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정치

정수장학회...

똘돌이 2012. 10. 22. 14:24

 

③“저는 정수장학재단이 ‘장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백만 교장의 노무현 이야기] 정수장학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法遠拳近).’

조폭세계의 언어다. 야만의 시대, 독재권력의 지배논리다. 무자비한 폭력(고문) 앞에 장사 없다. 몸뚱이 밖에 없는 사람은 몸으로 때워야 하고, 재산이 많은 사람은 재산을 내놓아야 한다. 일단 살아남기 위해서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랬던 1962년 4월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중앙정보부는 부산의 대표적인 기업인 김지태 회장을 재산해외도피혐의로 전격 구속했다. 죄목은 ‘괘씸죄’였다.  

 

김지태는 군사정권에 협조적이지 않았다. 군법회의에서 징역 7년을 구형받았다. 중앙정보부는 감옥에 있는 김지태에게 재산을 포기하라고 끈질기게 협박했다. 김지태는 견디다 못해 6월 기부승락서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덕분에 이틀 후 감옥에서 풀려났다. 김지태가 그 때 포기한 재산이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등 언론기관의 주식과 ‘부일장학회’다. 부일장악회는 당시 한국 최대의 장학재단이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김지태에게서 강탈한 재산으로 ‘5.16장학회’를 만들었다. 박정희의 후계자인 전두환은 5.16장학회를 개편하여 ‘정수장학회’로 변경했다. 정수(正修)는 박정희의 ‘정(正)’과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의 ‘수(修)’다. 국가폭력으로 남의 재산을 강탈하여 선행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참여정부가 과거사정리 차원에서 정수장학회를 공식 조사했다. 2005년 국가정보원(중앙정보부 후신)의 과거사위원회는 5.16장학회는 김지태 재산을 중앙정보부가 강제로 헌납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2007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국가가 공권력의 강요로 발생한 재산권 침해에 대해 사과하고 명예회복 및 화해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정수장학회가 ‘장물’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장물이 무엇인가. 도둑놈이 훔친 물건이다. 원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게 정상이다. 그게 정의다. 그러나 장물아비인 정수장학회가 한사코 그 장물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게 지금의 현실이다.

 

김지태의 유족이 장물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는 2012년 2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강압으로 재산이 넘어간 사실은 인정했지만 시효가 지나 반환청구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50년 전의 일이니 그냥 넘어가자는 논리다. 실정법 상 그렇다는 것이다.

   

도둑질은 가장 추악한 범죄다. 인류가 생긴 이래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고조선 8조법에도, 구약성경 10계명에도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는 조항이 있다. 부처님도 공자님도 절대로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현대의 특허법 지적재산권보호법 등도 ‘남의 물건 도둑질 하지 말라’는 차원의 제도다.  

도둑놈에 대한 처벌도 엄하다. 고조선 8조법은 ‘도둑질을 한 자는 데려다 종으로 삼는다.’라고 되어 있다. 장물을 보관해 주거나, 사주거나, 그것을 유통(관리)하여 이득을 본 사람에 대한 처벌도 도둑놈 못지않게 강하다. 왜 그런가? 도둑질을 막지 못하면 공동체의 근본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도둑질을 한 데 대한 죄의식은 평생 간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은 모두 그렇다. 이것은 법적인 시효와 관계없다. 도덕적인 죄의식이다. 실정법이 시효를 정해 놓은 것은 법의 안정성을 위한 편의적인 제도이지만, 도덕적 죄의식에는 시효가 없다.  

과거 도둑질한 것에 죄의식 때문에 평생 동안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가 나중에 스스로 ‘죄값’을 치르는 보통사람들의 미담이 종종 매스컴에 등장, 준법정신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고 있다.  

 

강원 삼척시 정라동 권중석(66)씨는 베트남전쟁 참전 때 동료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는 동안 ‘꾀병’을 부리면서 받았던 전투수당을 평생의 빚으로 여기고, 40여년 만에 그 100배의 금액을 되갚았다. 올해 6월의 일이다. 그는 탄피밀반출로 검은 돈을 벌기도 했다. 그것도 국고를 축낸 도둑질이다. 권씨는 인하대병원에서 백혈병으로 투병하고 있는 베트남 출신 탄 따이(24)의 치료비로 1000만원을 쾌척했다. 권씨가 치료비를 지원하게 된 이유는 44년 전 베트남 전쟁터에서 진 마음의 빚 때문이었다. 1968년 맹호부대 운전병으로 베트남에 파병됐던 권씨는 열대의 더운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꾀병’을 부려 병상에 누운 채 전투수당 8만4800원을 받았다. 당시 많은 전우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고 부상을 당하는 가운데 혼자 손쉬운 방법으로 전투수당을 받았던 일이 평생 동안 권씨를 괴롭혔다.  

 

50대 이상의 나이 많은 일부 남자들에게는 ‘도둑기차’에 대한 찜찜한 추억이 있다. 돈이 없어 기차를 몰래 공짜로 타고 여행을 한 것이다. 이런 무임승차 또한 국가의 재산(국고)을 축낸 도둑질이다. 도둑기차에 대한 죄값을 스스로 치르는 미담도 종종 있다.

2011년 8월 일군의 예비역 장교들이 코레일(철도청)을 찾았다. 45년 전 도둑기차를 탄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김무일(전 현대제철 부회장)씨 등은 1966년 8월 해병학교시절 단체로 ‘도둑기차’를 탄 적이 있다. 역무원에게 야간비상훈련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서~. 평생 마음에 걸렸다. 45년만에 코레일 찾아 돈도 갚고 마음의 빚도 갚았다.  

 

정수장학회, 해법은 무엇인가. 권중석씨와 김무일씨가 잘 가르쳐 주고 있다. 도덕적 죄의식에는 시효가 없다. 지금이라도 원상 복귀시켜야 한다.   

 

‘어린 왕자’ ‘이방인’ ‘시지프스 신화’ 등의 작가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의 지성 알베르 까뮈. 세계2차대전 때 나치에 항거한 프랑스 레지스탕스 영웅 가운데 한 명이다. 프랑스는 전쟁이 끝난 후 나치 부역자를 예외없이 처단했다. 역사청산이었다. 까뮈가 그 때 말했다. “과거의 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를 부추기는 것이다.”  

 

김지태의 재산을 빼앗은 박정희정권은 사라지고 없다. 처벌대상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장물은 되돌려 줘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일장학회와의 인연이 깊다. 어릴 적에 공부를 아주 잘하여 ‘노천재’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가난한 집안의 노무현은 진영중학교 2학년 때 부일장학생 시험에 합격했다. 전국의 가난한 천재들이 응시한 시험이어서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학교로 봐서도 큰 경사였다. 이것은 나중에 부산상고에 진학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부산상고는 부일장학회를 설립한 김지태의 모교이다.

 

노 대통령은 정치를 하기 시작하면서 정수장학회의 불법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원주인(김지태 유족)에게 돌려주거나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정의 아닌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백방으로 방법을 찾아 보았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절차가 없었다. “불법적으로 빼앗간 것, 합법적으로 회수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성공과 좌절’ 회고록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 놓았다. “저는 그 장학재단이 ‘장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돌려주어야 우리 사회의 정의가 실현되고 역사가 바로 잡힌다고 생각하면서 정치를 해왔습니다.”*  

자서선 ‘운명이다’에도 적어 놓았다. “군사정권은 남의 재산을 강탈할 권한을 마구 휘둘렀는데, 민주정부는 그 장물을 되돌려 줄 권한이 없었다. 과거사 정리가 제대로 안 된 채 권력만 민주화되어 힘이 빠진 것이다. 부당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한테 더 좋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억울하지만 이것이 우리 역사의 한계일 것이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국가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열심히 뛰어 다니고 있다. 박후보는 정수장학회 이사장(1995~2005년)으로 재직하면서 11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그에게 묻고 싶다.

국민들에게 “도둑질하지 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장물은 받지도 말고 취급하지도 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성공과 좌절, 노무현 회고록, 124쪽

** 운명이다, 노무현 자서선, 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