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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한겨레 시사다큐 "한큐"...촛불 그 후,"진압"은 끝나지 않았다.

똘돌이 2008. 11. 11. 19:49

촛불 그 후, ‘진압’은 끝나지 않았다
[한겨레시사다큐 ‘한큐’]⑥ 후유증 앓는 시민들
온몸 상처보다 더한 분노는 ‘뻔뻔한’ 공권력
면허취소 소송 해고 불면증…, 삶에 ‘물대포’
허재현 기자 김도성 피디
한겨레 시사다큐 <한큐>가 ‘큐!’했습니다.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뉴스의 현장과 진솔한 삶의 현장으로 카메라가 출동합니다. ‘사회와 사람’이 묻어나는 영상으로 우리들의 ‘오늘’을 요모조모, 촘촘하게 비춰드리겠습니다. <한큐>는 매주 화요일 10시 <인터넷한겨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살기 위해 굴렀다”던 그녀는 지금?

“‘이러다 죽을 것 같은데 누가 날 도와주러 올까’란 생각 밖에 없었어요.”

평범한 직장여성인 장아무개(28)씨에게 촛불집회가 절정으로 치달았던 지난 6월29일 새벽은 씻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경찰들이 서울시의회 옆 전경버스 뒤에서 순식간에 쏟아져 나왔어요. 경찰은 놀란 시민들에게 곤봉과 방패를 사정 없이 휘둘렀어요. 우왕좌왕하다 어느새 나는 길바닥에 넘어져 있었어요. 그런 나를, 경찰은 1분간 마구 짓밟았어요.”




장씨는 필름을 되감듯 그날의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장씨는 당시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살기 위해 굴렀다”고 말했다. 그날 장씨가 전경에게 짓밟히는 모습은 <노컷뉴스> 카메라에 잡혀 인터넷을 통해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봤다.

장씨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한달 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넉달이 지난 지금도 한쪽 손에 힘을 주기 어렵고, 가끔씩 머리에 통증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장씨가 더 분하고 참을 수 없는 것은 그날 이후 경찰의 태도였다. 장씨는 “보도가 나간 뒤 경찰로부터 전화가 오긴 왔는데, 경찰이 병원에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고 사과도 아직 못받았다”며 입술을 떨었다. 장씨는 자신을 짓밟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공권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벌이고 있다.

» 전경의 군홧발에 밟히고 있는 이나래씨. (촬영화면 캡처. 쿠키뉴스 영상 제공)

연행 1500명·구속 70여명·부상 2500명

5월2일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는 유례가 없이 길었다. 8월15일까지 거의 날마다 이어져 100여 차례나 열렸고,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이 과정에서 연행자와 부상자들이 줄을 이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촛불집회 과정에서 1500여 명의 시민들이 길에서 연행됐고, 70여 명이 구속 수감됐으며 부상자 수만 2500여 명에 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제 ‘광우병 반대 촛불’은 사그라들었다. 국민과의 소통에 ‘콘테이너 산성’을 쌓은 정부에 지친 것인지, 검·경의 강경 수사에 위축된 것인지, 시민들은 거리를 떠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장씨처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촛불로 인한 직·간접적인 상처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촛불 시민’ 대부분이 예전에는 집회가 뭔지도 몰랐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만큼 그들이 겪고 있는 속앓이와 몸살은 다양했다.

정부 인정한 인권침해는 단 한 건…유엔엔 “오해” 답변서

“동영상이 찍힌 사람은 경찰이 인정해 주는데 난 증거 자료가 없어 경찰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요. 억울합니다.”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조아무개(54)씨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조씨는 지난 6월26일 새벽 광화문 네거리에서 해산 작전을 벌이던 전경과 몸싸움을 하다 왼쪽 가운데 손가락 일부가 잘려나가는 부상을 당했다. 조씨 역시 경찰의 사과를 받고 보상을 받으려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고 있다.

조씨의 변호를 맡은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의 조영선 변호사는 “경찰이 가해자를 찾으려는 노력을 안하고 있다”며 “당시 진압부대 책임자에게 진압부대 위치를 물어보면 금방 나올 수 있는 사실 관계조차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인권침해는 6월 1일 새벽 효자동 입구에서 벌어진 ‘서울대 이나래 학생 군홧발 구타 사건’ 정도이다. 정부는 지난달 16일 유엔 인권이사회 특별보고관에게 보낸 촛불집회 인권침해에 대한 답변서에서 “불법 폭력 시위들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했다”며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주장은 부정확한 사실에 기초해 오해를 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홍관표 법무부 인권국 서기관은 “이나래씨 사건에서 인권 침해가 있었다고 보고했다”며 “그 외 사건은 아직 조사 중에 있어 뭐라 언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런 대응은 공권력 폭력과 인권침해 입증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경찰이 정부의 발표를 믿고, 폭력과 인권침해 사실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민들은 장씨와 조씨처럼 경찰과 국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민사 손해배상 소송 30여건, 형사 고소 30여 건에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송은 경찰 등의 비협조로 현재 지지부진한 상태다. 민변 서선영 변호사는 “고소를 해도 고소인 조사만 한번 진행할 뿐 경찰이 가해자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대부분 재판이 난항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민변은 경찰로부터 폭력 또는 불법체포 등을 당한 시민들이 검찰에 제출한 경찰폭력 고소고발사건 중에서 기소 여부를 결정한 것은 현재까지 전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지난 6월28일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무장한 경찰이 시민들을 강제 진압하고 있다. (촬영화면 캡처. 김도성피디)

재판 때문에 1주에 한 번 휴가, 회사 눈치

“회사가 발칵 뒤집혔었죠. 처음엔 저작권 문제로 압수수색하러 온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봤더니 제가 ‘조중동 광고 리스트’를 인터넷에 올린 것 때문이더라구요.”

갑자기 회사로 압수수색을 하러 들이닥친 검찰 관계자들 때문에 지금까지 곤란을 겪고 있는 직장인도 있다. 게임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이아무개(29)씨는 7월15일 회사에서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김씨는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카페에서 활동한 누리꾼이었다. 카페에 ‘조중동 광고 리스트’를 올려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고, 결국 검찰이 김씨의 회사까지 찾아와 업무용 컴퓨터 등을 뒤졌다. 말단 직원인 김씨는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재판에 참석하느라 일주일에 하루는 휴가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서울시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취재진을 만난 김씨는 카페 회원 24 명과 함께 5시간동안 재판을 받고 나오는 길이었다. 김씨는 “똑같은 일을 당한다면 솔직히 앞으로는 광고불매운동 같은 일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재판도 안 끝났는데 면허취소로 밥벌이 수단 잃고 퇴사

촛불이 사그라들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한 검경의 수사는 일부 시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촛불자동차연합’에서 활동하던 시민들이다. 이들은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따라다니며 경적을 울리는 등의 방법으로 시위에 참여했는데 경찰은 운전면허 취소 조처를 했다. ‘촛불 보복’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촛불자동차연합 회원이었던 김원기(30)씨는 10월29일자로 운전면허 취소 처분을 받았다. 김씨는 배송영업을 하던 직장인이었는데, 밥벌이에 꼭 필요한 운전면허가 취소되면서 결국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김씨는 “늦게 귀가하는 촛불 시민들을 집에 바래다 주려고 자동차 끌고 나온 게 이런 결과를 낳을 줄 몰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이 밝힌 김씨의 면허 취소 사유는 ‘자동차를 이용한 범죄 행위’다. 그러나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은 김씨의 면허부터 취소했다. 김씨는 그후 직업을 바꿔, 해본 적도 없는 엘리베이터 설치 일을 하고 있다. 김씨 외에도 광우병대책회의에 집회 무대 차량을 제공하고 운전해준 한 화물 운전 노동자도 면허 취소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인터넷에서 ‘조중동 광고 중단 운동’을 벌인 이아무개(29·아이디 시지프스)씨가 지난 5일 서울중앙지방 법원 311호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나오고 있다. (촬영화면 캡처. 김도성피디)

“지금도 잡혀가는 꿈”…우울증 등 정서장애 시달려

“지금도 전경이 잡으러 오는 꿈을 자주 꾼다. 언제 또 잡혀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경찰에 연행되거나 구금, 폭행을 당한 일부 촛불 시민은 우울증 등을 수반한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김아무개(27)씨는 6월25일 경복궁 근처에서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과 초등학생이 연행된 전경버스를 따라가다 덩달아 연행을 당했다. 그 후 김씨는 악몽을 꾸거나 우울증, 대인기피 증세를 보이고 있다. 취업준비생인 김씨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렇고, 의욕도 꺾여 구직에 대한 의지도 시들해지는 것 같다”며 “술을 먹지 않으면 요즘은 잠이 오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9월9일 조계사 옆 공원에서 인근 식당 주인 박아무개씨가 조계사 농성 촛불 수배자들을 지원하던 시민 3명에게 식칼을 마구 휘두른 ‘테러’가 있었다.

이때 뒷머리에 칼이 꽂히는 등 중상을 입고 수술까지 받았던 문종석(39)씨는 현재 퇴원해 물리 치료를 받고 있으나 아직도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문씨는 “사고 뒤 잠을 1시간에 1번씩 깨는 등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이 장면을 코앞에서 목격한 김홍일(51)씨는 지금까지 후유증을 앓고 있다. 6일 조계사에서 만난 김씨는 “낮선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불안하고, 어두워지면 화장실 가기도 겁이 난다”며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김씨의 증세를 살펴본 임상심리사 박대령(32)씨는 “전형적인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 증세”라며 “병원 치료도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취업 준비생인 김효준씨는 촛불집회 과정에서 연행돼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촬영화면 캡처. 김도성피디)

인권단체 ‘심리 치유 프로그램’ 참여 뒤 회복세

‘강제연행, 압수 수색, 직장 해고, 지루한 소송, 불면증,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 일부 촛불 시민들은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지금까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권관련 시민단체들은 촛불집회 후유증을 앓고 있는 시민들을 위한 ‘치유프로그램’을 마련했다. 10월8일 30여명의 시민들이 서울 장충동에 위치한 한 법당에 모여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작은 법당에서 이들은 눈을 감은 채 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를 위로하며 상처 입었던 마음을 어루만졌다. (25)씨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임승연는 “공권력에 대한 믿음이 깨진 후 많이 울었고 외로웠는데 이젠 좀 답답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의 표정은 한층 밝아보였다. 치유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일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나만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람들을 만나 함께 상처를 드러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개인의 아픔을 공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글·허재현 기자 연출·김도성 피디 catalunia@hani.co.kr