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 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너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 뿐이야’ 하고 믿어주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가 가라앉을 때,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위해 너만은 살려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오’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고,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한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우리가 각자 ‘그 한사람’ 을 갖게 될 때,
우리 모두는 만인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 자신이 이웃의 ‘그 한사람’ 이 되어줄 때,
우리 모두는 만인의 ‘그 한사람’ 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봄볕에 얼음이 풀리듯
우리의 얼었던 마음도 훈훈한 사랑 안으로 녹아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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