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총리가 집 밖에서 세배를 받은 사연 / 양정철
한명숙 전총리가 집 밖에서 세배를 받은 사연 / 양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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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에게 세배를 올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른쪽이 한명숙 전 총리입니다.
설 연휴 전, 지인들에게 문자 연락이 왔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께 세배 가는 모임이 있다며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는 내용이었습니다. 2월5일 오후 1시. 그런데 일산의 한 식당이었습니다. 어, 살고 계신 댁은 마포구 상수동 쪽인데…. 그냥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갔더니 한 20여명 모인 오붓한 자리. 과거부터 한 전 총리를 모셨던 참모 출신들과 재판과정을 돕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옛날 일산에 거주하실 때 도왔던 사람들, ‘한명숙 지키기 카페’ 간부들이 조촐하게 모였습니다.
지난 해 험난했던 검찰수사와 재판과정을 함께 하면서 서로 돈독해진 반가운 얼굴들입니다.
모임을 발의한 한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왜 일산 구석에 여기까지 왔답니까? 그냥 총리님 댁에서 모이지”
“이 숫자가 총리님 댁에 다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10명도 채 못 들어갈 텐데…”
“아, 참. 그렇구나!”
“장소도 장소지만, 총리님 혼자 음식을 어떻게 준비해. 도와줄 분도 없는데. 괜히 우 가서 세배 드린다고 하면 민폐잖아요. 그래서 아예 이쪽으로 오시게 했지.”
“그것도 그렇죠. 잘했네요.”
제가 깜빡했습니다. 한 전 총리가 전세로 사는 마포구의 아파트는 스물 몇 평 정도입니다. 내외분이 살기엔 부족함이 없지만, 많은 손님을 받을 수는 없는 곳입니다. 20여명이 함께 들어가 동시에 식사를 하기엔 턱없이 좁습니다. 그래서 아예 손님을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 무리의 패거리들이, 아예 밖에서 자리를 잡아 세배를 드릴 테니 나오시라고 하는데, 한 전 총리인들 어쩌겠습니까.
모임 장소인 일산의 식당도, 한 전 총리를 모셨던 후배가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 거하게 해결할 수 있어 잡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리 고지된 회비는 1만원. 한 전 총리께서는, 세배 돈도 못 주는데 밥값만은 당신이 내시겠다고 해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장소가 어디든, 밥값을 누가 내든 무슨 상관입니까. 집으로 초대받지도 못하고, 세배 돈도 못 받고, 오히려 각자 밥값 내며 올리는 세배지만, 모인 사람들은 그저 좋아 어쩔 줄을 모릅니다. 이게 사람 사는 맛이지요.
신년이나 설이면 유명 정치인들 집은 인산인해를 이루던 게 엊그제까지의 한국정치 풍경이었습니다. ‘세도정치’ ‘안방정치’ ‘밀실정치’가 여의도 정치를 좌지우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방엔 돈이 넘쳐났습니다. 바탕은 ‘금권정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어느 집 안방에선 그런 풍경이 은밀히 벌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민들은 대개 대통령을 지내고 총리를 지내고 혹은 일세를 풍미했던 권력자면, 퇴임 후에도 그의 집 안방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 상상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손님 맞을 집이 좁아 세배를 못 받는 전직 국무총리, 그래서 집 밖의 소박한 식당에서 세배를 받는 사람, 그의 청빈을 사랑하기에 기꺼이 밥값을 털어 세배를 올리는 사람들….
그런 풍경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 훈훈한 그 자리 풍경을 전합니다.
한 전 총리 집에 다 들어가지도 못했겠지만, 갔어도 좁은 집에서 세배하다 머리가 부딪혔겠다는...
세배를 마친 사람들에게 한 전 총리가 일일이 무릎을 꿇고 덕담을 하고 있습니다.
한 전 총리는, 값어치로 따지면 세배돈보다 넉넉한 덕담을 마음에서 꺼내줬습니다.
출처:http://yangjungchul.com/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