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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힘 ... 서프라이즈 / 개곰

똘돌이 2011. 2. 23. 21:08

노무현의 힘
(서프라이즈 / 개곰 / 2011-02-22)


양정철의 힘

미국 의료보험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 영화 <시코>를 지금의 한국 대통령에 빗댄 풍자 동영상 <쥐코>를 인터넷에 배포한 시민을 지난해 국무총리실이 불법으로 사찰하면서 쓴 이른바 ‘대포폰’은 청와대에서 지급한 것이었다. 대포폰은 노숙자 같은 타인의 명의로 개설한 휴대폰으로 범죄자들에게 악용된다. 명의자와 사용자가 달라서 경찰은 범인 추적에 애를 먹는다. 한 나라의 법질서를 지켜야 할 국무총리실과 청와대에서 범죄 조직이 애용하는 대포폰을 민간인 사찰에 악용한 것이다.

청와대는 한 행정관의 의욕 과잉으로 빚어진 사고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작년 말 양정철닷컴(http://yangjungchul.tistory.com)이라는 1인 인터넷 언론을 세운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비서관은 청와대가 돌아가는 생리상 절대로 행정관 혼자서 그런 일을 저지를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국무총리실에서 발견된 쪽지에 ‘BH(블루하우스, 곧 청와대) 하달’이라는 문구가 발견되었는데 이 정도의 지시를 일개 청와대 행정관이 혼자서 내려 보낼 가능성은 제로라는 것이었다.

양 전 비서관은 감청을 피하기 위해서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청와대의 해명에서 더욱 충격을 받았다. 그 말은 이명박 정부가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 안에서까지 통화 감청을 용인한다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양 전 비서관에 따르면 국민의정부 시절 국정원이 불법도감청을 한 사실이 참여정부에 들어와 밝혀졌을 때 청와대는 이것을 철저히 금지시켰다.

실제로 대통령의 상왕 노릇을 해온 이상득 의원의 2선 퇴진을 요구하던 한나라당의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 의원조차도 사찰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고 박근혜 의원조차도 사찰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의원들도 사찰을 할 정도니 과거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사람들에 대한 사찰은 얼마나 집요하게 이루어졌을까. 구직난 속에서 유일하게 직원을 많이 뽑는 기관은 이런 국민 사찰을 맡은 국가 기관이라는 말이 나도는 것은 그래서다.

양정철 전 비서관이 아니었더라면, 감청을 막기 위해서 대포폰을 썼다는 청와대의 해명을 듣고도 청와대 안에서도 원래 감청은 이루어지는가 보구나 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넘어가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 최고기관이 돌아가는 생리를 5년 동안 생생히 지켜본 양 전 비서관의 머리에 든 정확한 ‘사실’이 있었기에 청와대 안의 감청이 얼마나 경천동지할 일인지가 밝혀졌다.

양 전 비서관은 얼마 전 국회에서 자기가 군인 시절에 북한으로 넘어가 30여 명의 북한군을 죽였다고 자랑한 자유선진당의 이진삼 의원이 사실은 과거 육군정보사에 몸담으면서 수십 년 동안 언론인, 법관, 정치인, 시민을 테러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또 지금 KBS를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시킨 김인규 사장이 2006년 KBS 사장 선임 시기에는, 참여정부가 일체 외압을 넣지 않아 기자와 PD들이 정부를 신나게 까는데 자기 같은 사람이 들어가면 확실하게 방송을 장악하겠다면서 집요하게 로비를 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위장 전입은 기본이고 사람을 죽여놓고 뺑소니를 친 사람까지도 기상청장으로 임명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막돼먹은 공직자 임용과는 달리 참여정부의 공직자 임용 검증이 얼마나 깐깐하고 철저하게 이루어졌는지도 알려주었다.

양심적 세력이 만년 야당이던 시절에는 국정을 이끌어본 경험이 없으니 만년 여당 세력에서 둘러대면 의심이 가더라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체계적으로 국정을 경험한 양 전 비서관 같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힘은 기억에서 나온다. 그들이 온머리와 온몸으로 ‘아는 사실’에서 나온다. 언론의 일차적 임무는 ‘의견’이 아니라 ‘사실’이다. 양정철닷컴은 혼자서 꾸려나가는 언론사지만 ‘의견’을 사실로 포장하는 언론사들이 즐비한 한국의 언론 풍토에서 보석과도 같다.


알자지라의 힘

이집트에서 무바라크 퇴진 시위가 벌어졌을 때 시민과 학생에게 총격을 퍼붓던 경찰은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시내 곳곳에서 약탈이 벌어졌다. 교도소 문이 열리고 흉악범들이 쏟아져나왔다. 상점이 털렸고 가정집도 털렸다. 시민들은 곳곳에서 자경대를 조직했다.

초기에 BBC를 비롯한 서방 언론은 이집트의 시위 소식을 자세히 전하면서 ‘약탈’이 자행되고 있음을 빼놓지 않고 덧붙였다. 누구에 의한 약탈인지를 밝히지 않았으니 시청자는 당연히 시위대의 소행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알자지라는 달랐다. BBC 기자는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아마도 시위대에 의해서라는 뉘앙스로) 약탈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지만 방금 시위대와 함께 있다가 달려온 듯 알자지라 기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시위대가 약탈범을 붙잡아서 주머니를 뒤졌더니 보안경찰의 신분증이 나왔다고 밝혔다. 경찰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도 본인들이 약탈에 나서거나 아니면 깡패들을 동원하여 이집트를 치안 부재의 무질서 상황으로 몰아가서 그래도 무바라크가 있어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를 이집트 국민과 국제 사회에 퍼뜨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알자지라가 없었더라면 무바라크가 사주한 약탈극은 먹혀들어가 시위대를 궁지에 몰아넣었을지도 모른다. 알자지라가 있었기 때문에 BBC를 비롯한 서방 언론도 무바라크 정권에 의한 의도적 약탈극이 벌어지고 있음을 차차 보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체면 때문에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BBC는 월드서비스 예산을 대폭 감축하면서 480명의 직원을 줄인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긴축 정책에 따르는 조치지만 BBC 월드서비스의 청취율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면 인원을 감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BBC를 비롯한 서방 언론의 영향력은 적어도 아랍 지역에서는 줄어드는 반면 알자지라의 영향력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무바라크 정권은 이번 시위가 터지자 알자지라 지국만 폐쇄했다. 그러나 알자지라는 시위대로부터 사진과 동영상을 받아 그대로 생생한 소식을 전했다. 알자지라는 이번 이집트 시위 소식의 진상을 알려고 알자지라에 접속한 미국인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면서 미국 정부가 알자지라 방송의 유선방송 진출을 허용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FOX 등 부자들이 장악한 미국 방송이 이집트에 걸려 있다고 주장하는 미국 국익은 사실은 미국 대기업을 소유한 소수 대주주들의 경제적 이익일 뿐이고 그 대주주 중에는 미국인이 아닌 외국인도 많다. 그들은 임금이 낮은 무바라크의 이집트에 투자해서 큰돈을 벌 수 있지만 대다수 미국 서민에게는 그 수혜가 돌아오지 않는다. 미국의 서민을 위한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미국 국민의 혈세는 무바라크 권력의 기둥인 군부를 지원하는 예산으로 매년 13억 달러씩 들어간다.

알자지라의 힘은 약탈극이 누구의 소행인지를 밝혀내는 힘,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는 힘’이다. 알자지라 같은 언론이 한국에 있었더라면, 적어도 아시아에라도 있었더라면, 명박산성은 진작에 무너졌을 것이다. 모르는 사실을 알아내는 것은 알자지라처럼 조직을 갖춘 언론이 아니면 쉽지 않다.


무슬림형제단의 힘

1928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들어진 무슬림형제단의 목표는 “정치의 이슬람화”가 아니라 “선행을 통한 사회의 이슬람화”였다. 그래서 일찍부터 유치원, 학교, 병원, 약국, 장애인시설을 짓고 운영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집트 사회의 완전한 세속화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던 나세르 정부로부터도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무바라크 정부로부터도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은 이란 같은 신정 이슬람국가가 아니라고 분명히 못박는다. 무바라크 치하에서 3번이나 투옥당했으며 공학자로 현재 무슬림형제단을 이끌고 있는 후세인 마흐무드 사무총장은 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지와의 인터뷰에서 그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마흐무드 사무총장은 이번 이집트 혁명을 주도한 것은 무슬림형제단이 아니라 무바라크의 폭정에 분노한 이집트 국민이라며 무슬림형제단은 과도정부에는 어떤 형태로든 책임감을 느끼고 참여하겠지만 차기 정부를 구성하지 않을 것이며 대선에도 후보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생색이 나는 일에는 무턱대고 숟가락을 얹어놓으려는 이명박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슬림형제단은 지난 2005년 총선에서 무바라크 정권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무소속으로 후보들을 내서 88명의 의원을 당선시켰다. 이집트 의회의 20%였다. 무슬림형제단이라는 정당을 내걸고 나왔더라면 무슬림형제단은 아마 과반석을 휩쓸었을 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이 처음 정치권에 진출하면서 단숨에 사실상 제1야당으로 올라선 것은 수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집트 사회의 밑바닥에서 봉사를 실천에 옮기면서 무슬림형제단이라는 이름을 이집트 국민의 마음속에 아로새겼기 때문이었다. 처음 정치권에 진출하면서 무슬림형제단 소속 의원들은 경이적인 의회 참석률을 기록하면서 모범적인 의정 생활로 이집트 의회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 가치를 추구하지만 권력의 원천은 하늘에 있는 신이 아니라 땅에 있는 국민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땅에 있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인권, 부패 척결, 사법 독립, 교육 개혁, 권력 집단의 투명성을 요구한다.

지금 이슬람 세계를 휩쓰는 민중 봉기의 시발점이 된 나라는 튀니지였지만 튀니지에서는 대통령이 사우디로 도주한 이후로도 과거 국민을 탄압하던 권력자들이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다. 권력을 견제할 조직화된 세력이 없어서다. 그러나 이집트는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회 밑바닥을 챙기면서 이집트 국민의 신망을 얻은 무슬림형제단이 확고한 세력으로 버티고 있기에 기득권 세력이 함부로 장난을 치기가 쉽지 않다.

알자지라는 약탈의 장본인이 누구인지 사실을 알아내는 힘은 있지만 불의에 항거하는 이집트라는 현실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알자지라는 불의에 맞서는 이집트 국민의 항거를 알릴 뿐이다. 불의에 맞서는 이집트 국민에게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은 자신들도 온갖 핍박을 당하면서도 핍박당하는 이집트 국민을 위해서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이 봉사해온 무슬림형제단이었다.

알자지라의 힘은 현실을 밝히는 힘이고 무슬림형제단의 힘은 현실을 바꾸는 힘이다. 무슬림형제단을 세운 하산 알 반나는 암살당했지만 선행을 통한 사회의 이슬람화라는 그의 꿈은 머지않아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반나의 꿈은 무슬림형제단이 만들어진 지 한 세기 안에는 아마도 실현될 것이다.

의석을 얻고 정권을 잡는 것은 정책의 실현을 추구하는 정당의 중요한 목표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국민참여당이 지지율이 낮다고 해서 조바심을 품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당장의 정치만이 아니다. 이웃을 진정으로 살피고 자당 후보를 못 내더라도 타당 후보의 선거 운동을 열성적으로 하는 바보들이 언젠가는 세상을 바꾼다. 길게 보고 자신을 버리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바꾸고 언젠가 세상을 정말로 바꾼다. 자신을 비우고 버리는 세력만이 언젠가 세상을 정말로 바꾼다. 그것이 노무현의 길이다. 그것이 노무현의 힘이다.

 

개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