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新 카스트시대 ... 2. 경제적인 富로 갈리는 계층
빈부격차 ㅡ>정책기반 약화 ㅡ> 경제 걸림돌
-전후 두세대 지나며 새 신분질서 형성
-"자수성가 힘들다" 중산층의 위기
-올 1분기 소득 5분위 배율 8.68배 '최고'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20대 태반이 백수인 '이태백' 세대에게 `자수성가'는 공감하기 어렵다. 부모의 자산과 소득이 떠받쳐주지 않으면 하류층에서 상류층으로 상승은 거의 불가능하다.
신분 상승이 사실상 막히면서 한국은 점차 신카스트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신카스트란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갈려 평생 그 신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도의 고질적 계층구조 `카스트'에 빗댄 말이다.
현대 한국사회의 카스트는 종교와 직업에 따라 신분이 바뀌던 인도의 카스트와 달리 경제적인 부로 계층이 갈린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후 폐허에선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출발선이 비슷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 세대가 지나면서 새로운 신분질서가 굳어지고 있다. 자산이 충분하지 못하면 중산층이라 해도 실직과 동시에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서울대 입학생에 대한 실태조사는 이같은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아버지는 절대 다수인 81.5%가 대졸 이상이었다. 대졸 53.3%, 대학원 졸업 28.2%며 고졸은 16%에 불과했다.
어머니도 절반이 훨씬 넘는 65.8%가 대졸 이상 학력이었다. 고졸은 이의 절반 수준인 32.2%에 그쳤다.
서울대 입학생은 아버지 직업도 고소득 직종이 많았다. 법조인, 의사, 교수 등 전문직이 20.8%, 사장과 대기업 간부 등 경영관리직이 16.4%로 전체의 37.2%를 차지했다. 반면 숙련기술직은 5.5%, 농·축·수산업과 비숙련노동은 각각 1.3%에 불과했다.
이들 직업과 판매·서비스업 14.7%를 합해도 22.8%로 전문직과 경영관리직을 합한 37.2%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적었다.
일본 최고의 국립 명문대인 도쿄대도 서울대와 상황이 다르지 않다. 도쿄대는 이미 1970년대 재학생 부모의 소득이 도쿄시내 다른 사립대생 부모의 소득을 넘어섰다.
사립대보다 저렴한 학비로 가난하지만 똑똑한 젊은이들에게 배움과 성공의 활로를 터줘야할 국립대가 오히려 부유한 집 자식들의 신분 유지 코스가 되면서 신카스트 확대 재생산의 정점에 서 있는 셈이다.
전통적인 신분 상승의 길이었던 `공부'도 부모가 돈이 있어야 가능한 시대다. 단순히 사교육 탓만은 아니다. 복잡하고 고도화된 사회구조 속에서 수십년 동안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공교육만으로 최고의 인재가 되기엔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가난한 집 자식들의 최고 신분 상승 통로였던 사법고시가 돈이 많이 드는 로스쿨로 대체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문화·융합화된 사회구조에서 사시만으로 법조인을 선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원인이었다.
문제는 과거엔 고시촌에 틀어박혀 혼자 열심히 공부해도 사시를 통해 법조인이 돼 상류층에 진입할 수 있었지만 이젠 3년간 학비만 6000만원이 드는 로스쿨을 졸업해야만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농촌 출신 상고 졸업생이 법조인이 되는 성공스토리는 더이상 불가능해졌다.
또 다른 고소득 직업인 의사도 마찬가지다. 의대 등록금은 다른 학과보다 훨씬 비싸다. 실험이나 실습이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교재와 기구 등도 적지 않아 부수비용도 많이 든다.
가난한 집 자식이 천재적인 머리로 공부를 잘해 의대에 들어갔다 해도 졸업하려면 적지 않은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신분상승이 거의 불가능한 가운데 빈부격차는 점차 심해지고 있다.
올 1분기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8.68배로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배율이 커질수록 소득격차가 크다는 의미다.
지난해 하반기에 몰아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는 비교적 안정적인 상용직보다 일용직, 임시직,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더 많이 빼앗아갔다.
자산격차도 심각하게 벌어져 있다. 2007년 옛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의 토지 소유 현황에 따르면 2006년말 상위 1%의 땅부자가 민간 소유 토지의 절반 이상인 57%를 차지했다. 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 결과 1996년에 68.5%였던 중산층은 2006년 58.5%로 줄었고 빈곤층은 같은 기간 11.3%에서 17.9%로 늘었다.
카스트가 심각한 이유는 상승은 극히 어려운 반면 중간에서 밑으로 떨어지기는 너무 쉽다는 점이다. 특히 자산이 없는 월급쟁이들은 직장만 잃으면 얼마 못가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취약한 처지에 놓여있다.
이같은 구조에선 사회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좌우대립이나 노사문제도 따지고 들어가면 중산층 신화가 무너지고 빈곤층이 증가하는 경제적 격차 확대가 근본 원인이다.
주 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중산층이 붕괴되면 사회불안과 계층간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며 "저소득층이 상대적 박탈감으로 정부와 정치권을 불신하면 정책의 지지기반이 약화돼 국정운영이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계층간 격차 확대로 인한 사회혼란상은 경제성장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경제적 격차 해소를 위한 전국가적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경준 KDI 연구위원은 "분배 이슈로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 성장을 위한 사회적 동력이 부족하게 된다"며 "중산층을 복원하고 빈곤층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체계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