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
Georg Friderich Handel(1685 ~ 1759 / 독일)
중부 독일 할레(Halle)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세상을 떠난 헨델은
바흐와 더불어 바로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음악가이다
헨델은 바흐와는 달리 국제적인 작곡가였다.
그의 음악은 독일적인 진지함, 이탈리아적인 산뜻함,
프랑스적인 장대함을 모두 갖추고 있다.
바흐의 작품은 반세기 동안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반면,
헨델은 생전에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헨델의 두가지 중요한 업적은 바로크 말기의 음악 보급에 기여했다는 점과,
18세기 중엽의새 양식에서 중요한 요소 가 되는 많은 것들을 예시해 주었다는 점인데
심지어 낭만파 음악까지 예시해 주고 있다.
헨델은 일반 청중들에게는 오라토리오만 작곡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생애 동안 많은 수의 오페라를 작곡하였으며,
영국은 물론 독일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자주 상연하였다.
합창 양식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면모를 보여 주었으며,
이 밖에 무대음악, 수난곡, 종교곡,세속 합창곡,성악곡,관현악곡등이 존재한다.
헨델:'수상음악'모음곡중 알라 혼 파이프
모음곡 <수상음악>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 덕분에 더욱 유명하다.
헨델은 처음에 하노버 선거후의 궁정악장으로 있었으나
1717년 휴가를 얻어 영국으로 가서 많은 성과를 얻고
다음해에 귀국했다가 다시 1712년 런던을 방문했다.
그리고 자작 오페라를 상연하고 당시의 "앤" 여왕을 위한 생일 축하 송가로 작곡하여
여왕의 총애를 받아 200파운드의 연금도 받게 되는 등
영국의 상류 사회의 인기를 일약 한몸에 누리게 되었다.
이 행운에 도취된 나머지 그는 하노버에서의 귀국 명령에 불복하고 계속 영국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1714년 앤 여왕이 갑자기 서거를 하게 되었다.
그때 공교롭게도 다음 영국 왕으로 책봉된 사람은 바로 하노버의 선거후인
게오르크 빌헴름으로서 그는 조지 1세가 되었다. 그 때문에 헨델은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
새 국왕은 의리없는 헨델을 좋게 생각지 않았으므로 그의 지위는 갑자기 불운하게 되었다.
실의에 빠진 그를 보고 그의 친구인 키르만제케 남작과 바린톤 백작이
1715년 템스강에서 거행된 왕의 뱃놀이 잔치에 아무도 모르게
헨델로 하여금 왕을 위한 모음곡을 작곡해 하여 악대와 함께
배를 타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왕이 탄 배로 가까이 갔다.
국왕은 그 음악에 이끌려 곁에 있던 키르만제케 남작에게 악장의 이름을 묻자
남작이 헨델을 추어올리면서 다시 헨델로 하여금 왕궁에 출입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수상음악>은 그 후 1717년 여름의 템스강 뱃놀이 때에 한 척의 베에
50명의 악사를 태워 연주한 것이 처음 이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좌우간 왕은 매우 흡족히 여겨서 두번씩이나 되풀이 시키고 만찬회 때도 다시 연주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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