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는가?’ 이런 질문을 받고, 저는 ‘고시공부 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이런 대답을 한 일이 몇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딱딱한 법률 책을, 읽고 또 읽는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책을 읽을 때마다 하나씩 새로운 이치를 깨우치고 아는 것을 더해 간다는 것이 제겐 참 기쁜 일이었습니다. 비록 목표에 대한 기대와 집념이 단단하기는 했지만, 서른이 되도록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살림살이에, 실낱같은 희망 하나를 바라보며, 아무런 놀이도 휴식도 없이 오로지 책상에서 책과 씨름하는 강행군을, 그것도 몇 년씩이나 계속한다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랜 동안 그 시절을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하는 것은 아마 그런 기쁨이 주는 충만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요즈음 저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저를 둘러싼 요즈음의 여러 가지 상황이 마음을 편안하게 가질 수는 없는 형편입니다만, 지난 12월 인사를 나가지 않기로 한 이후,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의문을 가졌던 여러 가지 일들에 관하여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책을 읽고 생각한다고 40년이 넘도록 풀지 못한 의문이 다 풀릴 리야 없을 것입니다만, 끝내 알 수 없는 일은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을 알지 못하였거나 거꾸로 알고 있었던 것을 바로잡는 일은 얼마간이라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런 저런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되거나 확인하게 되는 것들이 모두 제가 풀고 싶은 의문에 완전한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렇게 하는 동안 세상 이치를 깨우쳐 가는 기쁨이 있고,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고자 노력에 스스로 보람을 느낍니다.
삶이 무엇이고,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무엇이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불변의 진리를 알 수는 없을 것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서로 나눌 수 있을 만큼은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이 좀 정리가 되면, 근래 읽은 책 이야기, 직업 정치는 하지마라, 하더라도 대통령은 하지마라는 이야기, 인생에서 실패한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무슨 큰일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인생을 정리하면서 자라나는 사람들과 삶의 경험을 나누려고 합니다. 경험 중에서도 큰 자리를 성취한 사람의 실패와 좌절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화려한 성취의 이면에 있는 어두운 이야기가 큰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시간이 나는 대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다만, 본시 재주가 모자라는데다가 허리가 좀 좋지 않아서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속도가 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양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아직 글을 내놓을 사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귀향 1년의 인사로 이 글을 올립니다. 그 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2009.2.22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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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올려놓고 보니 |
2009.02.22 21:06 | 노무현 | 조회 2165 | |
퇴임 1주년 인사를 겸해서 ‘자신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항상 저의 글을 올리던 ‘함께 생각해 봅시다.’ 마당은 저도 관리자의 도움이 없이는 글을 올릴 수 없는 곳이라 이곳 자유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글을 올려놓고 보니 우리 자유 게시판이 참 초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관리 부실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관리자의 역량도 권한도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모니터링 회원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 또한 회원님들의 글에 마구 간섭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어라고 꼭 꼬집어 이야기하기 어려운 분위기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느끼는 즐거움, 보람 이런 것이겠지요. 유익하다 싶은 소식과 정보, 자료, 고개가 끄덕여지는 논리, 흐뭇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 기분 좋은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와 위트, 이런 것이 사람을 끄는 글이겠지요.
민주주의 2.0을 기획할 때 ‘대중성’이 필요하다는 말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대중성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발산’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발산이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발산’이 막말이나 욕설로까지 발전하는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자유의 공간, 발산의 공간은 필요할 것입니다만, 어떤 공간이라 할지라도 서로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넘어서는 자유를 용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반대와 비판은 사물을 명료하고 균형 있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와 비판일수록 공격이 아니라 상대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차분하고 겸손한 설득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승부에 집착하거나 감정싸움에 매몰되면 결국은 사람관계 마저 상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중재를 하는 사람, 재판을 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함께 뒤엉킵니다. 자연 사람들은 떠나게 되는 것이지요.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이 사이트에서의 논쟁과 서프라이즈에서의 논쟁을 비교해보면 서프라이즈가 좀 더 세련되고 정제된 느낌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자유일 것입니다. 야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사실도 논리도 없는 모욕적인 욕설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존중할 것은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더욱이 이 사이트에서는 특히 적절하지 않습니다. 따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를 하실 것입니다. 저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응도 감정을 절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차분한 논리로 대응하거나 그렇게 할 수준이 아니면 무대응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욕심을 좀 부린다면, 일상적으로 떠오르는 사회적 쟁점에 관한 판단과 행동에 도움이 되고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사실과 논리들을 올려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도 의견만이 아니라 의견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을 붙여주시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공을 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민주주의 주권시민이 되는 학습이 있다면 아마 첫 관문이 이것일 것입니다.
그 동안 사이트 운영을 부실하게 한 점에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사이트를 재미도 있고 유익한 기능을 하는 사이트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 개편 작업은 느리기는 하지만 진행 중입니다. 민주주의 2.0은 이 사이트 개편이 끝난 후에 문을 닫거나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이라도 이 사이트의 분위기를 좀 바꾸어보면 좋겠습니다. 회원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09.02.22 노무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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