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퇴계 – 혁명가
<퇴계혁명 에필로그>
내가 보는 퇴계 – 혁명가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에서 -
새로운 것은 낡은 것을 깨트리고 나온다.
이 책을 통하여 나는 퇴계에 대한 오랜, 뿌리 깊고 완강한 통념을 깨고자 했다.
그리하여 21세기 새로운 퇴계의 가능성을 열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택한 것이 이 땅에 만연한 퇴계비판에 대한 역비판의 방식이었다.
내 주장이 얼마나 공감을 불러 일으킬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이 퇴계에 대한 ‘터무니 없는’ 비판만큼은 확실히 불식시키는 데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보는 퇴계, 그는 난세에 임하여 소극적이거나 도피적인 인물이 아니었고,
주자를 존경하였지만 주자의 언설에 맹종하는 인물도 아니었으며,
기존의 질서에 안주하여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보수적인 인물도 아니었다.
이론을 세우는 데 깊이 헌신했지만, 이론에만 매몰된 사람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퇴계는 현실의 변화를 기획하였던 실천사상가였다.
그는 어디까지나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의 이상을 가진 유학자였다.
그가 주자학에 몰두한 것은
16세기 난국의 현실을 돌파하고 유학의 이상을 지향하는 데 주자학이 적합한 사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퇴계는 ‘주자학자’이기 전에 16세기 조선의 현실에 고민하였던 한 ‘역사적 인간’이었다.
‘역사적 인간’으로서 퇴계를 이해하는 단서로 내가 주목한 것은
개혁의 화신 정암
흔히 퇴계와 조광조의 스타일의 차이를 문제 삼아 대조적인 관계로 보지만
퇴계의 사상과 실천은 19세 때 목격한 조광조의 실패에 대한 반성적 성찰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본다.
퇴계는
퇴계는 평생에 걸쳐 조광조의 실패를 반추하면서 성공적인 변혁의 길을 모색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물러나서 이루는’ 역발상의 근본적 노선이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철학적 작업과 교육 사업, 그리고 지방의 역량 강화 바로 이 3대 전략으로 나타났다.
퇴계는 자신의 기획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다.
향촌으로 은퇴하여 학문과 교육활동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던 56세 때 남긴 한 미스터리한 글이
그의 포부를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1)
“후세에 반드시 내 마음을 알아 줄 이 있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에게 내가 입을 열어 뜻을 밝혀 보았자 아무 이익 될 것이 없다.”
(後世必有知吾心者 若於今人卽 開口發明 無益)
비판자들은 중년 이후 퇴계의 무수한 사퇴 행위를 예로 들며 그의 현실도피적 소극성을 지적하지만,
그것은 정치 중심, 제도권 중심, 서울 중심의 생각이다.
퇴계의 은퇴는 서울과 중앙 정치 무대에서의 물러남이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새로운 나아감이었다.
퇴계는 물러나서 무엇을 했는가.
43세 때 접한 『주자대전』을 철저히 연구하여 주자학을 난세를 극복할 사상적 지침이자 학문적 무기로 조련하였으며,
당대에서의 한계를 직시하고 젊은이들을 교육함으로써 미래를 기획했고,
서원건립운동과 향약운동 등을 통해 변혁의 터전으로서 지방 문화의 진작에 힘을 기울였다.
실천 지향의 퇴계의 전략은 철학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그는 왜 하필 ‘사단’과 ‘칠정’이라는 인간 내면의 문제를 해명하는 데 『주자대전』연구를 통해 쌓은 내공을 총동원하다시피 하여 그토록 오랜 기간 씨름하였는가.
그는 시대문제의 본질이 ‘인간’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시대의 몰락도 인간에게, 빛과 희망도 인간에게 있다.
그는 인간을 뿌리에서부터 파악하고자 했다.
우주-자연-인간을 아우르는 주자학의 거대담론을 ‘실천적 인간학’의 패러다임으로 재구성하였다.
『성학십도』는 그 결정판이었다.
이러한 퇴계에게서 나는 혁명가의 모습을 읽는다.
혁명이란 문제를 근본에서 파고드는 것.
혁명 하면 생각나는 사람 서양의 모(某)씨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론은 사람에게서 입증될 때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다. 이론은 급진적이어야 그 타당성이 사람에게서 입증된다. 급진적이라는 것은 문제를 뿌리에서부터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게 뿌리는 바로 사람 자신이다.”
그리고 실제로 퇴계는 16세기의 변화를 이끌어낸 혁명의 주역이었다.
‘훈구에서 사림으로’의 전환을 무혈혁명이라고 주장하는 유력설..2) 에 의한다면.
시대의 문제를 근본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퇴계를 혁명가로 볼 때,
그가 추구하는 혁명은 인간혁명이다.
그것은 정신문화적 혁명이요, 인문혁명이며, 주체의 혁명이다.
시대를 구원하는 것은 법과 제도가 아니라 법과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인간이다.
경제가 아닌 정신문화, 실용보다 인문, 대상에 대한 지식이 아닌 주체의 ‘마음’이다.
그 마음은 우주적 질서(理)를 담은 마음이다.
퇴계혁명은 인간의 ‘마음’으로부터의 혁명이요, 따라서 그것은 곧 우주적 행위이기도 하다.
퇴계의 혁명론은 ‘성학’(聖學)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평생에 걸쳐 이룩한 학문적 성과를 열 가지 그림으로 집약하여 임금에게 올린
퇴계 최후의 저작 『성학십도』를 필자는 ‘혁명의 서(書)’라고 부른다.
혁명의 꿈이 사라진 시대, 그러나 사실은 혁명이 그리운 시대, 바야흐로 시대가 퇴계를 부른다.
‘자유’의 이름 아래 사(私)가 공(公)을 지배하고 능멸하는 시대,
정치도 관직도 언론도 교육도 심지어 법조까지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인간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시대,
철학과 사상은 죽어 있는 시대,
리기론(理氣論)으로 말하면 자본과 욕망과 사익의 ‘기’(氣)는 발호하는데 인의예지의 ‘리’(理)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시대,
퇴계는 이러한 시대 혁명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다.
‘리발’(理發)과 ‘사단’(四端), 그리고 ‘경’(敬)을 강조했던 퇴계 사상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보아야 할 시점이다.
내가 이 책의 제목을 ‘퇴계혁명’이라고 한 것은
머리말에서 밝힌 것처럼 이 시대에 퇴계를 새롭게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혁명적이라는 뜻도 있지만
이처럼 퇴계의 사상이 곧 혁명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각주>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