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정치
한겨레나 경향신문에 관한 논쟁을 본 후 생각을 밝혀 봅니다(칼의노래님)
똘돌이
2008. 12. 16. 11:26
한겨레나 경향신문에 관한 논쟁을 본 후 저의 생각을 밝혀 봅니다.
어떤 언론이 존립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라고 하는 것에 대해 아래의 3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기사의 '사실성'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기사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일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조중동과 한겨레/경향/오마이(이하 한.경.오로 표기)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고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먼저 조중동은 두말할 나위 없이 사실성이 매우 결여돼 있습니다. 왜곡하고 비틀고 창작하기를 밥 먹듯이 합니다. 적어도 조중동이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보수다운 보수를 표방한다면 그들도 존재하는 대상으로서 상대할 가치는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한.경.오는 조중동에 비해 기사의 사실성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판단합니다. 신뢰도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실성의 관점에서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고 봅니다.
둘째, 기사의 '경향성'
경향성에서 조중동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한.경.오 등 진보매체들의 경향성은 어떠한가? 진보좌파적 경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보좌파들의 성향은 매우 교조적이고 유연성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순결주의적 성향이 강합니다. 그들은 어떤 사안이나 논조에 있어 순결성을 잃으면 도태되고 왕따 당하기 쉽상이기 때문에 이를 지나치게 의식합니다. 그러니 그들보다 넓은 스펙트럼의 진보를 말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사상을 이해하려하거나 동조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념과 이념의 선명성에 치중하여 노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용납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용납을 못하는 것이라 봅니다.
결국 경향성 관점에서 볼 때, 한.경.오 등은 또다른 이념적 기득권이나 교조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 언론의 역활성
정부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기능 관점에서 보면 경향성을 배제할 때 한.경.오는 조중동보다 분명 낫다고 봅니다. 치우치거나 시녀 노릇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짝퉁보수언론에 맞서는 상대자 역활의 관점에서 한.경.오는 힘에서는 뒤지지만 성격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비중이랄 수는 없지만 필요한 역활입니다.
그 외에도 기업의 이윤추구 관점이 있을 수 있는데, 조중동보다는 덜할 것입니다. 기업의 자본 논리와 이윤을 추구하는 측면에서 보자면 자본시장을 인정하는 한, 그 한계성은 인정해 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어떤 언론사에 대한 평가는 경향성만을 놓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가령, 정당이나 어떤 인물에 대한 판단을 완전히 배제한 채, 한.경.오 등에 대해 평가를 내리도록 한다면 조중동과 별다르지 않다는 혹평은 과한 것이며 절독운동을 해야 할만큼이냐라는 것에는 아직까지는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 언론이 노무현에 대한 과도한 비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공의 철학과 사상을 '진보'라 인정하지 않고 있음은 물론, '배제'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노무현과 이들 언론의 노선이 같은 지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등치시킬 수 없다는 것에도 이릅니다.
결국 노무현 노선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 가치라고 판단하고 동의한다면, 경향성을 부분으로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가치라는 전체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새로운 대안언론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가능한 것 아닌가 해석해 보고 또 공감하게 됩니다.
대안정당과 대안언론에 대한 논쟁에서 반한나라당 전선과 가치중심이 주된 논제로 보이고 확장해서 의견을 밝혀봅니다.
반한나라당을 기치로 내세우는 주장이 원칙 또는 가치의 관점에서 볼 때, 궁극이 될 수 없고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논리에서 기본적으로 반한나라당기치보다 가치중심이 항상 우위에 서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우위성은 필요성을 논하는 시점에서는 이미 대안성을 모두 다 잘 갖춘 것으로 전제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에 반대하거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명분이 별로 없고 그래서 늘 우위를 갖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우위성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것은-성공을 전제로 필요를 내세운 대안이-실제 구체화하고 구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과 현실적 어려움이 있을 것이며, 제대로 만들어 낸다는 장담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런 우위성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것은-성공을 전제로 필요를 내세운 대안이-실제 구체화하고 구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과 현실적 어려움이 있을 것이며, 제대로 만들어 낸다는 장담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리고 아직 존재하고 있지 않으니 당장 반한나라당 기치라도 찾게 되고 어떻게든 통합해서 해내기를 바라는 마지못한 기대 아닐까 싶습니다. 반한나라당이라면 무엇이든 다 좋다는 것은 액면 그대로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울분과 분노에 의한 표현임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시간개념을 널럴하게 잡으면 사실 지금의 것에서 바꾸는 것도 가능성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늘 현실에 빠져 있게 되면 꿈은 영원히 꿈일 것이니 굴복하지 말고, 누군가는 꿈꾸고, 누군가는 시도하고, 누군가는 일궈내야 하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대안론 역시 구체성을 보여주기 전까지 그리고 제대로 된 그림과 비전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현존하는 것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