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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나간 우리 사회 각계각층 여러분… ... 양정철

똘돌이 2011. 4. 19. 09:13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저마다의 아름다운 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쓰는 언어 가운데 ‘정신’이란 단어만큼 좋은 뜻을 가진 것도 드뭅니다.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신체로부터 시작한다!” “맑은 정신” “봉사 정신” “절약 정신” “열사들의 정신” “민주주의 정신”…. 대개 좋은 뜻입니다.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 마음의 자세나 태도, 사물의 근본적인 의의나 목적을 지칭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최근 알려진 몇 가지 행태에서 우린 그런 ‘정신’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1. 노동 정신의 실종

민주노총 최대 사업장 가운데 하나인 현대자동차노조가 장기근속자 자녀에게 가산점을 줘 우선 뽑도록 회사 쪽에 요구하는 단체협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보도한 <한겨레신문>은 기회의 형평성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사실상 ‘정규직 세습’이나 마찬가지이고, 대기업노조의 이기주의가 너무 심하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맞는 지적입니다. 급여 많이 올리고 근로조건 개선시키는 것만이 노조 정신은 아닙니다. 노조 정신 위엔 노동 정신이 있습니다. 노동자 전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하는 데에서, 노조는 탐욕스런 기업주에 비해 도덕적 우위를 갖게 됩니다. 한국의 상당수 대기업 노조는 점차 이기주의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이나 하청업체에 전가될 고통은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곳에 노동 정신은 없습니다.

2. 군인 정신의 실종

해병대 사령부는 이번 주 신병훈련을 마치는 탤런트 현빈을 모병홍보병이 아닌 보병전투병으로 백령도 6여단에 배치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합니다. 해병대는 이 같은 결정이, “현빈이 일반 전투병으로 평범하게 근무하기를 원하는 국민들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가 어디 배치되든 별 관심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짓말은 군인 정신이 아닙니다. 당초 해병대는 현빈을 경기도 화성의 해병대 사령부에서 모병 홍보병으로 배치하고 부대 홍보행사 참석과 백령도 부대 등에서의 훈련을 병행하도록 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었습니다. 그걸 갖고 여론이 크게 들끓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다 국방부 장관이 한 마디 하자 부랴부랴 보직을 바꿨습니다. 이미 다 알려진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날림행정이요, 얼치기 인사의 전형입니다.

큰 취지엔 공감합니다만, 그렇다면 연예인 병사 운영계획 전반을 손보기 바랍니다. 현재 대부분 입대 연예인은 국방홍보원 소속 연예병사로 활동합니다. 그 부대도 이참에 없애는 게 맞습니다. 연예인 인기에 힘입어 단기적 이벤트나 홍보에 넋이 나가 오락가락하는 군 지휘관들에게서 군인 정신을 찾아보긴 힘듭니다.

3. 개방 정신의 실종

경찰이 지난 15일 서울 인왕산을 오르려던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을 가로막고 내려가도록 강요했다고 합니다. 그 여파 때문인지 경찰은 주말인 16일에도 인왕산의 주요 등산로 입구를 막고,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검문검색을 벌여 반발을 샀다고 합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경찰은 인왕산이 청와대와 가까이 있어 예비적으로 취한 조치라고 설명했다고 전했습니다.

청와대 뒷산을 개방한 건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경찰이 이렇게 하라고 개방한 게 아닙니다. 대통령 전유물인 청와대 뒷산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자고 해서 개방한 겁니다. 해고 노동자도 시민입니다. 시위 목적이면 이해하겠습니다만, 그저 해고노동자라는 이유로만 진입조차 제지한 것은 개방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그 산 정상 부분엔 총알구멍 자국이 선명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일명 ‘김신조 소나무’입니다. 아주 옛날 북한이 무장간첩을 보냈을 때 생긴 치열한 교전의 흔적입니다. 그러고도 끄떡없는 대한민국입니다. 해고 노동자들을 북한 무장공비들이 갔던 만큼도 못 올라가게 벌벌 떨며 막아야 할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4. 연대 정신의 실종

이번 전남 순천 재보궐 선거에서 범야권은 민노당 후보로 단일화를 이뤘습니다. 그 합의엔 물론 민주당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당 지도부가 지원유세를 도와주지 않아서 비판여론이 많습니다. 뛰지 않을 뿐 아니라 일부 당 지도급 인사들이 비공식으로 무소속 조순용 후보에게 격려방문을 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박지원 원내대표에 이어 이강래 전 원내대표도 국민의 정부 청와대에서 같이 근무했던 인연으로 조 후보 사무소를 격려 방문한 겁니다.

단일화에 합의했으면 그 후보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연대의 정신입니다. 자기 당이 밀기로 한 후보를 정해 놓고 다른 후보에게 기웃거리는 모습은,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노무현 후보를 버리고 밖에서 추태를 보이던 모습에서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5. 대학 정신의 실종

<주간조선>이 모처럼 좋은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2010년 5월 이화여대 총장 선출을 앞두고 원세훈 국정원장 등 국정원 고위 간부들이 이화여대 학교법인 이사장과 이사들을 잇달아 접촉하는 등 총장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전했습니다. 국정원이 이처럼 대학선거에 개입한 것은 당시 총장선거가 ‘진보 인사 대 보수 인사’의 대립구도도 한 요인이고, 동문 출신인 김윤옥 여사의 수상에 따른 학내 논란 후폭풍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기자가 관련 증언과 정황을 들이대자 전직 이사장은 관련 사실을 시인했는데 현직 이사장은 끝까지 모른다고 부인을 했군요.

지성의 산실인 대학 총장 선거에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관여하려 한 점도 시대착오적이지만 그런 사실을 끝까지 은폐하려는 이사장의 태도도 측은한 행태입니다.

대학고유 영역이 침범당한 것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은 못할망정 그런 치부를 숨기려고 하는 모습에서 대학 정신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6. 형평 정신의 실종

경기도 화성시의회 한 시의원이 올해 추경안 문제와 관련해 시 간부급 직원을 시의회 사무실에서 무릎 꿇게 하고 폭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화성시에 따르면 시의회 A의원은 지난 14일 오후 예산편성 실무를 맡은 B과장을 의회 전문위원실로 불러 무릎을 꿇게 하고 폭언을 퍼부으며 의자를 집어던지는 등 20분간 행패를 부렸다고 합니다.

양측 주장이 맞서기는 하지만, 이게 사실이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과거 민노당 이숙정 의원 사건과는 비교도 안 되게 차분합니다. 동영상이 있고 없고의 차이일까요. 그래도 너무 형평에 어긋납니다. 철저히 진상을 가려야 하는 것 아닐까요. 공인은 누구나 자신이 저지른 잘못 만큼의 비판만 받아야 합니다. 군소정당 소속의 여성인 이숙정 의원이 과도한 비판을 받은 것인지, 거대 정당 소속의 남성인 화성시 의원이 과도한 보호를 받는지 따져볼 일입니다.

7. 인간 정신의 실종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노무현 대통령 유족측 변호인들이 조현오 경찰청장 망언 고소사건을 맡았던 검사를 직무유기죄로 고발했습니다.

조현오 청장 사건 주임검사였던 박태호 검사는 유족에 대한 참고인 조사는 고소 직후에 했으나, 피고소인인 조현오 청장에 대해서는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어떠한 조사도 하지 않아 고발을 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박 검사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수사를 뭉개다가 지난 2월 인사때 부서를 옮겼습니다.

이명박 치하 검찰에서 ‘검사 정신’ 따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청운의 꿈을 안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포부로 명색이 검사가 됐으면, 자존심을 지키고 사는 ‘인간의 정신’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검찰 공권력이 정권의 하수인이 돼 일개 가병(家兵)으로 추락해서야 되겠습니까. 검사들이 부디 인간의 정신과 양심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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