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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순종하는 ‘찌질이’로 살지 않겠다”
똘돌이
2008. 12. 4. 18:37
"우리는 순종하는 ‘찌질이’로 살지 않겠다”
시사IN | 기사입력 2008.12.04 09:50
10대의 눈에는 어른이 우습다. 학교에서는 서로의 의견을 말하며 논의하는 것을 토론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어른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토론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논의'는 하지 않고 자기 얘기만 한다. 화나면 인신공격도 한다. 양지모군(19)은 MBC < 100분 토론 > 에 나온 주성영 의원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기 블로그에 '토론의 기본도 안 된 사람'이라고 적었다. 글은 블라인드 처리됐다. 포털에 문의하니 주 의원 측 요청이란다.
10대는 세상이 우울하다. 어른이 시키는 대로 공부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 공부 잘해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일한다던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는 금융위기를 맞아 뉴욕의 방세를 감당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렸다고 한다. 사법고시 패스했다던 다른 '엄친아'는 알고보니 화이트칼라 범죄자였다.
어차피 공부만 하며 '모범생 찌질이'로 살아도 별 수 없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 대체 왜 돈을 많이 벌어야만 하는지 모르겠단다. 10대는 이렇게 살기 싫다. 10대는 세상에 무작정 순응하지 않는다.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배치한다.
2008년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10대는 그 이전 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10대의 웅성거림을 '철부지 어린애'로 무시하던 사회가 '촛불'을 통해 10대의 영민함에 귀를 기울였다. 10대도 사회를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 시사IN > 이 수능을 막 마친 고3 학생들을 만났다. 대학이라는 큰 장벽 앞에 선 이들이 다시 '말 잘 듣는 모범생'으로 돌아선 것은 아닐까 궁금해서다.
-편집자 주
김희빈군(19)은 언제까지 학교에 나갈지 고민이다. 수능도 끝났는데 교실에서 4교시까지 시간만 '때우다' 오는 생활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김군은 적당한 아르바이트감을 찾으면 아예 등교하지 않겠다고 한다. '개근상'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다. 졸업장을 받기에 필요한 수업 일수는 이미 다 채웠다.
지난 10월 치른 일제고사에서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3학년 학생 수십 명이 답안을 백지로 제출했다. 일부는 특정 번호만으로 채운 무성의한 답안을 냈다. 이날 일제고사에 응시하지 않은 학생도 전국에서 149명이다. 이들이 강하게 시험을 거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보력'이 있었다. 일제고사는 정규 시험이 아니므로 결과가 내신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10대는 모든 것을 안다. '좋은 대학만 가면 삶이 바뀐다'는 어른 말에 속아 묵묵히 공부만 하던 과거 10대와 다르다. 대학에 가면 '스펙'(학점·토익 점수·자격증 따위)을 쌓기 위해 공부해야 하고, 그래도 취직하기 어렵고, 어렵게 취직해도 비정규직이거나 정규직이어도 언제 회사가 망할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안다. 그래서 10대는 우울하다.
청년실업 문제가 불거진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통기타 치고 술을 마시다 학점만 겨우 채워 졸업해도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던 '캠퍼스의 낭만'은 사라졌다. 캠퍼스에는 '공시족(공무원시험 준비족)' '프리터족(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젊은층)' '모라토리엄족 (스펙을 쌓기 위해 졸업을 미루는 대학생)' 같은 우울한 신조어가 등장했다. 2000년 이후 대학에 입학한 세대도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와 현재 대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는 김 아무개씨(25)는 "대학에 가는 게 기본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혼자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두려웠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사회에 '적응'했다.
10대 "어른도 별거 없다"
그러나 요즘 10대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제고사 거부 기자회견을 한 따이루군(15·예명)은 "일제고사가 실시되면 모든 성적이 공개돼 학생들을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으로만 구분하게 될 것이다. 경쟁과 비교로만 학생을 교육하겠다는 것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일제고사를 보던 날 학교에 가지 않았다.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행동으로 '거부'한 것이다.
용감한 10대의 출현은 어른의 권위가 사라짐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학생이니 학교 가서 공부나 해라'는 말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어른만 아는' 세계는 사라졌고, 어른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도 이제는 쉽게 알 수 있다. 인터넷만 있으면 10대도 어른과 똑같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정보를 다루는 실력도 어른 못지않다. 이은수양(17)은 지난 5월 중국 펀드에 넣어두었던 돈을 모두 뺐다.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가 나빠질 것 같아서다. 이양이 빨리 손쓸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 관한 정보를 다양하게 모아두었기 때문이다. 이양은 영어에도 능통해 외국 사이트를 둘러보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다.
금융위기는 10대를 보수화시킨다?
10대의 고민은 어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경제가 어려운데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가 그들의 걱정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젊은 세대가 보수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어 생존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물질의 가치가 높아진다. 여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험을 하기보다 기성세대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교육대학과 의과대학처럼 취업이 잘 되는 학과가 인기를 얻고 공무원 시험에 사람들이 쏠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다양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밖에 없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에 닥친 금융위기는 10대의 메인스트림이 다변화하는 과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좀 다르다. 10대에게 자본주의의 허상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조한혜정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찌질한 모범생으로 살아봐야 별수 없다는 것을 10대가 봤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월가로 간 금융 엘리트가 대표적인 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액과외를 받으며 최상위권 성적을 내고 명문대를 나와 해외 MBA(경영학 석사)를 수료해 세계 금융의 중심이라는 월가에 자리 잡은 젊은이들. 성공적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던 이들이 뉴욕의 방세를 감당할 수 없는 실업자 신세로 전락한 것은 한순간이었다. 이를 본 10대는 왜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공부만 해야 하는지 타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이로 인해 무기력한 10대가 늘고 있다. 전상진 교수는 이를 '신자유주의 아래의 무기력증'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단순히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자연적 무기력증과 다르다. 의무 속 무기력증이다. 사회의 목표에 맞춘 삶을 사는 것이 힘들어 포기하는 것이다.
청소년 직업체험 공간인 '하자센터'에는 '경쟁을 관둔' 10대들이 있다. 학교와 학원을 돌며 일류대에 진학하고 돈을 많이 버는 '주류 계층'으로 진입하는 경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은수양(17)은 일반 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하자센터에 온 이유를 "사회가 정해놓은 과정과 기준에 맞춰 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라고 설명했다. 이양은 하자센터를 나가면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졸업장'을 얻기보다는 지금 배우고 있는 영상을 더 잘하기 위해서다.
눈앞에 놓인 현실만 비교해볼 때 지금의 10대보다 더 우울한 건 20대다. 일단 대학이라는 큰 장애물은 넘었으나 취업이라는 더 큰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일류대' 학생끼리 벌이는 '대기업' 취업전쟁은 대학에 들어가기보다 훨씬 어렵고 치열하다. 그러나 이미 경쟁에 뛰어든 20대는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전상진 교수는 "촛불집회에 20대 참여가 저조했던 것은 주류사회로 들어가기 위한 경쟁 속에서 이미 보수화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말 안 듣는 10대'의 성공시대
2008년은 유독 사회가 10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해다. 10대가 거리로 몰려나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칠 때 사회는 이 목소리를 귀담아들었다.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소녀는 촛불집회의 마스코트가 됐다. 일제고사를 보지 않은 학생에게는 아무런 불이익도 생기지 않았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지금 10대는 '성공'을 경험한 세대다"라고 말했다. 주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성공한 선배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든든한 힘이 된다. 올해 10대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두발 자유화' 같은 작은 운동을 해봤기에 가능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경쟁을 관둔 하자센터 아이들이 불안해하지 않는 이유는 같은 길을 가서 잘 사는 선배를 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모든 10대가 체제에 반항하는 기질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보면 절대 다수 학생이 묵묵히 일제고사에 응시했다. 촛불집회에 나간 10대보다 학원에 간 10대가 더 많다. 그러나 행동하는 10대가 나타났다는 것은 기성세대와 분명히 다른 점이다. 전상진 교수는 "현 10대를 과거 386세대, X세대 처럼 하나의 세대로 묶을 수는 없다. 점점 분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분화된 10대는 다양한 가치관을 갖는다. 문화비평가가 되고 싶다는 양지모군(19)은 굳이 일류대를 고집하지 않는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를 만났다. 판사나 검사가 되고 싶다면 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에 가야 하지만 글쓰는 사람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때부터 대학 외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수능이 끝나고 그는 진보신당 88만원세대위원회가 개최한 '젊은진보 아카데미'에 다닌다.
삶의 목표가 '일류대'로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10대는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 다음 세대가 소모적 '경쟁'이 아닌 건강한 '공생'관계로 발전하리라 기대해볼 수 있다. 촛불집회에서 한목소리를 낸 것도 모든 10대가 눈앞의 성적에만 급급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일제고사에서 단체로 백지 답안을 낸 학생들이 '강남'의 한 중학교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성적 경쟁에서 유리한 환경에 있는 10대가 이 경쟁을 거부한 것이다. 이는 경쟁을 통해 획일적인 가치관을 심어주는 교육방식에 10대가 반기를 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분화한 10대, 경쟁보다 공생으로
변화하는 10대를 따라가기에 한국 사회는 너무 느리다. 10대 문제를 어른의 눈높이에서 보기 때문이다. 우석훈 박사는 "언론에 등장하는 청소년에 관한 기사도 학부모를 위한 내용이다"라고 지적했다. 청소년에 관한 정책을 담당할 정부 부처가 모호한 것도 문제다. 국가청소년위원회는 여성가족복지부에 흡수됐다. 10대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교육 문제는 교육인적자원부가 담당한다. 두 부서 간 영역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전상진 교수는 "대상이 아닌 업무를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다보니 대상(10대)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한 대로 우리는 혼란으로 가득한 '위험 사회'에 산다. 지금 사회가 10대에게 제시할 수 있는 '인생의 모범답안'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적 의미의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경쟁하는 10대와 자기의 가치관에 따라 '모험'을 즐기는 10대 중 어느 부류가 많아질까. 사회에 순응하는 10대와 뛰어넘는 10대. 어느 쪽이 주류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박근영 기자 / young@sisain.co.kr
↑ 10대가 거리로 나왔다. 일제고사 거부 기자회견을 열고(왼쪽),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했다(오른쪽). 사회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뉴시스 똑똑하고 발랄한 요즘 10대. 무조건 어른 말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안다.
어차피 공부만 하며 '모범생 찌질이'로 살아도 별 수 없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 대체 왜 돈을 많이 벌어야만 하는지 모르겠단다. 10대는 이렇게 살기 싫다. 10대는 세상에 무작정 순응하지 않는다.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배치한다.
2008년에 중·고등학교를 다닌 10대는 그 이전 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10대의 웅성거림을 '철부지 어린애'로 무시하던 사회가 '촛불'을 통해 10대의 영민함에 귀를 기울였다. 10대도 사회를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 시사IN > 이 수능을 막 마친 고3 학생들을 만났다. 대학이라는 큰 장벽 앞에 선 이들이 다시 '말 잘 듣는 모범생'으로 돌아선 것은 아닐까 궁금해서다.
-편집자 주
김희빈군(19)은 언제까지 학교에 나갈지 고민이다. 수능도 끝났는데 교실에서 4교시까지 시간만 '때우다' 오는 생활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김군은 적당한 아르바이트감을 찾으면 아예 등교하지 않겠다고 한다. '개근상' 따위는 없어도 그만이다. 졸업장을 받기에 필요한 수업 일수는 이미 다 채웠다.
지난 10월 치른 일제고사에서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3학년 학생 수십 명이 답안을 백지로 제출했다. 일부는 특정 번호만으로 채운 무성의한 답안을 냈다. 이날 일제고사에 응시하지 않은 학생도 전국에서 149명이다. 이들이 강하게 시험을 거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보력'이 있었다. 일제고사는 정규 시험이 아니므로 결과가 내신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10대는 모든 것을 안다. '좋은 대학만 가면 삶이 바뀐다'는 어른 말에 속아 묵묵히 공부만 하던 과거 10대와 다르다. 대학에 가면 '스펙'(학점·토익 점수·자격증 따위)을 쌓기 위해 공부해야 하고, 그래도 취직하기 어렵고, 어렵게 취직해도 비정규직이거나 정규직이어도 언제 회사가 망할지 모르는 상태로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안다. 그래서 10대는 우울하다.
청년실업 문제가 불거진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통기타 치고 술을 마시다 학점만 겨우 채워 졸업해도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던 '캠퍼스의 낭만'은 사라졌다. 캠퍼스에는 '공시족(공무원시험 준비족)' '프리터족(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젊은층)' '모라토리엄족 (스펙을 쌓기 위해 졸업을 미루는 대학생)' 같은 우울한 신조어가 등장했다. 2000년 이후 대학에 입학한 세대도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와 현재 대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는 김 아무개씨(25)는 "대학에 가는 게 기본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혼자 다른 길을 가는 것이 두려웠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사회에 '적응'했다.
10대 "어른도 별거 없다"
그러나 요즘 10대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제고사 거부 기자회견을 한 따이루군(15·예명)은 "일제고사가 실시되면 모든 성적이 공개돼 학생들을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으로만 구분하게 될 것이다. 경쟁과 비교로만 학생을 교육하겠다는 것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일제고사를 보던 날 학교에 가지 않았다.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행동으로 '거부'한 것이다.
용감한 10대의 출현은 어른의 권위가 사라짐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학생이니 학교 가서 공부나 해라'는 말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어른만 아는' 세계는 사라졌고, 어른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도 이제는 쉽게 알 수 있다. 인터넷만 있으면 10대도 어른과 똑같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정보를 다루는 실력도 어른 못지않다. 이은수양(17)은 지난 5월 중국 펀드에 넣어두었던 돈을 모두 뺐다.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가 나빠질 것 같아서다. 이양이 빨리 손쓸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 관한 정보를 다양하게 모아두었기 때문이다. 이양은 영어에도 능통해 외국 사이트를 둘러보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다.
금융위기는 10대를 보수화시킨다?
10대의 고민은 어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경제가 어려운데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가 그들의 걱정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젊은 세대가 보수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어 생존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물질의 가치가 높아진다. 여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험을 하기보다 기성세대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교육대학과 의과대학처럼 취업이 잘 되는 학과가 인기를 얻고 공무원 시험에 사람들이 쏠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다양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밖에 없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에 닥친 금융위기는 10대의 메인스트림이 다변화하는 과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좀 다르다. 10대에게 자본주의의 허상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조한혜정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찌질한 모범생으로 살아봐야 별수 없다는 것을 10대가 봤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월가로 간 금융 엘리트가 대표적인 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액과외를 받으며 최상위권 성적을 내고 명문대를 나와 해외 MBA(경영학 석사)를 수료해 세계 금융의 중심이라는 월가에 자리 잡은 젊은이들. 성공적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던 이들이 뉴욕의 방세를 감당할 수 없는 실업자 신세로 전락한 것은 한순간이었다. 이를 본 10대는 왜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공부만 해야 하는지 타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이로 인해 무기력한 10대가 늘고 있다. 전상진 교수는 이를 '신자유주의 아래의 무기력증'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단순히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자연적 무기력증과 다르다. 의무 속 무기력증이다. 사회의 목표에 맞춘 삶을 사는 것이 힘들어 포기하는 것이다.
청소년 직업체험 공간인 '하자센터'에는 '경쟁을 관둔' 10대들이 있다. 학교와 학원을 돌며 일류대에 진학하고 돈을 많이 버는 '주류 계층'으로 진입하는 경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은수양(17)은 일반 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하자센터에 온 이유를 "사회가 정해놓은 과정과 기준에 맞춰 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라고 설명했다. 이양은 하자센터를 나가면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졸업장'을 얻기보다는 지금 배우고 있는 영상을 더 잘하기 위해서다.
눈앞에 놓인 현실만 비교해볼 때 지금의 10대보다 더 우울한 건 20대다. 일단 대학이라는 큰 장애물은 넘었으나 취업이라는 더 큰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일류대' 학생끼리 벌이는 '대기업' 취업전쟁은 대학에 들어가기보다 훨씬 어렵고 치열하다. 그러나 이미 경쟁에 뛰어든 20대는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전상진 교수는 "촛불집회에 20대 참여가 저조했던 것은 주류사회로 들어가기 위한 경쟁 속에서 이미 보수화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말 안 듣는 10대'의 성공시대
2008년은 유독 사회가 10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해다. 10대가 거리로 몰려나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칠 때 사회는 이 목소리를 귀담아들었다.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소녀는 촛불집회의 마스코트가 됐다. 일제고사를 보지 않은 학생에게는 아무런 불이익도 생기지 않았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지금 10대는 '성공'을 경험한 세대다"라고 말했다. 주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성공한 선배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든든한 힘이 된다. 올해 10대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두발 자유화' 같은 작은 운동을 해봤기에 가능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경쟁을 관둔 하자센터 아이들이 불안해하지 않는 이유는 같은 길을 가서 잘 사는 선배를 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모든 10대가 체제에 반항하는 기질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보면 절대 다수 학생이 묵묵히 일제고사에 응시했다. 촛불집회에 나간 10대보다 학원에 간 10대가 더 많다. 그러나 행동하는 10대가 나타났다는 것은 기성세대와 분명히 다른 점이다. 전상진 교수는 "현 10대를 과거 386세대, X세대 처럼 하나의 세대로 묶을 수는 없다. 점점 분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분화된 10대는 다양한 가치관을 갖는다. 문화비평가가 되고 싶다는 양지모군(19)은 굳이 일류대를 고집하지 않는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를 만났다. 판사나 검사가 되고 싶다면 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에 가야 하지만 글쓰는 사람은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때부터 대학 외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수능이 끝나고 그는 진보신당 88만원세대위원회가 개최한 '젊은진보 아카데미'에 다닌다.
삶의 목표가 '일류대'로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10대는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 다음 세대가 소모적 '경쟁'이 아닌 건강한 '공생'관계로 발전하리라 기대해볼 수 있다. 촛불집회에서 한목소리를 낸 것도 모든 10대가 눈앞의 성적에만 급급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일제고사에서 단체로 백지 답안을 낸 학생들이 '강남'의 한 중학교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성적 경쟁에서 유리한 환경에 있는 10대가 이 경쟁을 거부한 것이다. 이는 경쟁을 통해 획일적인 가치관을 심어주는 교육방식에 10대가 반기를 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분화한 10대, 경쟁보다 공생으로
변화하는 10대를 따라가기에 한국 사회는 너무 느리다. 10대 문제를 어른의 눈높이에서 보기 때문이다. 우석훈 박사는 "언론에 등장하는 청소년에 관한 기사도 학부모를 위한 내용이다"라고 지적했다. 청소년에 관한 정책을 담당할 정부 부처가 모호한 것도 문제다. 국가청소년위원회는 여성가족복지부에 흡수됐다. 10대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교육 문제는 교육인적자원부가 담당한다. 두 부서 간 영역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전상진 교수는 "대상이 아닌 업무를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다보니 대상(10대)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한 대로 우리는 혼란으로 가득한 '위험 사회'에 산다. 지금 사회가 10대에게 제시할 수 있는 '인생의 모범답안'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적 의미의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경쟁하는 10대와 자기의 가치관에 따라 '모험'을 즐기는 10대 중 어느 부류가 많아질까. 사회에 순응하는 10대와 뛰어넘는 10대. 어느 쪽이 주류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박근영 기자 / young@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