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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받은 공주 ... 권인숙 (명지대교수)

똘돌이 2012. 9. 13. 10:09

 

최초의 여자 대통령 후보 박근혜를 보면서,

여성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흥분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독재자의 딸이어서만은 아니다.

1975년부터 79년까지 ‘구국 여성봉사단’(이름은 여러 차례 바뀜)의 총재를 하며 백만이 넘는 여성을 조직하고,

조선시대식의 충효를 외치고 다니며 선봉에서 사실상 ‘박씨 왕조’의 건설을 노렸기 때문도 아니다.

사퇴당한 영남대 이사장, 논란의 육영재단 이사장, 장물이라고 하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했던 것은

대통령의 딸이어서 그렇다며 어느 정도 받아줄 수도 있다.

 

문제는 그가 쓴 수많은 책, 인터뷰 또는 발언에서 자신의 경험과 행적을 평가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행보를 결정할 때 왜 그렇게 하는지를 꼭 설명한다.

그게 최소한의 논리성이고 책임감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신이 주도하여 좌절시킨 노무현 시대의 사학법 개정조차도 왜 반대했는지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다.

70년대 말 장기 집권을 위해 전국의 수많은 여고생과 농촌 여성들을 체육관 집회 등에 무수히 동원하고,

왕조의 윤리인 충효를 요구하면서 왜 그래야 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반성하거나 이해를 구하는 모습도 전혀 없다.

 

설명이 없다는 것은 그럴 필요를 못 느끼거나 능력이 없어서일 수 있다.

전자는 모든 역사적 행보를 자기 위주로 당연시 또는 필연시하면서 국가와 자신을 분리해 사고하지 못하고

거기에 종교적 의미까지 덧붙인-최태민 목사가 이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탁받은 공주’ 정도의 정체성일 때 가능하다.

설명할 능력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인혁당 사건을 평가하면서 1964년의 제1차 인혁당 사건과 74년도 제2차 인혁당 사건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은

결국 인식능력의 문제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박근혜 특유의 짧은 말투는 설명하고 싶지 않은 공주의 정체성과 설명을 할 수 없는 능력의 한계를 둘 다 보여준다.

 

그의 기이한 도덕성도 그렇다.

그는 가까운 사람에게 도덕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동생이나 올케의 의혹에 대해서도 박근혜는 묵묵부답이다.

동생들이 당시 대통령 노태우에게 탄원서를 보내 둘의 관계를 떼어달라고 호소할 정도로 가까웠던

최태민의 수많은 비리 의혹에도 그는 모르쇠다.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서전을 보면, 98년 달성에 입후보했을 때의 일화가 나온다.

“하루는 나를 돕던 의원 한 분이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선거자금이 얼마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나의 답변은 간단했다. ‘없습니다.’”

박근혜의 재테크 방식이나 소비행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영남대와 육영재단 이사장을 거쳐 2005년까지 10여년 동안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하면서

그는 해마다 1억원 이상의 급여를 수령했다.

그에 앞서 79년 청와대를 나올 때 전두환이 현금 6억원을 주었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그런 그에게 선거자금이 한 푼 없었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박근혜는 선거의 여왕이다.

일생을 대중 앞에 서도록 훈련받은 그는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잘 안다.

선거를 위해서라면 전태일재단을 찾아가고 이자스민도 과감하게 영입한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은 신탁받은 공주다.

애초부터 여성 대중의 삶은 국가의 도구 또는 자신의 집권 수단 이상으로 사고하기 힘든 사람이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에 흥분은 고사하고 숨이 막혀오는 이유다.

 

권인숙 명지대 교수·여성학

 

출처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13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