된 무수한 정보와 의견이 언론을 통해 쏟아집니다. 청와대를 비롯한 각 부처에서는 이를 놓고 아침회의를 열어 상황을 점검하고 국정에 반영할 내용과 잘못된 내용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합니다. 이걸 두고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국정브리핑에서 운영하고 있는 <일일보도종합→부처의견달기→대통령의 의견제시> 시스템은 전 부처가 함께 하는 국정 점검시스템입니다. 인터넷이라는 첨단 인프라를 이용해 각 부처의 일선 책임자 수백 명이 대통령과 함께 매일 아침 국정 점검회의를 개최하는 첨단 시스템입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행정시스템의 혁신 사례입니다. 수출해도 좋을 혁신 상품입니다.
이를 두고 '한가한 댓글 놀음' 운운하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과 정부에 대한 맹목적 공격의도가 아니고는 생각해 낼 수 없는 정치공세입니다.
실제로 일선 공무원들은 이 첨단 시스템을 통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읽어본 대통령이 직접 본인에게 격려나 보완의견을 메일로 보내는 것에 대해 대단한 영광과 보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넷째, 잘못된 보도내용에 대해 해당 부처나 담당 공무원이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공적 직무이며, 이를 평가하는 것은 정부의 기본적 업무입니다. 잘못된 보도가 안 나도록 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이지, 이를 지적하는 것을 시니컬하게 폄훼하는 것은 언론의 정도가 아닙니다.
언론인도 직업적 자긍심이 있듯이, 공직자도 자신이 하고 있는 직무에 대해 자긍심이 있습니다. 그 직무가 왜곡돼서 국민들에게 전달될 때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이에 대한 시비를 자제하기 바랍니다.
비판에도 격이 있습니다. 품격이 떨어지는 비판을 반복하게 되면 신문의 신뢰가 떨어집니다. 신문의 신뢰가 떨어지면 독자의 외면을 받게 됩니다.
대통령은 바쁜 시간을 쪼개 일선 공무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챙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격려메일, 의견메일, 지시메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가하게 댓글이나 다는 대통령쯤으로 공직사회의 소통을 보는 시각은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는 한가한 아날로그 논쟁입니다. 동아일보가 이성을 되찾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