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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BBC의 안개 지우기 KBS의 안개 피우기 ... 개곰

똘돌이 2010. 5. 5. 13:16

BBC의 안개 지우기 KBS의 안개 피우기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05-03)


영국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총리 후보 토론에서 가장 쟁점이 된 것은 외국인 이민 문제였다. 여당인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호주식 점수제를 도입한 뒤로 저숙련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이 크게 줄었다면서 노동당의 이민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었다고 주장했다. 야당인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후보는 노동당이 집권한 13년 동안 외국인 이민자가 크게 늘었다면서 노동당의 이민 정책은 실패작이라고 몰아세우면서 더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여 이민자의 연간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닉 클레그 자유민주당 후보는 캐머런 후보에게 구체적으로 당신이 생각하는 상한선은 몇 명이냐고 추궁했다. 그러면서 영국은 유럽연합의 일원이므로 자기 마음대로 이민자 숫자에 상한선을 둘 수가 없다고 받아쳤다. 유럽연합 회원국가의 국민은 유럽연합 어느 나라에서든지 자유롭게 노동할 권리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인만 영국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인도 유럽에서 자유롭게 일하기 때문이다. 클레그 후보는 그러면서 현재 영국으로 오는 이민자의 대부분은 유럽연합권 출신 외국인이며 비유럽연합권 출신의 외국인으 얼마 되지 않으므로 보수당의 상한선을 정하겠다는 주장은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지 않는 이상 실현불가능한 속임수라고 꼬집었다.

얼마 뒤 BBC 방송에서는 Reality Check 곧 ‘사실 검증’이라는 코너에서 이 문제를 검증했다. 가장 최신의 자료인 2008년의 외국인 출입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8년 한 해 동안 영국에서 살려고 온 유럽연합권 이민자는 99,000명이었고 영국을 떠난 유럽연합권 이민자는 53,000명이었다. 46,000명의 유럽연합권 이민자가 늘어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동유럽 출신으로 추정된다.

반면 영국으로 살려고 온 비유럽연합 이민자의 수는 67,000명이었고 영국을 떠난 비유럽연합 이민자의 수는 75,000명이었다. 비유럽연합권 이민자의 수는 2008년 한 해 동안 8,000명이 줄어든 것이다. 2009년 이후 학생 비자와 취업 비자 발급 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비유럽계 영국 거주자의 숫자는 더욱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BBC는 결국 외국인 이민자 8명 중 7명은 유럽연합권에서 오므로 BNP(영국국민당)나 UKIP(영국독립당)처럼 유럽연합 탈퇴를 부르짖는 정당이 아닌 한 영국이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남아 있는 것을 지지하는 영국의 주류 정당들은 이민자의 상한선을 정할 수가 없다는 점을 사실 검증을 통해 확인해주었다. 철저한 사실에 바탕을 둔 규명을 통해 이민자 숫자와 성격, 각 당이 내거는 정책의 현실성을 밝혀내 유권자의 눈앞에서 안개를 걷어내 준 것이다.

실제로 BBC는 이번 영국 총선 보도에 임하는 BBC의 태도를 안개 제거에 비유했다. 사무실을, 군대 병영을, 학교 교실을, 시장을 짙게 휘감았던 안개가 BBC의 보도를 통해서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BBC의 총선 보도를 홍보했다. 그리고 BBC는 국영방송답게 치우치지 않고 사실을 공정하게 보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백미가 Reality Check가 파헤친 이민자 숫자의 허실이었다.

선거일이 임박하면 영국의 주요 신문은 지지 정당을 밝힌다. 보수당 지지자가 독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데일리텔리그래프야 언제나 보수당을 지지해왔고, 영국 최대의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대중지 선은 작년 가을부터 일찌감치 보수당 지지를 선언했다. 데일리메일도 거기에 합류했다. 반면 전통적으로 노동당을 지지해온 가디언은 영국 선거제도를 국민의 여론을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비례대표제로 바꿀 때가 왔다면서 선거제도 개혁을 중요한 공약으로 내건 자유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인디펜던트도 역시 자유민주당 지지를 사설에서 선언했다.

토니 블레어 집권기에는 내내 노동당을 밀었던 루퍼트 머독 소유의 타임스지는 이번에는 보수당을 지지한다고 사설에서 밝혔다. 그러나 타임스지는 선거 기간 동안 보수당을 일방적이고 편파적으로 밀지는 않았다. 캐머런 보수당 후보가 편모에게 지급되는 과도한 아동 양육 수당이 노동 의욕을 빼앗는다면서 작은 정부론을 들고 나오자, 이혼을 하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써온 해리 포터의 작가 J. K. 롤링스가 보수당 정부와 노동당 정부의 편모를 대하는 시각 차이가 구체적 정책에서 얼마나 달랐고 자기가 그 덕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세세하게 밝히면서 새벽 3시에 자물쇠를 뜯고 들어온 강도에게 집을 털리고도 돈이 없어 자물쇠를 못 고치고 단돈 2펜스가 모자라서 아이에게 통조림을 못 사주는 편모의 심정을 안다면 캐머런 같은 소리는 못할 것이라면서 자기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백만장자가 되고 나서도 세금을 성실하게 내는 이유는 자기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였던 사람을 보살펴 준 나라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고 밝힌 장문의 글을 쓴 곳은 바로 타임스지였다.

루퍼트 머독에게 80년대 초에 인수된 뒤로 타임스는 내내 적자를 못 면했고 2009년에는 적자가 무려 8,500만 파운드에 이르렀지만, 머독이 타임스 논조에 노골적으로 개입을 하지 못한 것은 정론지 타임스의 전통을 훼손했다가는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비난을 받으리라는 사주의 판단도 작용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타임스를 만드는 기자들이, 특히 제임스 하딩 주필을 비롯하여 상층부에 있는 간부들이 언론인으로서의 양식과 책임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타임스도 결국은 영국의 언론이므로 외국 문제를 보도할 때는 자국 중심주의로 흐르고 편견이 작용할 때가 많지만 자국 국내의 중요한 문제에서는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해마다 거의 30만 원에 가까운 시청료를 영국의 모든 가구로부터 받는 BBC는 더더욱 국내 문제 보도에서 공정성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신문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지만, BBC는 국민의 세금으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노동당을 지지하는 국민으로부터도, 보수당을 지지하는 국민으로부터도, 자유민주당을 지지하는 국민으로부터도 시청료를 꼬박꼬박 받기에 불편부당하게 철저한 사실 보도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바탕에 깔린 것은 BBC에 몸담은 언론인의 양식과 책임감이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정치인이 거짓말을 하면 BBC가 옳고 그름을 가려주니까 영국 유권자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BBC는 사익을 추구하는 온갖 세력이 뱉어내는 주장들이 난무하는 공동체에서 냉정하고 불편부당한 사실 보도와 검증으로 자욱한 안개를 걷어주는 청정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런 공동체에서는 정보가 왜곡 없이 소통되어 공동체 성원의 상호 신뢰도 높아진다. 사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기는 집단이나 개인은 국민의 지탄을 모면하기 어렵다. 국민의 공익을 사수하는 BBC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기 때문이다.

한국 KBS의 시청료는 월 2,500원에 불과하다. 연간 3만 원이니까 BBC 시청료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이 벌어진다. 왜 그럴까? BBC처럼 국민의 공익을 사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을 탄압하는 독재자의 주구 노릇에만 충실하면서 정작 국민을 섬기는 지도자는 하이에나처럼 앞장서서 물어뜯으려고 없는 사실을 날조하고 뻔한 사실을 왜곡하여 퍼뜨리는 데 앞장선 방송이기 때문이다. BBC처럼 자욱한 안개에 가려졌던 진실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소수 기득권자의 이익을 위해 천안함 침몰부터 스폰서 검찰의 행각에 이르기까지 뻔한 사실을 덮어서 국민의 판단을 흐트러뜨리는 자욱한 안개를 퍼뜨리는 방송이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은 국민의 공익을 위해 사실 보도를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한다. 그러나 KBS는 자신의 밥그릇만을 하늘처럼 떠받든다. KBS 직원의 평균 연봉이 7천만 원이 넘는다. 웬만한 간부 사원은 연봉이 1억 원이 넘는다는 뜻이다. 월급을 많이 주는 것은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공익을 위해 복무하라는 뜻이다. 공론의 장을 뒤덮은 안개를 걷어내는 데 앞장서는 BBC 기자들은 고액의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다. 삼척동자도 의심할 시나리오를 써 갈기면서 뻔한 진실을 가리는 안개를 피워대는 데 앞장서는 KBS 기자들은 박봉조차 받을 자격이 없다.

진실을 은폐하는 안개를 빨아들여 시야를 맑게 하는 BBC 같은 공영방송을 가진 나라는 아무리 암초가 수두룩한 해역에서도 여간해서는 좌초하지 않는다. 반면 진실을 은폐하는 안개를 피워대는 KBS 같은 공영방송을 가진 나라는 아무리 청명한 날이라도 공영방송이 뿜어대는 안개로 시야가 막혀 작은 암초도 피하지 못하고 좌초할 가능성이 높다. 천안함 침몰은 예고편이다. 진실을 덮기 위해 온갖 억측과 황당한 시나리오를 뿜어대는 조중동과 KBS 같은 언론이 거친 바다에서 외롭게 항행하는 한국호의 공론을 장악하고 있는 한 배가 침몰하지 않으면 기적이다.

 

(cL) 개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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