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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왜 권력이란 괴물의 수족이 됐을까?

똘돌이 2010. 4. 16. 21:05

[문정우의독서여행] 검찰은 왜 권력이란 괴물의 수족이 됐을까?

 

 

[135호] 2010년 04월 16일 (금) 17:24:56

가만히 생각해 보면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속이 넓은 사람이었다. 8년 임기 동안 반대자에게 온갖 험한 욕을 다 먹었지만 그들을 응징하기 위해 권력을 동원한 흔적은 없다. ‘안티 부시’ 가운데서 입심이 가장 센 사람은 <화씨 9/11> <식코>와 같이 뛰어난 다큐멘타리를 제작한 마이클 무어 감독이었다. 그는 공사석을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부시 대통령을 자근자근 씹기로 유명했다.

이라크에 대량살상 무기가 있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2003년부터 부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국민을 속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마이클 무어는 부시의 탄핵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의아해진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그는 ‘부시와 그 일당’이 저지른 만행에 비한다면 탄핵은 너무나 가벼운 처벌이라고 답했다. 그는 그들을 살인사건 용의자, 마약 사범, 공금 횡령 혐의자를 체포할 때와 똑같이 수갑과 쇠사슬을 채워 교도소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놓고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연방수사국에 소환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나 그 주변의 사업하는 친구들이 계좌 추적을 당해 곤욕을 치렀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는 ‘연아 회피’ 동영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민망할 정도로 정치인을 희롱하는 ‘그림’을 공식으로 대량 생산했으나 부시 대통령 주변의 그 어떤 ‘돌쇠’도 그에게 법적인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얼마 전 작고한 미국의 석학 하워드 진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미국의 법은 언제나 기득권자의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심각한 주제라도 코미디가 돼버리는 세상

마이클 무어가 가장 최근에 쓴 <대통령 길들이기>(걷는 나무, 2009)에 나오는 한 구절은 마치 대한민국의 오늘을 말하는 듯하다. 그는 다큐멘타리를 만들면서 재미있게 느끼는 점은,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면 다룰수록 자꾸 코미디가 되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실업, 총기, 테러, 건강보험제도 등 하나 같이 사람이 죽고 사는 심각하고 껄끄러운 문제를 다루었는데도 그 결과물을 보는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린다며 의아해 한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이 그만큼 웃기는 방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되묻는다. 그에 따르면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일이 너무 많아,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지경에 이르러, 진실은 선동적인 것처럼 보이고 상식은 급진적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에서도 최근 매우 심각한 일들이 꼬리를 물지만 그 어느 곳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더라도 희극적인 요소를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46명의 생때같은 젊은이가 수장되고 말았는데 거의 3주일만에야 민간의 힘을 빌려 겨우 천안함을 건져낸 군은 선체 절단면을 그물로 꽁꽁 동여맸다. 그리고는 침몰 원인을 밝혀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단서인  그 절단면을 270m 밖에서 보라고 했다. 그물에 싸인 천안함 선미는 스타킹을 뒤집어 쓴 강도 얼굴만큼이나 심각하면서도 우스꽝스럽다.


생존한 병사들의 휴대폰을 뺏고 13일간이나 외부와의 접촉을 금했던 군이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갑자기 장병 모두에게 환자복을 입혀 기자회견을 한 것은 또 어떤가. 예전에 군에서 고참이  “네가 사람인 줄 아냐, 국가 기물이지”라고 말하곤 했던 것이 생각난다. 군은 동료와 간발의 차이로 생사가 갈려 넋이 빠진 생존 장병들을 정말 물건 취급했다. 군 수뇌부에게 그들은 동정심을 불러 일으켜 군에 대한 비난을 잠재우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우리가 목격한 것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다름 아니다. 운신하기 힘든 부상을 입은 병사나,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멀쩡한 병사나 모두가 환자복이란 획일성과 통일성을 뒤집어쓴 모습이 기괴하고 우습다. 그들은 첫 면회를 온 부모에게 목청껏 관등성명을 외쳐대는 이등병의 모습을 닮았다.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찢어지지만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리지 않던가.

검찰이 5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있다며 한명숙 전총리를 기소한 사건도 갈수록 희화화돼간다. 곽영욱씨의 오락가락하는 자백 외에는 아무런 물증도 제시하지 못한 검찰은 1심에서 한전총리가 무죄판결을 받기 직전 별건 수사에 들어갔다. 이는 사법사에 유례가 없는 얼굴 두꺼운 짓이다. 검찰의 칼춤 탓에 자칫하면 지방선거를 망치게 생긴 여당이 나서서 검찰을 성토하기 시작한 것도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뉴시스
김준규 검찰총장
가장 크게 웃긴 사람은 김준규 검찰총장

가장 크게 웃긴 사람은 김준규 검찰총장이다. 그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뒤 간부회의에서 “거짓과 가식으로 진실을 흔들 수는 있어도 진실을 없앨 수는 없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이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와 다름없는 전형적인 정치인의 수사이다. 검찰총장은 자기 입으로 검찰이 법을 집행한 게 아니라 정치를 했다는 걸 자백한 셈이라고나 할까. 그에 비하면 진술거부권을 적절히 활용해 검찰을 궁지로 몬 한명숙 전총리가 노련한 법률가에 훨씬 더 가깝다. 검사가 정치를 하고, 정치인이 법을 안다.

사회부 기자를 꽤 오래 했지만 서울대나 고려대를 나오지 않아 법조를 취재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두 학교 출신이 법조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혹은 그렇게 믿어지기 때문에 자연히 출입 기자도 그 대학 출신이 많다). 그 때문에 기자 생활을 오래 했어도 법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솔직히 잘 몰랐다. 정치부 기자 때 검사 출신 정치인을 꽤 많이 만났는데 술을 잘 마신다는 것 빼놓고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목소리는 컸지만(출입 기자들은 대개 호방하거나 친화력이 있거나 리더십이 있다고 표현한다)  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내는 듯한 사람이 많았다.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지적인 성장이 오래 전에 멈춘 듯 보였다. 이한동, 박철언, 정형근, 홍준표, 안상수, 주성영 등등. 검찰 출신 가운데 유명한 사람을 주워 섬겨 보았는데, 이들 중 누가 지적으로 뒷걸음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거짓과 가식으로 진실을 흔들 수는 있어도 진실을 없앨 수는 없다.

낡고 견고한 성채에서 자기만의 예법을 고집하며 사는 사람들

기자 생활 20년이 넘도록 뿌옇게만 알았던 판검사, 변호사의 세계에 대해 마치 데생을 하듯 큰 윤곽과 세밀한 곳까지 순서대로 잘 그려 보여준 이가 경북대 법대 김두식 교수이다. 사법연수원이라는 한 뿌리에서 태어나 법조라는 낡았지만 견고한 성채 안에서 자기들만의 예법과 문법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이 대한민국의 기이한 귀족의 생태를 알고 싶은 분들께는 김교수가 쓴 두 권의 책, <헌법의 풍경>(교양인, 2004)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 리가 사는 법 >(창비, 2009)를 권한다.

김교수는 자기 말마따나 우리 법조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와 같은 고등학교 시절을 통과한 그는 고통 받는 약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최소한 자기가 감옥에 가는 것은 피할 수 있는 변호사란 직에 매력을 느낀다. 1991년 군대 징집 영장이 나온 상태에서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치른 사법고시에서 기적적으로, 그것도 좋은 성적에 합격한 그는 군법무관을 거쳐 검사가 되지만 1년도 채 안 돼 체질이 아니란 걸 알고 사표를 쓰고 만다. 그는 미국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며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세월이 감에 따라 단순한 ‘등처가’로 전락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코넬대학 법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경북대 법대에서 교수로 일한다.

그는 제 33회 사법고시 출신이면서도 판검사, 변호사 사회 어디에도 소속감이 없다. 박사 학위도 없어 학계에서도 존재감이 미미한 자칭 2류 학자이다. 우리 법조계에 대해 잘 알면서도 어디 매인 데가 없고, 미국의 로스쿨에서 대량 학살을 저지르는 국가의 폭력과 인권 문제에 천착한 그는 우리 법조계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적격자이다. 고시에 합격하기 위한 책보다는 인문학과 역사책을 더욱 탐독했던 그가 ‘팔자에 없이’ 사법고시에 합격해 잠깐이나마 법조에 머물게 된 것은 이 땅에 법이 제대로 서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다.
 
법률가의 의무는 국가가 괴물이 되는 것을 막는 것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동 이후 헌법과 민주주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높아졌지만 법은 마치 전문가만이 다루어야 한다는 둣 “모르면 조용히 하라”는 논리가 횡행하는 걸 보면서 2004년 <헌법의 풍경>을 썼다. 이 책을 보면 그는 그 때 이미 오늘의 사태를 예견한 것만 같다. <헌법의 풍경>에 따르면 헌법과 법률의 목적은 흔히 오해하듯 국민을 통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국가 권력의 괴물화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데 있다. 그런데 우리 검찰 지도부는 대부분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인권과 거의 담을 쌓고 지냈기 때문에 “국가 권력이 괴물로 변할 경우 그 첨병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집단이다.”

<헌법의 풍경>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검사는 영국이나 미국, 심지어 검사 제도의 원산지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이나 프랑스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대표적인 것이 기소유예 제도인데 쉽게 말하면 검사가 맘만 먹으면 살인범이나 강간범이라도 풀어줄 수 있다는 있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검찰은 살인범과 강간범을 풀어준 예가 있다. 1994년 10월29일 검찰은 군형법상 반란 모의 참여 및 주요 임무 종사, 불법 진퇴, 지휘관 계엄지역 수소 이탈, 상관 살해 및 미수, 초병 살해죄 등을 저지른 전두환을 비롯한 12.12 군사 쿠데타 주모자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부천성고문 사건의 고문 경관인 문귀동에 대해서도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전력이 있다.

군사 독재 시절 국가는 민주인사를 불법으로 체포해 고문을 일삼는 괴물로 변했는데 그 괴물의 수족 노릇을 한 것은 검찰이었다. 이근안씨처럼 일선에서 직접 손에 피를 묻힌 실무자만 곤욕을 치렀을 뿐 ‘간접적’으로 관여한 법률가는 여전히 잘 나간다. “국가가 제정신을 되찾은 후에도, 괴물의 수족이 되었던 법률가들이 우리나라처럼 떳떳하게 잘 살고 있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는 것이 김교수의 얘기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건설한 미래가 바로 오늘이며, 점점 다시 괴물로 변해가는 국가에서 검찰은 예전과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고 있는 이다.

가령 내가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뒤를 일부러 캐서 좀 무리가 있더라도 “한번 쎄게 조지라”라고 후배 기자들에게 주문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기사가 나간 뒤 근거가 희박하다며 엄청나게 욕을 먹었는데도 바로 후속 기사를 날리자고 하면 후배들은 또 뭐라고 할까. 아무리 기자들이 미워하는 이동관 대변인(실제로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단순하게 예를 든 것으로 이해하실 거라 믿는다)을 깨는 기사더라도 내부 반발이 장난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한명숙 전 총리 수사에서 검찰은 그보다도 훨씬 심각한 무리수를 두었는데도 검찰 내부는 어째서 이렇게 조용한 걸까. 누구보다 똑똑하다는 자부심이 클 것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이라는 검사들이 어째서 휴대폰을 빼앗긴 병사들과 다름없이 입을 다물게 된 걸까.

몇 년 새 수십억 수백억을 번다면 무슨 짓인들 못할까?

의문을 풀려면 다시 김두식 교수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가 지난해 펴낸 <불멸의 신성 가족...>은 박원순 변호사가 이끄는 희망제작소가 기획하고 그와 김종철 변호사가 노동력을 제공해 만든 책이다. 김교수와 김변호사는 판검사, 변호사, 경찰, 민형사 소송 경험자는 물론, 법원 일반직원,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과 직원, 그리고 출입기자, 시민단체 관계자, 법학 교수 등 23명을 심층 면접해 이 책을 썼다. 면담 대상 중 사법시험에 합격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여덟명이었다. 그 중에서도 판사 출신은 5명이었으나 검사 출신은 1명뿐이었다. 바닥이 워낙 좁아 면담 사실이 알려질 위험성이 크고, 면담 사실이 알려지면 판사보다는 검사가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섭외하기 힘들어서 였다. 하지만 법조는 판검사, 변호사가 책 제목처럼 불멸의 신성가족으로 뭉쳐 있기 때문에 이 정도 면접으로도 전체 생태계의 모습을 그리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대법관을 마치고 변호사를 지낸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7년 40억6542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이대법원장은 대법관에서 물러나 대원장에 임명되기까지 5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모두 60억여원의 수임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진보적인 판사로 일찍부터 이름을 날렸고, 그 결과 대법원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 박시환 대법관도 변호사 생활 22개월 동안 19억여원을 벌어들였다고 밝혔다.

비교적 법조에서는 돈을 가려서 버는 것으로 알려진 두 사람이 이 정도이니 다른 ‘전관’들은 어느 정도 벌지 짐작도 하기 힘들다. <불멸의 신성가족...>에 따르면 법원이나 검찰에서의 마지막 지위가 신성가족 내에서의 서열과 변호사 개업 후의 수입을 결정한다. 승진은 단순한 명예나 권력의 확장일 뿐만 아니라 훗날의 변호사 수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검사가 더 높이 승진하고 출세하려고 기를 쓰는 것은 “검사장이 되면 빛이 나고 명예가 있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변호사가 되었을 때의 몸값이 높아지고 이후의 삶에서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총리 공관에서 실시된 현장검증에 참여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
만약 우리 기자들이 데스크의 무리한 주문을 군말 없이 수행해 승진을 한 뒤 10년이나 15년쯤 뒤에 퇴직하면 몇 년 안에 틀림없이 수십억 수백억의 돈을 거머쥔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래도 선배에게 성질을 부리는 데 조금은 신중해지지 않을까. 그러면 후배들 일 시키기도 조금은 쉬워질 텐데….

흥미로운 점은 면담에 응한 거의 모든 이들이 법원과 검찰의 승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평판’일 이라고 지적한다는 것이다. 말 잘 들어주고, 부탁 잘 들어주는 판검사가 결국 출세한다는 것이 법조의 불문율이다. 판사든 검사든 조직에서 튄다는 얘길 듣는 걸 제일 두려워한다. 이 책에서 유일하게 면담에 응한 현직 정종은 검사(가명)은 왜 검사들이 찍히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지, 왜 평판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결국에는 모두가 다 변호사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신성가족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짓을 할 가능성이 있는 싹은 애초에 짓밟힐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국가가 괴물이 되면, 검사들이 어째서 너무나 맥없이 괴물의 수족으로 전락하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증언이다. 특별히 검사들이 권력지향 체질이라서 정치 검찰이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책은 굳이 끝까지 다 읽지 않고 서평만 봐도 족하다. 하지만 이 땅의 사법 현실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김두식 교수의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시길 권한다. 이 짧은 지면에서 논리를 단순화하면서 쓰다 보니 김교수가 글을 쓴 본뜻을 자꾸 어지럽히는 듯해 마음이 무겁다.  그의 책은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당장 뜻하지 않은 소송에 휘말려 눈앞이 아득해진 사람을 위해서도 요긴한 실용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빛이 난다. 

진술 거부권의 위력,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될 수 있으면 검사를 안 만나고 사는 게 좋지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형사 소송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 때 알고 대처하는 것과 아닌 것은 천양지차의 결과를 빚는다. 보수 언론의 비난 속에서도 한명숙 부총리는 수사를 받는 내내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는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김두식 교수는 <헌법의 풍경에서> 수사에는 임의수사와 강제수사가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라고 충고한다. 원칙적으로 법원의 영장이 필요한 경우가 강제수사이다. 그런데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검찰이나 경찰의 피의자 심문은 대개 임의수사이다. 이 경우 검사에 비해 아무 무기도 지니지 못한 나약한 피의자나 피고인이 그나마 존엄성을 지닌 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도록 마련돼 있는 절대적인 무기가 진술 거부권이다. 만약 입을 벌리면 유리할 게 없겠다 싶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된다.

검사가 윽박지르면 그냥 쳐다보다 집으로 와 버리면 된다. 검찰청에 불려 가면 검사님께서 나가도 좋다고 허락하실 때까지는 검찰청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참고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구속이 되더라도 피의자와 검사가 대화를 나누는 수사 과정은 임의수사이다. 이 경우에도 얘기하고 싶지 않으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된다.

질술 거부권을 사용해온 피의자가 어떤 사람들인지 살펴보면 진술 거부권이 가진 힘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수뢰 혐의를 받았던 신광옥 전 법무부 차관, 한나라당 불법 대선 자금 사건의 서정우 변호사, ‘몰카’ 사건의 김도훈 검사 등이 모두 수사 초기부터 상당 기간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번 한전총리 수사에서도 진술거부권을 위력을 발휘했다. 검찰의 수사가 부실할 경우 특히 진술거부권은 힘이 세진다. 예전에 한총련 대학생들은 체포되면 경찰에게 이름도 알려주지 않아 쩔쩔 매게 만들었다.

근본적으로 탄핵주의를 택한 우리 형사 사법 구조 하에서 피의자는 아무것도 입증할 필요가 없다. 예능 프로 사회자에게 단답형 출연자가, 기자에게 과묵한 취재원이 그렇듯이 조서를 꾸며야하는 검찰에겐 진술거부권이 쥐약이다. 김두식 교수에 따르면 진술 거부권이 제대로 작동해야 우리 경찰, 검찰도 지금과 같은 무식한 자백 위주의 수사방법을 버리고 과학 수사방법을 개발하게 될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대검 중수부나 서울지검 특수부가 무슨 대단한 수사기법을 가진 듯 오해하지만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웅변이 아니라 진술 거부권이다. 


출처 : 시사IN

링크 :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