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하천 생태계를 복원하는 사람들
홍수가 나야 4대강이 산다고? | |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하천 생태계를 복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
[136호] 2010년 04월 23일 (금) 18:13:33
강물은 흘러 흘러 어디로 가나.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하시겠지만, 답은 바다가 아니다. 강은 결국 바다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상식은 이미 깨진 지 오래이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강이 바다라는 종점에 도착하기 전에 마지막 물방울을 메마른 모래에 뿌리고 숨을 거둔다. 푸른 물이 넘실대던 강 하구가 영락 없는 사막의 모습으로 변했고, 물이 흐르지 않는 구간은 점점 길어져만 간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동아투위 멤버이며 내가 다니던 전 직장의 편집국장을 지냈던 언론인 박순철씨는 2001년 2월 습지 취재를 위해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기에 앞서 미국 로드아일랜드 대학의 해양자원연구소장 스티븐 올슨 교수와 함께 시화호를 찾았다. 그 때 바람 부는 언덕 위 전망대에서 호수보다는 여전히 바다처럼 보이는 광막한 시화호의 죽은 물을 내려다보면서 올슨 교수는 딱 한마디 했다.
“한국인 참 용감합니다.”
박순철씨가 일본의 이사하야만,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만, 독일과 네덜란드·덴마크가 공유한 바텐마르 갯벌 등 환경과 개발이 날카롭게 대립했던 습지들을 돌아보고 쓴 책이 <생명의 틈새>(도요새)이다.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미국에서 낯선 이국 풍경이 아니라 우리의 시화호와 새만금, 그리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봤다는 그는 <생명의 틈새>에 마치 예언이나 하듯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회 전체의 가치관이 바뀌고 있을 때 고정된 가치관과 이에 의한 평가를 전제로 거대 사업을 추진한다면 그 사업은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가 예고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가깝게 흐른 지금 한국인은 더욱 용감해졌다. 국민의 여론이 모아지지도, 최소한의 환경평가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는 막대한 돈을 들여 일방적으로 4대강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무계획한 댐과 보의 건설로 토막이 난 강에 다시 보를 세우고 강바닥을 긁어내는 일이 벌어지진다. 포크레인과 불도저를 피해 수서생물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전 세계의 죽어가는 강에 관한 이야기
이런 걸 다행이라고 할 수야 없겠지만 기계와 콘크리트가 생명의 강을 사정없이 유린하는 꼴을 봐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만이 아니다. 영국의 과학 저술가이며 환경 저널리스트인 프레드 피어스가 쓴 섬뜩한 제목의 책 <강의 죽음(When the rivers run dry)>(브렌즈, 2010)는 말 그대로 전 세계의 죽어가는 강에 관한 얘기이다. 그는 64개국의 강을 자기 발로 직접 돌아보고 조사해 이 책을 썼다.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물의 양에 대한 감각을 익혀놓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루에 마시는 물은 5리터 남짓이다. 생활용수까지 따지면 150 리터 정도이다. 유별나게 물을 많이 쓰는 호주의 교외에 사는 사람은 350리터, 미국 사람은 400리터 정도 쓴다. 어떤 사람은 물을 절약하려고 변기 물통에 벽돌을 넣기도 하지만 사람이 직접 먹고 마시고 쓰는 물의 양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키우는 데 엄청나게 들어간다. 1킬로그램의 쌀을 얻기까지는 2000~50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쇠고기 1킬로그램을 얻으려면 자그마치 2만4천 리터, 즉 24톤의 물이 필요하다. 커피 1킬로그램을 만들려면 역시 20톤의 물이 들어간다. 서구식 식생활을 하면 자기 체중 100배의 물을 소비하는 것과 같다. 프레드 피어스는 물을 아끼겠다고 ‘목욕은 친구과 함께’와 같은 재치 있는 문구가 씌어진 티셔츠를 인터넷에서 구입하지는 말라고 권한다. 그 티셔츠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목화 250그램을 기르려면 어림잡아 욕조 25개 분량의 물이 있어야 한다. 면화, 물 문제를 생각할 때는 꼭 이 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슈퍼에서 물건을 사오는 것은 물을 사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경제학자들은 국제적으로 교역되는 작물을 재배하고 가공하는 데 드는 물을 가상수(virtual water)라고 부른다. 밀 1톤을 수입하면 가상수 1000톤을 함께 들여오는 것이다. 곡물 쇠고기 수출국인 미국 캐나다 호주 아르헨티나는 가상수 수출국이고, 유럽이나 한국, 일본은 가상수 수입국이다. 우리의 옷장과 신발장에 과도하게 넘쳐나는 옷과 쇠가죽 구두는 우리가 물을 물 쓰듯 했다는 증거이다. 목숨이 다한 강 하구에 넘실대던 바로 그 맑은 물일 수 있다. 동그란 백열전구를 안에 대고 양말을 꿰매 신던 일을 그만두게 된 것도 강을 피폐하게 만든 중요한 원인이다.
바다에 도달하기 전 수백 km 전부터 흐름이 끊기기도
<강의 죽음>에 따르면 지도는 이제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내해와 호수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집트의 나일강, 중국의 황허강, 파키스탄의 인더스강, 그리고 미국의 콜로라도강과 리오그란데강이 모래 속에서 찔끔찔끔 흐른다. 심지어는 바다에 이르기 전 수백킬로미터 전부터 흐름이 끊긴 경우도 있다. 호주에서 가장 큰 강인 머리도 모래 언덕에 갈 길이 막혔고, 요르단 강은 요르단에 이르기도 전에 말라간다. 인도의 성스런 강 갠지스도, 중앙아시아의 나일이라 불리는 옥서스강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아랄 해도 사막으로 변했다. 인류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너무나 유명한 강들이 사라져간다.
강들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19세기 영국의 기술자들은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거대한 인더스강과 그 지류에 잇달아 댐을 건설하고, 드넓은 평야를 따라 뻗어나가는 수백 킬로미터의 수로를 건설했다. 이 영국 기술자들의 노고로 불행한 계곡이라 불렸던 신드 사막 지역은 그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드넓은 관개구역이 되었다. 하지만 댐과 수로에 의한 인간의 통치는 150년만에 처참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강물에 운반돼온 염분이 축적돼 흑 표면을 더께처럼 뒤덮었고, 경작지는 황폐해졌다. 상류에서 과도하게 착취당한 인더스강은 바다에 이르기 수백 킬로미터 전에 바닥을 드러냈다. 물고기가 산란하고 돌고래가 뛰놀던 맹그로브 숲과 작은 만은 거의 다 파괴됐다. 오늘날 신드 지역에선 할 일 없는 사람이 산적떼가 되어 아직 일손을 놓지 않은 농민을 약탈한다. 수백만의 농민이 인근 카라치로 이주해 난민이 됐다.
총길이가 2300킬로미터에 달하는 콜로라도 강은 미국에서 열 두 번째로 크다. 이 강은 7개 주의 급성장한 도시에 물과 전기를 공급한다. 1930년대부터 저수지가 건설되었고, 이로 인해 숨 막히게 아름답던 협곡들이 물에 잠겼다. 재규어가 어슬렁대고 비버가 뛰놀던 삼각주는 메마른 불모지로 변했다. 계속되는 가뭄은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 이제 콜로라도 강을 지켜보는 대부분의 미국인은 파국이 올 날이 멀지 않았다는 걸 느낀다. 수로와 배수 시설이 그물처럼 얽힌 드넓은 관개구역은 거대한 염전처럼 변해간다. 염분으로 인한 대재앙이 거대한 미국 농경 문명을 기다린다.
유명한 아랄해가 사막이 된 것도 비슷한 여정이다. 소련의 군부가 소형 핵폭탄까지 터뜨려가며 아랄해로 흘러드는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 강에 대형 댐을 짓기 시작하면서 파국은 예정돼 있었다. 소련은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관개구역을 만들어(영국인의 기록을 깼다) 하얀 금이라 불리는 면화의 최대 수출국이 됐으나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고 느끼기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철갑상어가 뛰놀던 아랄해는 물길이 끊겨 사막이 됐고, 아랄해 주변 관개구역은 눈이 내린 듯 하얀 소금 벌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바람에 흩날려 사람들의 콧속으로 파고드는 염분은 이 지역 여성 70만 명 중 97%에게 악성 빈혈을 안겼다.
과학자들은 번성하던 고대문명이 갑자기 사라진 것도 염분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1930년대 영국의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경은 이라크의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가에서 서양문명의 시발점이 된 고대 수메르인의 거대 유적지를 발견했는데 그곳 석판에는 쐐기문자로 ‘검은 들판이 하얗게 변했다’고 씌어 있었다.
환경운동가들이 핵폭탄보다 무서워하는 엔진톱과 양수기
염해는 먼 나라나 고대의 얘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맑은 물이 흐르는 섬진강 역시 상류에서의 과도한 취수 탓에 거의 화개장터가 있는 곳까지 짠물이 차올랐다. 섬진강 수역에서 채소 농사를 짓는 농민이 소금기 없는 물을 길어 올리려면 관정을 200미터 깊이까지 파야 한다.
환경운동가들이 핵폭탄보다 무서워하는 것은 엔진톱과 양수기이다. 약간은 하찮아 보이기도 하는 이 기계가 그 어떤 파괴력 있는 무기보다도 훨씬 치명적으로 인류의 앞날을 위협한다. 엔진톱은 아마존 정글에서 1400종의 생물 종이 살아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소우주인 1000년 묵은 마호가니 나무를 단 3분만에 땅에 쓰러뜨린다. 이 놈은 수 만년 동안 인간의 발길을 거부해온 전 세계의 오지에 거침 없이 길을 내는 앞잡이이기도 하다. 거목이 쓰러져 길이 난 자리에는 동식물의 시체가 널렸다.
성능 좋고 값싼 일본제 양수기는 짧게는 수천년 길게는 수만년 동안 자연이 물을 모아놓은 지하 암반 대수층에서 물을 뽑아 올리는 빨대 역할을 한다. 농토를 염전으로 만드는 관개에마저 실패한 인도에선 2100만명이 넘는 농민이 지하수로 농사를 짓는다. 피어스는 이 사업이 난장판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빼내기만 하고 채워지지는 않는 이 대수대의 물이 언제 바닥이 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벌써 전통 우물의 절반과 100만개의 관정이 바닥났다. 자살한 농민도 수 천 명에 이른다. 정부가 전력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농사는 짓지 않고 아예 물만 길어 파는 농가도 생屛뎬�. 이 물은 악덕 염색업체를 거쳐 폐수가 돼 가뜩이나 오수로 말라붙은 강에 악취를 보탠다. 이것은 광기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환경론자들이 공유재산의 비극이라고 부르는 전형적인 예이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노리는 불소와 비소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이란, 방글라데시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저마다 고갈을 향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같은 나라도 가담했다. 강이 바닥을 드러내자 비상식수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 대륙의 지하수 저장고가 바닥을 드러낸다. 전 세계 식량의 약 10분의 1이 빗물에 의해 다시 채워지지 않는 지하수로 재배된다는 추측도 있다. 세계 최대 식량 수출국인 미국의 대수층도 빠르게 사라져 간다. 한때 세계 최대 대수층의 물을 끌어 올려 전 세계 밀 거래량의 4분의 3을 생산했던 미국의 하이플레인즈 지역은 대수층이 고갈돼 급격히 쇠락했다.
지하수 의존은 어쩌면 역사상 최대 규모일지도 모를 재앙을 잉태했다. 이 일에는 선의(善意)도 개입했다. 인도 중부에 있는 히라푸르라는 마을의 학교에 있는 우물물을 먹은 아이들이 집단 중독으로 쓰러졌다. 이 관정은 유니세프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안전한’ 물을 제공하기 위해 파준 1000만 개 우물 중의 하나이다. 어처구니없게도 활동가들은 자연의 물도 독성을 머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유엔과 다른 원조기구가 만들어준 우물물을 마신 수백만명이 불소화합물 중독증에 걸렸다. 불소화합물은 인도의 지반을 구성하는 화강암 속에 들어 있다가 지하수에 천천히 녹는다. 지하수면이 높을 때는 괜찮지만 수위가 낮아지면 문제가 생긴다. 인도에서 갑자기 중독자가 늘어나는 것은 대수층이 바닥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도에는 대략 6천만명의 불소화합물 중독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주로 노인과 아이들이 불소 중독으로 빈혈, 관절 강직, 신부전, 근력 약화, 암 같은 병에 걸려 쓰러져간다.
인도 서부와 방글라데시 전역의 관정에는 비소가 함유돼 있다. 10년을 마셔야 첫 증세가 나타나는 비소 중독으로 방글라데시에서는 해마다 약 25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방글라데시 관정 중 절반이 넘는 1200만개가 비소로 오염됐는데 그 중 90만개는 유니세프가 파준 것이었다. 비소가 함유된 물은 발원지인 히말라야 산맥에서 갠지스 강이 흐르는 인근 지역 모든 지하수에 스며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에는 약 8억명의 인구가 산다.
정부가 권위적일수록 댐과 보 건설을 사랑해
정부가 권위적일수록 댐이나 보를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 구소련 전문가인 마셜 골드먼은 “댐 건설 만큼 소련 정부를 만족시키는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거의 프로이트적인 강박증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프랑코 치하의 스페인도 기록적으로 많은 댐을 지었다. 중국 정부도 댐 만드는 것을 지독하게 즐겼다. 중국에는 2만2000개의 댐이 있는데 이는 전 세계 댐의 거의 50% 수준이다.
요즘에도 대한민국처럼 20세기형 대형 토목 공사에 목을 매는 나라는 많다. 중국 정부는 양쯔강 물을 말라 비틀어져가는 황허로 끌어오려는 남수북조(南水北調) 계획을 세웠다. 중국 당국은 리비아 대수로 공사액수의 두 배인 6백억 달러나 들어가는 이 계획이 실현되면 수천년 동안 자급자족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프레드 피어스의 눈에는 과대망상이 부른 미친 짓으로 비친다. 댐과 저수지와 기나긴 수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은 천문학적인 돈만 낭비하고 실패하리라고 그는 예측한다. 인도 역시 강 연결 계획을 세웠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14곳의 강을 연결하기 위해 거대한 댐을 10곳이나 짓고, 1500킬로미터의 운하와 도수관 및 300곳의 초대형 저수지를 지을 계획이다. 경비는 薩� 남수북조 계획의 두 세배는 들어갈 전망이다. 스페인 역시 스페인판 남수북조 계획에 필요한 100억 달러의 경비를 조절하려고 유럽연합에서 로비를 벌이는 중이다. 대규모 토목 공사 유혹은 전염성이 강하다.
물은 분쟁의 원인이다. 이스라엘이 강제로 빼앗아간 요르단 강물을 내놓지 않는 한 중동에 평화가 오기는 어렵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갠지스강 소유권을 둘러싸고 최초로 핵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 나일강은 10개국을 거쳐 흐르는데 국가간 물 분쟁은 날로 심각해져간다. 모두 80여개의 강이 국경을 넘나드는데 물이 줄어들수록 군사적 긴장은 높아간다. 기후변화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건조한 지역은 더 건조해지고 다습한 지역은 더 다습해진다.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 알프스 산맥과 안데스 산맥에 있는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 빙하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강 6개의 수원이다. 만약 이곳의 빙하가 다 녹아 강들이 계절하천으로 변한다면 이곳에 기댄 20억의 운명은 어찌되는 걸까. 그러고 보니 희망이라곤 없는 것 같다.
콘크리트는 홍수와의 싸움에서 백전백패
복잡한 강의 수리를 단순한 배수로로 바꾸려는 20세기형 토목기술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쉬쉬하지만 댐이 가장 많은 중국에서는 지난 50년간 300개가 넘는 댐이 대책 없이 쌓이는 퇴적물의 무게를 못 견뎌 터져나갔다. 미시시피강에서 다뉴브강까지 소위 선진국이란 데서도 댐이나 제방이 홍수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홍수는 약한 고리를 귀신처럼 찾아내 무너뜨리곤 했다. 콘크리트와 홍수와의 싸움에서 홍수는 백전백승했다. 기후변화가 홍수에 더욱 힘을 보태는 형편이다. 4대강 사업으로 홍수를 막겠다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낡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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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강은 홍수가 생태계와 그곳에 사는 인간에게 얼마나 이로운지 잘 가르친다. |
메콩강과 아마존강은 홍수가 생태계와 그곳에 사는 인간에게 얼마나 이로운지 잘 가르친다. 10월말이나 11월초 보름달이 뜰 무렵에는 베트남의 톤레사프강이 거꾸로 흐르는 진기한 현상이 벌어진다. 몬순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면 메콩강이 세차게 흘러 지류를 덮쳐 벌어지는 일이다. 역류하는 톤레사프 강은 거대한 호수를 채우고도 넘쳐 넓은 지역에 걸친 열대 우림을 뒤덮는다. 때맞춰 방류된 치어는 물속의 풍부한 곤충과 죽은 동물을 뜯어 먹고 통통하게 살이 쪄 메콩강 주변에 사는 수백만을 먹여 살린다. 1000종에 달하는 메콩강의 풍부한 물고기는 먹을 때만큼은 가난한 사람들을 왕 부럽지 않게 만든다. 아마존 강 범람원에 서식하는 나무 가운데는 홍수기가 시작할 무렵 씨앗을 퍼뜨리는 수종이 많다. 홍수로 넘쳐든 물은 씨앗을 범람원 구석구석으로 운반해 발아될 확률을 높인다. 물고기들은 과일과 씨를 배불리 먹는다. 홍수가 아마존을 생물종의 다양성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만드는 가장 큰 공신이다.
미국의 저명한 담수학자 샌드라 포스텔과 브라이언 릭터가 쓴 <생명의 강(Rivers for life)>(뿌리와 이파리, 2009)는 ‘강에게 홍수를 돌려준다’는 발상의 전환이 어떤 결실을 맺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자연의 맥박으로 강을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한 이들은 호주와 남아공화국의 학자들이다. 최근 호주의 안젤라 아싱턴이 이끄는 연구팀은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괄목할 결과를 발표했다. 이 팀은 퀸즐랜드 주 버넷강 유역의 생태 건강을 완벽하게 보전하기 위해서는 연간 유량의 79~84%, 자연적인 대규모 홍수의 71~91%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쉽게 말하면 모든 강은 우기나 건기, 심지어 홍수 때에 맞춰 그 80% 정도의 물이 흘러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는 호주의 많은 강에서 댐과 저수지의 수문을 언제, 얼마나 오랜 동안 열어야 할지, 아니면 댐이나 저수지를 아예 없애야 할지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그 나라 강의 상태가 바로 민주화 수준
남아공화국은 하천 생태학자와 물 관리자, 사회과학자들이 지역사회 및 정부 지도자들과 협력해 각 하천의 바람직한 생태계 보호 수준을 결정한다. 사회가 하천의 사용과 관리에 대해 내린 결정 내용을 공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이다. 현재 미국 그랜드 캐년의 콜로라도 강, 캘리포니아 주 트리니티 강, 플로리다 주 키시미강, 미시시피계 수계 상류, 호주의 머리강 등 많은 강에서 남아공의 진전된 유형의 정밀한 유량 복원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생명의 강>에 따르면 남아공이 지난 10년 동안 강 보호의 리더로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넬슨 만델라 전대통령이 첫 내각을 구성할 때 물 관할 장관으로 토목공학자가 아닌 인권변호사 카데르 아스말을 임명한 덕분이다. 강은 그 나라의 민주화 상태를 말해준다.
인간이 하천 생태계의 복잡한 과정과 관련해 축적한 과학 지식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호주와 남아공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저마다 다른 상처를 입고 신음하는 자국의 강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피고 자료를 축적해 단계적으로 자연에 가깝게 생태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나라들은 하천 생태계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곡식과 가축을 기르기 위해 필요한 물을 강이나 지하수에서 조달하는 일을 포기할 각오가 돼 있다. 부족한 물을 보충하려고 빗물을 모으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거나 우리나라의 뚬벙 같은 전통적이고 친환경적인 연못을 복원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실천을 통해 느리게 배워간다. 이 방식에 유일한 약점이 있다면(어떤 나라에선 치명적일 수도 있다), 절대로 특정한 소수에게만 이익을 가져다 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출처: 시사IN
링크: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