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폰) 들고 다니며 무슨 짓 했는가 ... 이기명
대포(폰) 들고 다니며 무슨 짓 했는가
국민들이 모두 범죄자로 보이는가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0-11-03)
범죄자들은 무슨 수를 쓰든지 자신의 범죄를 숨기려고 기를 쓴다.
살인을 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체를 암장한다든지 훼손하는 만행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요즘 과학이 발달하여 범죄수사도 첨단을 걷는다. 범죄현장에서 버려진 휴대폰이라도 발견하면 범죄는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통화내역쯤 조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것도 힘들게 됐다. 대포폰 때문이다.
국민들은 대포폰이라는 불법전화가 사기꾼 범죄자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어 이 나라 최고 권부에서도 쓰인 사실을 알고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말을 돌릴 필요도 없다. 바로 청와대에서 사용한 것이다.
가짜 휴대전화를 대포폰이라고 한다. 주인을 알 수가 없다. 무슨 짓을 해도 들키지 않는다.
대포차가 사람을 치고 뺑소니를 치면 아무리 번호를 알아도 소용이 없다. 가짜기 때문이다. 무서운 대포의 위력이다.
얼마나 몹쓸 짓을 하기에 불법 대포폰을 만들어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쓰게 했느냐는 야당의 대정부 질문을 들으며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과연 법치국가인지 의심하지 않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더구나 이러한 범죄행위를 발견하고도 검찰이 은폐하려고 했다는 부분에서는 국민이 절망을 느낀다.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한나라 의원들도 폭로한 야당의원에게 잘했다고 격려를 했다는 후문이다.
![]() |
▲ 한겨레 11월 3일자 1면 |
청와대는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이 땅의 최고 권력기관이다. 독재 시절 성질 한 번 부리면 산천초목이 떨었다.
“보내버려!” 하면 갔다. 중앙정보부, 보안사, 검찰, 경찰 할 것 없이 손가락으로 부렸고 수족처럼 움직였다.
청와대 앞에서 공무원들은 고양이 앞에 쥐였다.
그런 청와대에서 범죄행위에 사용되는 대포폰을 만들어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보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너희들이 저지르는 범죄행위는 청와대가 묵인한 도장 없는 결재가 아니겠는가. 맘대로 해도 된다는 보증서다.
이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따지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새삼 따질 필요도 없게 되었다.
도청을 하고 미행이 따르고 계좌가 추적된다. 친구도 맘대로 만날 수가 없다. 인권위원회는 위원들이 사퇴했다.
인권위원장의 반인권적 작태를 그냥 볼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이 나라 최고의 권력기관인 청와대와 공직자를 비롯한 수많은 민간인들을 사찰한 공직자윤리지원관실 두 기관이
대포폰을 이용해 수시로 통화한 사실들은 무엇이었을까.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소름 끼친다.
이명박 정권이 자신들의 반대세력이라고 생각하는 인물들의 사지를 동여매고 입을 막고
만약에 이 사실이 탄로 났을 때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서라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대포폰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로 이명박 정부는 국정운영에 자신이 없는가.
독재정권 때 써먹던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 이 정권의 모습은 규탄하기에 앞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정권의 수명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이런 정권이 다시 정권을 자신들에게 달라고 할 염치가 있을 것인가.
1990년 2월 노태우 정권 시절. 보안사에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탈영,
보안사가 민간인 1303명에 대해서 광범위한 불법 정치 사찰을 해 왔음을 폭로했다.
사찰 대상에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은 모두 대통령이 되었다.
혹시 MB 정권이 사찰하는 인물들도 장래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사찰 좀 해 달라고 줄을 서는 정치인들이 많을 것 같다.
남경필이나 정두언 정태근도 화낼 필요가 없지 않은가. 박근혜 원희룡도 빠지면 안 되지.
‘죠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모르는 우리나라 국민은 없을 것 같다.
이 소설에서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빅 브라더’의 손안에서 논다. 감시대상이다.
지금 문득 ‘빅 브라더’를 생각하는 것은 과대 피해망상인가.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이 대포폰으로 통화를 하고 감시대상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면
국민은 이미 국민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무서워서 어떻게 산단 말인가.
![]() |
[손문상의 그림세상] MB 가카의 ‘대포폰’ 활용법 - ‘각별한’ 김 여사 사랑 |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범죄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다.
이런 비밀이 정치권력에 의해 정치사찰이라는 이름으로 들춰진다면 얼마나 참담하겠는가.
또한 정치권력이 은밀하게 알아낸 개인의 사생활을 빌미로 해서 협박과 공갈을 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정말 사람이 사는 세상이 아니다.
대포차를 타고 대포폰을 들고 전국을 휘젓고 다니며 국민을 사찰하고 감시한다면 우리 국민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아무 죄도 없이 이들에 의해 사찰을 받고 거덜이 난 ‘KB 한마음’ 김종익 대표처럼 된다면 사람 사는 게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정치권력은 이런 행위로 어떤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스스로 자멸하는 길이다.
대포폰을 들고 다닌 권력의 하수인들도 자신들의 범법행위가 들통이 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감시 사찰이 엄청난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그 후에 자신들에게 돌아올 부귀영화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꿈이다.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있다. 많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혹시 아직도 대포(폰)를 들고 다니며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듯이 행세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치사하고 불결한 인간은 죄 없는 사람의 뒷조사나 하는 인간이다.
하루를 살다 죽어도 사람답게 살다가 죽어야 한다.
2010년 11월 3일
이 기 명(칼럼니스트)
# 이 칼럼은 저작권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