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이토록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가?
다음 인용글은 오늘날 서울판(MB판) "비속한" 정치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길래...
<프레시안>에서 일부를 인용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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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속화 추세가 가장 두드러진 분야의 하나가 정치다. 유행하고 있는 '정치공학'이란 말은 아마도 '정치철학'과 대비되는 뜻일 것이다. 정치가 무엇인가. 한 사회의 진로를 결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진로 결정을 위해서는 철학으로서 가치관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정치에서는 가치관도 철학도 가지지 않은 테크니션들이 선거 승리를 위한 기술만을 가지고 폴리티션들의 설 땅을 빼앗는 그레셤의 법칙이 판을 친다.
지난 가을 <뉴라이트 비판>(돌베개 펴냄) 작업을 하면서 뉴라이트가 '성공'의 의미를 외면하며 '승리'에만 집착하는 행태를 지적한 바 있다. 정치철학 실종의 극단적 사례라 할 것이다. 정권 운용을 위한 승리만을 추구할 뿐, 국가 운영의 성공은 생각할 줄 모르는 것이다.
정치의 비속화 추세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2차 대전 후의 미국을 보더라도 나름의 정치철학을 가졌다고 할 만한 대통령이 몇 안 된다. 아이젠하워야 워낙 인기 높은 전쟁 영웅이라 대통령이 된 것이고, 카터와 오바마 정도 철학을 가진 대통령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에 앞서 닉슨과 부시가 워낙 국민을 지겹게 만들어 놓은 상황 덕분이었다.
정치공학의 달인으로 자타가 공인한 닉슨의 전략 노선을 설명하는 '미치광이 이론(Mad Man's Theory)'이란 것이 있다.주어진 상황에 대해 미국이 어떤 극한적 대응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상대방에게 심어주는 것이 미국의 국익을 증진시켜 준다는것이다. 당시 미국의 대 베트남 전략 중에는 이 이론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것이 많았다.
당시에는 이 전략이 얼마만큼의 전술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미국의 국가정체성은 그로 인해 크게 훼손되었고 미국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국가 사회의 큰 '성공'을 생각지 않고 목전의 '승리'만을 추구한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현정권의 행태를 보며 미치광이 이론을 떠올릴 때가 많다. <PD수첩> 탄압에서 언론법 '입법 전쟁'까지, "상식?상식이 더 센지 우리 힘이 더 센지 한번 붙어보자!"는 식으로 계속 밀어붙이기만 한다. 지금의 승리만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사회의 장래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네가 힘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에 모든 것이 힘으로만 결정되는 형세를 만들려 든다.
아렌트가 히틀러와 스탈린을 지목해 말한 '비속한 악'이 바로 이런 것이다. '사회의 성공'이란 거대한 욕심이 아니라 남에게 이기고남보다 많이 갖기 위한 천박한 욕심만이 춤춘다. 힘 있는 사람들이 사회 전체의 성공을 외면하는 이런 사회는 망하지 않을 수없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사회가 망했던 것처럼.
이 미치광이 행태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요즘 공격에서 절정에 달한 감이 있다. 부인과 아들을 '참고인'으로 소환했으면 '피의자'는 노 전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박연차의 진술을 인용한 '검찰 관계자'들의 폭로는 갈 데까지 갔다. "무는 호랑이는 짖지 않는다"던데 왜 이렇게들 짖어댈까? 정말로 우리의 전임 국가 원수에게 문제가 있다면 조용히 살펴봐서 피할 수 없는 문제가 확인될 때 어쩔 수 없이 발표하는 것이 '상식'이고 '예의' 아닌가? 왜 이렇게 속 보이도록 떠들어대는 걸까?
노 전 대통령은 부인이 박연차의 돈을 받은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액수는 3억 원 더하기 100만 달러인 모양이다. 이것만으로도 많은 국민이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은 그가 워낙 청렴과 도덕성을 간판으로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권력형 비리' 축에 낄 수도 없음은 물론, 지금으로서는 '비리'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피의 사실 공표 금지 원칙' 때문에 ○○일보사 ○사장 이름이 신문 지상에 오르지도 못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검찰 관계자'는 전임 국가 원수의 피의 사실에 대한 자칭 뇌물 공여자의 진술 내용을 중계 방송하기 바쁘다. 당장 언론이 잘 받아먹어 주니까 목전의 승리에 도취된 꼴이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이 요 며칠간 발표한 글에 거짓이 없다는 데 10만원 걸 용의가 있다. 그가 거짓말을 일체 않는 성인군자라고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해서 안 될 자리를 살필 줄은 아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다른 나라 대통령의 정책 공약을놓고 "선거 때 무슨 소리는 못 하냐?"는 사람과는 전연 다른 사람이다. /김기협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