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제사 겸 묘소정리
5월 말일에
매번 바쁘다는 핑계로
몇년간 가보지 않았던 장인어른 묘소에
처가 식구들과 모처럼 가보았다.
아직 여름이라 하기에는 너무 이른 때이지만
햇살은 한 여름의 그것과 마찬가지였고 비만한 몸을 가진 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흘러 안경을 흐리게 한다.
울마눌님이 얼굴도 보지 않고 데려간다는 그 셋째딸이고
나와 같이 일한 저사람은 막내사위....유일한 내 밑의 동서.
그러고보니 우리집에선 막내...
처가집에서는 끝에서 두번째...
언제나 큰소리 쳐보고 살까나~~!
비석 하나 없는 장인의 묘를보며
시대의 아픔으로 고향을 도주하듯 나와서 살아내시다가
결국 그 시대를 이겨내지 못하고
집사람이 겨우 열살을 조금 넘겼을 70년대 중반에 돌아가셨단다.
겨우 오십년도 안된 세월을 사시면서
이념으로 인한 고통을 받으시면서
사람 좋아하시는 그 성격으로
술로 아픔을 달래시던 것이 무리가 되었나
남은 가족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남겨주시고서
먼저 이념도 없고 고통없는 세상으로 가셨단다.
이십여명의 가족이 나들이 하듯 들려 인사를 드리고
묘지 주변을 정리하는데
여섯 남매를 홀로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장모님은
恨이 많으셨는지 그늘에 앉아서 보시기만 할 뿐이시다.
손녀와 손자가 할머니 옆에서 버찌 열매도 따고 이야기도 해 드리고 하다
사진을 찍는다니 포즈도 잡아준다.
홍은인 벌써 스물일곱이 되었다는데 이모부인 내 눈에는 마냥 어린 학생같이 보인다.
홍은아~! 셋째 고모부 블로그는 잘 찾고 있니?....ㅎ
묘소 옆에는 밭이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두릅밭으로 바뀌었네
선산에 저렇게 납골당을 만들어 놓고도
친척들과의 문제가 있는 것인지
장인어른을 왜 저기에 안모시는지 물어봐도 시원히 답을 안해주신다.
진천과 청주에서 묘소가 있는 공주로 간 김에
공주의 성곡사란 사찰로 구경을 가보았다.
3주간을 연속으로 사찰구경을 하게되니
하나님이 뭐라 하실까?
노공이산님의 장례때 보니 불교,천주교,기독교,원불교가
각각 각자의 방식으로 장례를 치루는데
하나님이 있는지를 믿느냐는 추기경의 질문에
노공이산님 특유의 부끄러운 한 표정으로 대답을 시원하게 하지 못하시는 그 장면을 보고
종교를 철학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시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진에서는 불상들의 크기가 짐작되기가 쉽지 않겠지만
이 성곡사는 경내 부처들의 크기와 숫자로 다른 사찰들과 승부하려는지
여기 저기에 서로 다른 모습의 대형 불상들이 있고
아래사진에는 종합운종장의 스탠드 같이 만들어 천불을 모신 곳도 있다.
참선과 고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 불교이겠거늘
저리 부처의 규모를 키우고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든 기성품의 금분입힌 부처를 천개르 세우는 일이
고난의 상징인 예수의 가시 면류관을
금관의 예수로 만들어버리는 오늘날의 대형교회를 보는듯하여 씁쓸했다.
이 사진들이 천개의 불상을 진열한 곳~!
큰아들은 사진 찍는다고 포즈잡으랬더니...ㅎㅎㅎ
저녀석이 세수할때는 비누대신 폼 클렌저로
샤워할때는 바디 클렌저로만 하더니 포즈까지도 깜직모드로...
딸이 없으니 딸같이 놀아줄려나~~~
저걸 어찌 만들었을까란 의문이 생기게 하는 커다란 와불도 있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모습의 상도 있고....
군대시절 가을이면 으례했던 싸리작업.
싸리나무에 꽃이 피었길래 추억을 가지고 한 컷~!
사찰을 둘러보고 떠나기전에 사진을 찍어 주려는데
옆에서 자기도 끼워달라는 울마눌님의 귀여븐 포즈~!
적어도 2미터가 넘을 돌담을 원숭이 마냥 펄적 뛰어 기어 오르는 작은아들.
친척들이 신기해하며 다시 해보라니 세번도 더 하고 뿌듯해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내 어린시절 모습이다.^^
다시 청주로 돌아오는데 지나게 된 가로수가 유명한 플라타나스길~!
아직은 잎이 충분치 않아 뭔가 아쉬운데
한여름이 되면 터널로 변해버려 달리는 이 기분이 좋게 되는 길~!
소크라테스의 "네 꼬라지를 알라~!" 포즈
애인구함~!
나이 19세
별명은 메뚜기...ㅎㅎㅎ
보미보면 뭐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